고난주일과 부활절을 거치면서 모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이땅에 오시고 또 죽으심으로 이룩하신 구속사로 말미암아 가슴 벅찬 감격을 느끼기도 하고 혹 감수성 여린 여자 성도들은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당하셨을 그 고통을 상상하며 눈물 흘리기도 한다.
나역시 성금요일마다 눈물이 난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하는 처절한 육체적고통으로 인한 안타까운, 어떤의미에서는 두려운 그런 연민의 눈물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이 입은 은혜때문에….그 말도 안되는 은혜때문에….말없이 눈물이 난다.
또 부활절 마다 예수님이 과연 생물학적으로 DNA가 재생 되며 그 육체가 다시 살아나셨을까 하는 팩트에 대한 의문은 들어도 궁극적으로 사망을 이기신 본질에 대하여는 경외함으로 부활사건을 대하게 된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역사적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명제를 놓고 고민하며 씨름한다. 신앙이란것이 지적인 용납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라고는 해도 나를 위해 죽어주신 그분이 항상 약자의 편에 서셨던 훌륭한 선지자 였는지….하나님 자체이셨는지아무도 고민안해 보았다면 믿을수 없다. 영적으로 능력있으셨던 탁월한 선지자였으나 과대망상에 사로잡혀있었던 (이크~ 이런 불경한…) 역사적 예수. 그분이 요한사도가 증언하듯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하셨고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리라”..즉 인간 예수와 하나님 예수이 둘사이에서 나는 일말의 죄의식마저 가질때가 있다. 나 이거 도마 아니야?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녀라고 나를 부르시고 세워주신 이상 어떻게든 그분자신을 이 형편없는 지진아에게 드러내어 주실줄을 믿는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의 눈망울을 맞추며 까르릉 까꿍을 온 몸으로 해줄때 어느날 아기가 엄마라고 부르며 그 존재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인정하는 것처럼 오늘도 내게 “나야 나, 네 하나님이란다”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것 같다.
예수님. 누구십니까? 제게 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그때 그바닷가에 풍랑일던 나의 그 배안에 타고 계셨다고. 빈그물던지기에 지쳐떨어진 내게 그물던질곳을 말해줄 하나님이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