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으로 말씀하시니..
작성자명 [류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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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25
마가복음 7:24-37
날마다 말씀을 보고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사 세상에 오니
그 말씀을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은
세상에 살아도 세상을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상에 누구와도 통할 수 없는 꽉 막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통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와도 함께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가진 유대인들이지만 같이 말씀이 통하지 않아서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이방인에게로 갔습니다.
말씀이 통하지 않는 것은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유대인들과도 통하지 못하고 말씀이 없어 이방인들과도 통하지 못해
어디에도 머리 둘 곳 없는 예수께서 그 육신 속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합니다.
그러나 그 누구와도 말씀으로 통하고 싶은 그 마음을
그 육신 속에서 완전히 숨길 수는 없기에
육신으로 말씀하시는 그 소문을 듣고 곧 와서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발 아래 엎드렸습니다.
말씀이 없는 이방인들은 그 육신으로 낳는 모든 삶이 어릴 때부터 더럽습니다.
본래 육신에 들린 더러운 귀신을 말씀으로 쫓아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더러운 삶으로 괴로운 이방인이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말씀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삶을 살고 있는 더러운 이방인입니다.
그 육신의 삶을 괴로워한다고.. 그 발아래 엎드려 간구한다고..
개에게 던져주듯 아무에게나 던져줄 수 있는 그런 값싼 말씀이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자녀에게 배불리 먹여주실 양식입니다.
양식을 보고도 양식인 줄 몰라서 먹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녀이지만
그렇다고 그 양식을 개 같이 더러운 이방인에게 줘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사 그 육신으로 말씀하시는 예수입니다.
오늘 와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말씀을 간구하는 그 이방인은
육신으로 비추어 주시는 예수의 거울 앞에서 자신의 개 같은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자기 삶이 더럽게 괴로워진 것은그 삶에 귀신이 들려서가 아닙니다.
말씀이 없는 자기 육신이 귀신이 들려서 육신이 곧 주인이 된 까닭입니다.
이제 말씀이 더욱 절박한 것은 더러워진 자신의 삶이 아니라 곧 그 자신입니다.
자신의 어떤 무엇이 아니라 곧 그 자신이 말씀이 절박해진다면
그때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의 그 어떤 작은 몸짓도 알아들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 없이도 그 말씀을 알아듣는다면 그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하나로 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와 하나로 통할 수 있다면 그의 막힌 귀는 열릴 것이며
말씀이 통하지 않아 육신 속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려던 그 말씀이 육신 속에 완전히 숨길 수는 없어
어눌하게 나타나는 예수의 혀에 맺힌 것도 곧 풀려 말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