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라난 목사님께서 보라빛의 소박한 할미꽃의 경악스러운 실상에 대해 말해주셨다. 일평생 한번도 꽂꽂이 서있지 아니하고 언제나 머리를 숙이고 있어 겸손의 대명사 처럼 보이는 그 여린 할미꽃은 땅속 깊은곳 단단히 뿌리 박고 있으며 그 뿌리는 엄청난 독성을 가지고 있다 한다. 조무래기 아이들이 개울가로 고기잡으러 갈라치면 그 할미꽃 뿌리를 캐내 돌로 찧어 개울가에 술술 뿌려놓으면 이내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뒤집으며 둥둥 떠오른다 한다.그정도로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찌그리 겸손한 섬김의 표상을 하고 있는지…
우리 인간은 아무리 겸손한 사람이라도 이 할미꽃처럼 독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실존이라는말씀에 무한동감이다.
덜떨어지게 못되어 교만하든지 혹 착한사람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어 우리자신도 눈치못채고 있는 격조있는(?) 교만이든지 인간 원죄의 뿌리에는 이 교만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의 이성이 교양의 부추김을 받아 ‘겸손’을 practice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기껏 ‘나보다 남을 낫게여기고자’ 발버둥치며 노력하는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아무리 발버둥쳐도, pretend하다가 스스로 그렇게 믿기 시작하여도 그 밑바닥에는 독성이 자리잡고 있다. 자기애, 자아..등
그래서 안셀름 그륀신부가 말하듯 겸손이란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게 아니라 자기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 자신의 처참한 진면목을 알고..나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에 이를수 없음을 경험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는 태도가 바로 겸손이라한다. 즉 겸손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아는것이다. 내 힘으로는…아무것도..할수 가 없다.
고난주간이다. 십자가의 죽음을 받아들이신 주님, 그 주님이 흘려주신 피가 아니면 우리는 진정한 겸손을 가질수 없다. 겸손을 통해서 만이 우리는 하나님에게 나아갈수 있는데..우리가 아무리 남을 낫게 여겨도.. 아무리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섬겨도..내가 취득한 겸손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갈수가 없다. 뿌리의 독성이 강해서…
주님, 저를 위해 피흘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것도 할수 없는..태생부터 왜곡된 무능력한 날 위해... 쓰러지고 또 쓰러지며 골고다 그 언덕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주셨습니까? 형제들이 허연배를 뒤집으며 떠오르게 할만큼의 독을 남모르게 품고있는 독사같은 나를 위해 정말로 십자가에서 못박히고 피흘리고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버리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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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살려주셔서...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