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다... 달리다굼...!
작성자명 [정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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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25
마가복음 7:24~37
‘에바다’가 나오는 날,
며칠 전의 ‘달리다굼’과 비교하여 묵상합니다. (막 5: 21~24, 35~43)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의 어린 딸, 병이든 듯 합니다.
그 아비, 예수님을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합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길 바닥에서, 엎드려 많이…>
그럼에도 집으로 가는 도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손을 잡고 <달리다굼>하셔서 일어나 걷게 하십니다.
이방인인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며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어미,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며> 간구합니다.
이 역시, 혼자 조용히가 아닌, 사람들이 많이 있는 길 바닥에서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귀신 좇아 주시기를 간구하매
“개들에게 …” 하시며 모욕으로 들을 수 밖에 없는 말씀을
온유하신 주님이 냉정하게 하십니다.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하며 개임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합한, 듣고 싶어하신
“…개들도…” 를 묵상합니다.
그리고 길 바닥에 엎드려
많이많이 간구한 그 부모들을 생각합니다.
<에바다>
예수님의 방법이 어느 때는 말씀으로,
어느 때는 만져 주심으로, 또 어느 때는 일으켜 세우심으로…
귀먹고 어눌한 자가 나오는 오늘은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에바다’ 하십니다.
어느 방법으로 하시든 경계하시며,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지만, 경계할수록 더욱 널리 전파됩니다.
어떤 형태로든
간구하는 자의 소리를 귀 기울여 들으시는 주님,
그 주님이 함께 계셔서 감사합니다.
엎드릴 수 있는 분이 함께 계셔서 행복합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는
‘에바다’가 제 마음에 울리는 날,
아이들은 오고, 뭔가 마무리가 걸리지만, 그대로 올립니다.
샬롬!
가끔은 제가 써 놓은 큐티 노트를 보면서,
지금은 전혀 생각지 못하는 묵상의 기록이 있음에 놀랍니다.
(2003.1.18)
야이로를 묵상하면서,
딸의 죽음을 전하러 온 자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집에 도착하니 온통 죽음의 그림자가 덮여있고,
딸의 죽음을 인정해야하는 상황 속에서도,
어쩌면 그리도 환경을 바라봄이 아닌, 말씀만 믿고 의지했을까...
야이로의 그런 행동에 사람들의 수근거림은 없었을까...
다수가 아닌, 한 분이신 예수님 말씀만을 따르며 순종했을까...
하마터면 죽어 장사 지낼뻔한 소녀를 생각합니다.
그 아버지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웃고 넘겼다면,
훤화하며 우는 자들에 따라서 (세상의 풍조대로) 땅에 묻었다면,
예수님을 청하지도 않았다면,
과연 달리다굼 의 역사가 일어났을까...
부모의 믿음과 순종아니면 장사지내고, 영영 땅 속으로 들어갔을 아이,
부모 역할을 다시금 새겨보는 아침입니다.
언젠가 제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이라, 훈련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라는 책을
충격으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물며 운전을 해도 면허증이 있는데,
부모 역할은 면허증이 없다고 안타까워하시던
부모 역할 훈련 을 받았을 때의 일들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아이들...
때로는 죽은 자 같은 모습도 보이는 아이들입니다.
야이로의 딸을 묵상하며, 다시금 회복과 치유의 말씀을 주심 감사합니다.
소생케하는 말#50437;이길 원합니다.
부모 역할,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