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전 교통사고 해결을 위해 보험회사 사람을 만났습니다.
작년4월1일 좌회전을 하려고 서 있는데 뒤에서 오던 차가 우리 차를 가는 차로 보고 달려오던 속도로 받아서 겉으로는 보이는 것이 없는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어지럽고 먹을 수 없는 입덧 증상이 한 달을 지나 결국 불면증에 이르게 되었고 양약도 한약도 부작용만 나타나 약도 쓰지 못하고 직장 때문에 전신에 침을 맞으며 견디고 있었습니다. 여름방학을 지나며 불면증으로 정신과를 다니게 되었고 우울증에서 온 것이라 확신한 의사는 매번 약을 바꾸었지만 역시 효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가을을 겨우 버티다 먹지 못해 기운이 쇠하게 되어 겨울방학 내내 입원을 하게 되었지만 역시 불면증은 치료되지 못했습니다.
1년이라는 시간이 다해 가는 요즘 집사님의 소개로 방문한 곳에서 원인을 찾았고, 병원치료와 병행하며 조금씩 치료도 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원인은 사고 중 척추와 오른쪽 머리부터 허리까지 충격이 가해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몸의 불편함 때문에 경추의 뼈들이 한쪽으로 쏠리며 중심을 이탈한 상태가 되어 뇌를 자극하고 몸 전체가 틀어지게 되었는데 검사상은 이상이 없다고 했었던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보통 ‘사고 때문은 아니라고..’ 들 말합니다.
지금 치료를 하시는 분이 ‘이런 상태로 어떻게 살았냐고 자신 같으면 벌써 한강으로 갔을 거라고...’하시며 고통에 공감해 주셨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보니 예배와 공동체 때문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정말 힘들어서 자살의 유혹과 싸워야 할 때도 있었지만 쉴만하면 가야하는 예배와 기도해야 할 목장 식구의 사건과 영적인 갈등으로 말씀과 씨름하느라 죽을 수가 없었는데 이런 보호막이 아니었다면 죽음은 너무 가까운 곳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 달 전부터 약사인 언니가 보내준 약이 아닌 몇 가지 과일을 넣은 쥬스 같은 것으로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잠도 2시간이나 자는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곧바로 또 심한 불면의 시간이 반복되니 ‘아, 이제 자겠구나~’의 소망은 사라지고 오히려 불안감이 가중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하품만 나와도 잠이 오려나~하는 희망을 가졌는데 다시 불면의 밤이 반복 되면 또 다른 고통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정되는 것을 힘들어 하는 뇌는 조금이라도 자고나면 피곤해하며 여기저기 염증을 일으켰습니다. 오히려 더 못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피로가 쌓일수록 잠을 더 잘 수가 없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자는 것이 이렇게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2주전 보험회사 사람을 만난 이유는 이제 효과가 있는 방법을 찾았으니 합의금을 받아 경제적인 부담 없이 치료를 하고 싶었고 더 이상 생각이 교통사고의 틀에 갇혀 있기 싫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꾀병을 부리는 사람을 보듯 수면장애는 인정이 되기가 어려우니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태도로 합의금을 주는 대로 받고 더 이상 스트레스 받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뉘앙스의 말을 계속했습니다.
전날 목사님이 돈이냐 주님을 전적으로 의지 할 것이냐~ 외치신 다음날이라 마음의 거리낌도 있었지만 돈도 없는 주제에 대~충은 또 내 열심인가 하는 고민으로 약간은 비굴모드로 사정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같은 답에 답답하여 1년간 불면증 때문에 치료한 자료가 있는데 아니라고 하는 것이 비상식적인 것이 아니냐며 따져보았습니다. 자료를 가지고 나를 위해 최선을 다 해주시던지 아님 치료할 병원을 지정해 주시던지 해결책을 생각해주시라 했더니 (지금까지 몰아붙이기만 하던 입장을 바꿔야 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며 생각 할 시간을 달라 하였습니다. 저도 지쳐서 알았다 하고 돌아왔습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갔기에 목사님 책과 큐티인을 주며, 바빠도 가정을 잘 지키셔 야지요~ 하며 주고 온 뒤라 이제는 함부로 말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연락이 왔고 병원들의 진료기록과 소견서들을 가져다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주일 간 치료했던 병원을 다니며 진료 기록과 검사결과, 소견서들을 준비하여 전해 주었습니다.
검진기록과 소견서를 확인하면서 정신과적 진료 기록들인지라 가족관계 등의 저의 사생활들이 당연히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혼과 재혼, 아이는 전남편이... 등 등
이런 사실들이 기록 된 것을 보면서 왠지 낯설은 수치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년간 우리들 교회에 있으면서 말씀으로 하나하나 해석 되어 쌓아놓은 약재료들의 원료가 되었던 삶의 흔적들이 돈을 받기 위해 보험회사 사람에게 넘겨진 순간 말씀이 없어서 살아갈 당시의 수치감으로 제게 다시 되돌아왔던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돈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허락한 그 마음 뒤에 이런 수치감이 있지 않았을까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삶에 대해서.
한편으로는 그래도 예수님을 좇았다는 자신만의 정당성이 있었고, 나름의 주를 향한 믿음이라고도 생각했으며 하나님에 대한 충성이라고도 그래서 중요한 역할도 맡았다는 자부심도 있었노라고 하지만 나는 변함없는 무일푼이라고..... 나는 뭐냐고요?
하며 얼마 안 되는 돈을 받기로 허락한 뒤에는 그런 마음이기도 했겠다 싶은 생각이듭니다. 그래도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였었다는 것을 잊을 수 없는 사실이기에.
서류를 준비하면서 오가는 것이 힘들고, 돈도 들고, 또 지나간 의사들을 만나 다시 대면한다는 것이 그렇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기에 알 수 없는 우울이 왔고 작은 스트레스에도 ‘죽어 버릴까?’하는 충동까지 올만큼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에게 15층에서 아래로 이사하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주일말씀의 사단과의 전쟁이라는 한 마디가 생각이 나서 겨우 고비를 넘겼습니다. 이제는 아픈 시간이 오래니 그런 우울이 정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고 때문에 일상이 깨졌고, 수면부족으로 기억력은 포기상태, 휴직으로 인한 경제적인 손실도 피부로 느끼며 살아야하고, 무엇보다 장기들이 약해지고 점점 힘들어진다 생각하니 모든 보상을 돈으로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깊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동생의 이혼사건으로 주님의 옳으심을 깨달은 터라 사고에 대한 나의 인간적인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했고, 지난 주 부터 나의 수면상태가 조금씩이라도 회복 되어지는 이유는 공동체의 전적인 중보와 은혜 때문이라는 확신이 있음에도 여전히 불안해하는 저의 불신이 결국 수치심을 불러오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허락한 유다.
나의 죄악 된 삶의 기록들을 자랑하듯 나누고, 스스럼없이 오픈하며 자유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이야기를 듣는 그 누구 한 사람이라도 내 삶의 이유를 물어오면 나는 내 삶에 주신 구원의 복음을 전하리라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쉽으로 삼겠지만 그 옆에서 들었던 한 사람은 반드시 힘든 삶을 나누러 오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똑똑함으로 돈을 위한 넘김이 된 약재료가 아닌 우울의 사연으로 저는 주님에 대한 자부심 대신 수치심만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고로 다쳐서 잠 못 자는 것을 정신적인 기분문제로만 몰고 가는 것이 답답했고, 원인이 밝혀져도 믿으려 하지 않는 상대방으로 인해 절망감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나의 얘기를 안 들어 준다는 답답함 때문에 우울이 오고, 육신의 연약함이 쌓여가니 급기야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며 ‘나만 바라봐~’ 달라고 울고불고 하는 아이 같은 이기심으로 충동 되었던 제 자신을 봅니다.
오늘, 지금의 나는 오로지 은혜로, 은혜 덩어리에 싸여 살고 있는데 내 맘대로 영과 육을 갈라놓고 주님이 하신, 하시고 계신 일까지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유다 같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준비하라는 말씀을 길로 놓고 아무 말 없이 체험하며 가고 있는데, 다락방을 예비하시는 말씀의 이루심을 체감하지도 못한 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 앞에서 자신만을 위한 다른 죽음을 꿈꾸는 유다처럼 수 없는 이유와 끝없는 설명을 달아 놓고 내 자신을 참소하며, 전적인 은혜로 치유되어져 가고 있는 눈앞에 놓인 기적에 고개를 돌리고 일부러 눈을 감으려 하였습니다. 전적으로 드려야 할 감사와 신뢰 대신 돈 때문에...
언제쯤 뭣 모르고라도 그래도 저는 쬐끔 괜찮지요? 했던 베드로 할아버지의 뒤꿈치라도 따라 갈 그런 고백이라도 할 수 있으려는지... 갈수록 태산인 나의 죄입니다.
주님, 참으로 정말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