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본문인데 늦었지만 묵상했던 것을 올려봅니다.
눅21:1~4 과부의 두 렙돈
질문: 왜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을까?
성경엔 십일조를 드리라고 되어 있는데 왜 오늘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 생활비 전부를 연보궤에 넣었을까?
어떤 마음일까?
그 중심은 무엇일까?
구약(왕상17장8~16)에 엘리야선지자를 공궤했던 사르밧과부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때 엘리야선지자는 처음엔 그릇에 물을 갖다 달라했고, 다음엔 떡을 조금 달라했다.
과부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고 말했다. 정말 솔직하다. 위대한 선지자인 것을 몰랐을까?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선지자를 차갑게 대접하는 사르밧과부에게 엘리야를 보내셨다.(왕상17:9)
하나님은 과부를 살리려고 보내신것이 이후에 일들을 보면 분명하다.
엘리야는 절박한 상태의 과부를 나무라지 아니하고 먼저 하나님의 사람인 선지자 자신을 위해 떡을 만들라하였다.
그리고 선지자의 말씀을 따르는게 유일한 살길이었던 과부는 선지자의 말씀대로 따랐다.
사르밧 과부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르밧과부를 찾아오셨고
그녀의 궁핍한 영혼에 선지자의 말씀과 위로를, 궁핍한 삶에 양식을 떨어지지 않게 채워주셨다.
좋으신 하나님....
......오늘 본문의 이 과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속에 사는 여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스라엘에 사는 과부였다면 먼 곳에 있는 내가 사르밧 과부이야기를 아는데 이 여인이 몰랐을리 없다.
하나님께 먼저 드리면 사르밧과부처럼 구원해주시리라는 것을 믿고 드리지 않았을까?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시라 하신 그 말씀을 믿었으리라 생각된다.
그녀는 믿음으로 자신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렸다.
이 과부를 보며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여전히 계산할 것이 많은 나의 삶이 더 단순해지고 ,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만을 바라는 삶으로 인
도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