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26
제 목: 진정한 내 모습
누가복음20:41-21:4
요약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했지만 예수님은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불렀던 것을 말씀하신다. 긴 옷 입고 시장에서 문안 받고,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좋아하는 서기관을 삼가라신다.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들의 판결이 중하리라 경고하신다. 부자들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보시면서 풍족한 종의 헌금과 구차한 중에서 생활비 전부를 넣은 과부의 헌금을 더 많다 구별하신다.
연구 묵상
1. 예수님의 말씀을 나는 제대로 깨닫고 있는가?
2. 서기관처럼 대접 받는 걸 좋아하며 외식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나의 헌금을 보시고 예수님은 무엇이라 하시는가? 예수님이 보시는 진정한 내 모습은 어떠한가?
느낌
말씀에 귀기울이며 친히 말씀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에 귀울이는가? 내가 처음 우리들교회에 오게 된 표면적인 이유는 말씀이었다. 하나님 말씀을 제대로 듣고 제대로 깨닫고 적용하며 살고 싶은 그럴 듯한 이유였다. 나는 내가 말씀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게 환경 탓인 줄 알았다. 내 밖의 원수보다 내 안의 원수가 더 많다는 걸, 요즘에야 깨닫는다. 내가 말씀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는 게 내면의 이유였음을 제대로 보는 것 같다. 지금도 제대로 말씀을 적용하지 못하는 이유가 깨닫지 못해서인가? 듣기는 들어도 보기는 보고 알기는 알아도 나는 여전히 하나님 것을 낭비하며 하나님 맡기신 것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나의 근원적인 악, 내 문제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자 준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준 작은 책 선물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상대에게 빈정이 상하고 급기야 소심한 복수를 하고서야 마음이 위로가 되고 시원해지는 나의 좁은 속...선물을 한다는 건 선한 의도로 시작한 거였지만 최소한 고맙다는 인사는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최소한 고맙다는 말은 하겠지~ 하는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문자조차도 없는 상대에게 소심한 복수를 했다. 내 핸드폰에서 그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그리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나! 상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불편함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도 후회나 미안함 회개보다는 시원함이 더 크다. 나의 생색병~ 불치병인가? 서글프다.
나는 서기관처럼 대접 받는 걸 좋아한다.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는 게 좋다. 긴 옷을 입고 우아하고 교양있는 미소를 지우며 가면을 쓰고 외식한다. 우아한 엄마이고 싶고 우아한 아내이고 싶다. 직장에서고 모임에서고 나로 인해 화합하고 즐거워지고 끈끈해지기를 원한다. 나의 가면은 좀체로 잘 벗겨지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나 익숙하다. 때로는 나조차 그게 외식인 것조차 인식할 수 없다. 외식하기 위한 외식이 아니라 외식이 너무나 익숙해서 자신이 속는지조차 알 수 없는 지경이다. 이 또한 참으로 슬프다.
주일에 아들과 씨름하다 예배 시간에 늦었다. 얼마나 혈기가 올라오는지, 예배에 늦는 책임을 온통 아들 탓이라 한다손 치더라도 내가 내뿜는 혈기는 무엇인가? 버스 정류장까지 그 폭발한 분노를 안고 서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얼굴이 스치는데, 어찌나 분이 나던지 그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앗뿔싸!! 여기는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곳이 아니다. 그런데, 다소 자유롭다. 시큰둥하게 아들을 대하고 버스에 올라갔는데... 그래도 얼굴 한 쪽은 뜨거웠다. 그래도 소위, 교양인인데.... 부끄럽다.
내가 드리는 헌금이 적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많다고 생각한 적도 없다. 헌금에 대해 생색이 난 적도 없었고 더 드려야 하는데 싶은 아쉬움이 든 적도 없었다. 첫 월급을 타고 처음 헌금을 드릴 때, 내 손에 닿자마자 당장 교회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경외감, 내가 함부로 만지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그리고 내 노고에 비해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많이 주신다는 생각에 송구스러움이 컸었다. 내 손을 미끄러지듯이 급히 빠져나가 연보궤로 흘러 들어가는 헌금이 지금도 생생하다. 차마 봉투에 넣지도 못했다. 얼른 집어 넣었다. 내게 맡기신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 1/10도 9/10도 하나님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과부의 두렙돈 같은 헌금을 드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이 오늘, 나를 멈추게 한다. 구차한 중에도 생활비 전부를 드린 적은 없다. 드려도 내게는 구차하지만 먹고 쓸 것들을 항상 주시고 남기셨고 채워주셨다. 그것이 은헤이고 감사지만... 뭔가 아쉽다.
헌금을 할 때 생색이 난 적은 없었지만, 이 헌금이 바르게 쓰여지는가에 대한 생각은 많이 했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이 중요한만큼 제대로 쓰이도록 기도하며 제대로 사용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고등부 회계일과 중등부 회계일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했었던 것 같다. 그 헌금을 아끼고 아껴서 구제헌금에 건축헌금에 선교헌금에 구별해놓고 사용도 했었지만, 하나님 돈을 만지는 일은 두렵다. 내 생활비 역시 하나님 것이라고는 하면서도 흥청망청 사용하는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나는 두렵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지 나의 진짜 모습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지 두렵고 떨린다.
적용
1. 내 불치병, 생색병이 구원의 약재료로 사용되어 겸손하게 하시고 사람 살리는 일에 쓰임 받기를 기도합니다.
2. 나의 연약하고 가증한 악을 내놓고 겸손하게 말씀에 귀기울이며 적용하며 살기를 기도합니다.
3,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나의 외식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말씀에 경청하며 순종하게 하소서
4. 두렵고 떨리는 모습으로 옷깃을 여미고 주님을 대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보시는 내 진짜 모습을 보게 하소서.주께서 주신 물질을 흥청망청 쓰지 않고 구별하여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