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24
제 목: 까탈스러운 의인
누가복음20:19-26
요약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의 비유 말씀에 자신을 향한 말씀으로 듣고 예수님을 잡고자 정탐들을 보내어 책 잡게 한다. 하나님의 도에 맞게 가르치는 선생님이여,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맞습니까? 묻는다. 예수님은 그 간계를 아시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지혜있게 대답하시자 그 대답에 책잡지 못하고 잠잠한다.
연구 묵상
1. 예수님이 내게 말씀하실 때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2. 내가 서기관과 대제사장처럼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3. 나는 스스로 의인인 체하지 않는가?
4. 나는 참으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는가?
5. 내가 외모로 취하는 것은 무엇인가?
6. 나는 상대의 간계를 알만큼 말씀으로 지혜로운가? 잘 분별하여 잠잠하게 하는가?
느낌
하나님은 오늘 말씀에서도 내게 말씀하고 계시고 내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도 말씀하고 계시는 줄 알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가 되거나 내 생활 양식이면 전폭적으로 수용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내 마음의 근원으로부터 뒤틀려서 혈기가 난다. 바리새인들도 자기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앎에도 불구하고 책잡아 잡아들이고자 한다. 배알이 뒤틀린 그 모습이 내 모습이다. 내가 어떻다고 감히 나를 네가 지적하는가? 하는 권위, 스스로에 대한 의로움이 겸손을 가장한 그 밑에 짙게 깔려 있다. 그래서 상대를 통제하려고 할 때, 그러지 않는 상대에게 화가 난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못 알아듣는가 싶은 것에 대한 생색, 이렇게까지 알려주고 배려해주었는데도 그걸 인정받지 못함에 대한 불평의 쓴뿌리가 자라가게 된다. 참으로 까다로운 사람이다. 참으로 손대기 어려운 사람이다.
나의 의로움에 대해 반격해오는 것에 대해서도 못 참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의로운 것이기에 내 최선을 못 알아주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과 함께 생색이 올라온다. 아~ 나는 바라새인이다. 나는 지금까지 등장한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참으로 안타까웠지 그게 나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 말씀에 무릎 꿇지 못했던 나의 교만이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어째서 바리새인은 그렇게 밖에 살지 못했을까? 동시대에 예수님을 그렇게 가까이 만났으면서도 어찌 그리 배우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는가? 안타까웠는데 그 모습이 나라는 걸 오늘에야 절절하게 깨닫는다. 나란 사람,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다.
바리새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백성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큰데 그게 배척받을 까 싶은 두려움, 나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다. 그 욕구가 크다는 걸 인정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 최근이다. 나는 자존감이 높아서 상대가 어떻게 나오든 나는 괜찮아~를 외치며 살았었다. 모든 사람들의 기본 욕구이긴 하지만 나도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 내가 그만큼 했을 때, 왠만하면 다들 넘어와서 내 편이 되어주고 인정해주고 사랑해주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는 강적을 만났을 때, 나는 부대낀다. 나를 인정해주는 그룹에 중독성이 있어서 사람을 즐긴다. 수다를 즐기고 떠드는 걸 좋아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뚱뚱한 사람에 대한 편견이 있다. 뚱뚱하면 게으를 것 같고 어딘지 무기력해보이고 자기 관리를 잘 못하는 것 같고.... 여자든 남자든 뚱뚱한 사람, 배 나온 사람은 저 밑에서 하대하고 깔보는 모습, 외모를 취하는 나의 약점이다. 사실, 찬양인도하는 전도사님께도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닫고 은혜를 받고 있지만, 나의 헛점 중 하나다. 또, 성형 수술한 사람에대한 편견도 있다. 워낙이 보편화되어 있긴 하지만, 오죽 컴플렉스가 심했으면 했을까 싶어 마음에 큰 결점이 있을 것 같은 편견을 갖고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누리며 사는 것 그것도 훌륭한 가치이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컴플렉스를 극복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를 성형 수술로 취하는 것 역시 괜찮다고 생각한 게 요즘 들어서이다. 그러면서 나도 성형수술하고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또, 내가 외모로 취하는 건 내 방식이 아닌 것에 대한 거부감이다. '나라면 이렇게 했을 텐데... '가 기준이 되어서 그러지 않는 상대에 대해 이해의 폭이 적다. 오전에도 우리들교회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다. 온라인으로 2월달 헌금이 정리가 되지 않은 걸 3월 헌금을 보내면서 함께 적어 보냈다. 내 기억으로는 2월 헌금을 보내고 며칠 있다가 온라인 헌금 내역을 적어서 냈었고 어느 날, 확인해보니 올라와 있지 않아서 한 번 더 온라인 내역을 보냈었다. 그런데도 올라와있지 않아서 3월에 함께 보낸 거였다. 거기까지 보낼 때에는 나는 아무 감정이 없었다. 또, 내가 텔레뱅킹을 이용하기 때문에 내 이름 뒤에 A라는 걸 붙이지 않기 때문에 있는 일들이어서 일처리를 번거롭게 한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고 교인 수가 많기 때문에 때로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챙겨야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원하는 건, 통장과 확인 후 빠진 헌금 내역만 등록해주면 되는 거였다. 그런데 전화까지 주셔서 하시는 말씀은 누락된 것을 함께 적어서 보내준 것은 잘 했다고 하시는데, 내역에서 빠진 실책이 내 탓인양 들려졌다. 누구의 실책인지 아닌지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 부분을 등록만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하는 내 생각과의 부딪힘이 있어 약간의 거리감이 생겼다. 그리고 통화후 다른 일을 하다가 1시간 정도 지나 조회를 해보았는데 여전히 등록이 되어있지 않았다. 그 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나라면 그 일처리를 헌금 내역 확인을 해서 처리해놓은 후 전화를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은 전화로 나에게 확인한 후에도 정리가 안 된 것이다. 이번에는 내가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확인했으니까 올릴 거예요'라고 명랑하게 말씀하시는데... 나는 그 순간도 당황스러웠다. '등록이 늦어져서 죄송하네요. '라는 말을 나는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3월달 헌금은 이미 등록되어 있었는데 2월달 것만 여전히 올라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내 이해의 폭은 그만큼 줄여졌다. 모든 사람들이 그런 면이 있겠지만, 나는 참 까다롭다.
아들들이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오늘부터 가서 연습해야 한다. 오디션 볼 때부터 속을 썩였던 둘째가 결국 자기는 안 가겠다고 버텼다. 그 말에 분이 올라오는데... 말씀 보고 기도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존중하지 않냐고 광분을 했다. 말씀으로 지혜롭게 잠잠하게 하기는 커녕, 아들은 돼지로 변해서 꽥꽥 소리지르고 나는 머리를 잡고 흔들었다. 아~ 나의 혈기! 사실, 아들이 갖고 있는 재능을 기부하며 공연하는 봉사의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도 틀리지는 않지만 하고 싶지 않다는 아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는데, 남편이 또 속상할 것을 생각하고 이 아이가 인생을 헛되게 보내는 것 같은 생각에 나의 교양은 폭력으로 변질되어 내 악을 드러냈다.
근 한 달만에 큐티 나눔에 큐티를 올린다. 컴에 저장해 놓은 자료를 날린 후 실족한 나, 25만원을 주고 데이터를 복구했다. 내게 주신 사건은 있을 만한 사건이라는 적용이 되지 않고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놓고 혈기를 부린 후 지난 수요일 드디어 복구된 컴이 다시 자리를 잡았다. 어떤 사건이 와도 요동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의 길을 가야하는데 금방 나는 의욕을 잃고 정리해서 글 올리는 일을 멈추었다. 학기초 바쁘기도 하고 홈피 정리도 하랴 분주함도 있었지만 그건 핑계였다. 하나님의 것을 드림에 어떤 간계에도 흔들리지 않고 내 몫을 다했어야 한다. 금요일 직장 신우회 모임을 한다고 공지해놓고 아무도 모이지 않았던 핑계로 못다한 공문 정리를 하다가 늦게 왔다. 그것 역시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한 회개 거리인 것 같다. 첫 모임이었는데... 비록 혼자였지만 첫 모임에 대한 감사 기도를 하지 못했음이 마음에 걸린다.
적용
1. 내 의로움이 악함을 인정하고 내 방식과 다른 상대방의 생활 양식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나의 오만함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편견을 회개하겠습니다.
2.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나의 의존적인 모습을 예수님께 내려놓고 하나님 말씀으로 채우겠습니다.
3, 까다로운 내 모습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그 근원이 어디서부터인지 나를 더 돌아보고 내가 만나지 못한 내 모습을 말씀에 비춰 객관적으로 잘 만나겠습니다.
4. 나와 다르다는 것을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지 않고 인정과 수용의 자세로 만날 수 있도록 폭을 넓혀주시도록 기도하겠습니다.
5. 아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폭력행위를 회개하고 아들에게 사과하고 앞으로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존중하며 사랑하겠습니다.
6. 하나님의 것을 드림에 흔들리지 않고 요동하지 않고 감사하며 나의 길을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