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23
제 목: 객관적인 내 모습
누가복음20:9-18
요약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맡긴 주인이 때가 되매 소출을 받으러 종을 보내나 괄시하고 학대하고 배척하자 아들을 보내나 상속자를 죽이고 자기 것을 만들려 한다. 포도원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에게 주시지않겠느냐며 비유로 예수님이 가르치신다. 그러자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고 사람들이 반응한다. 이에 보시고 가라사대 버린돌이 머릿돌이 되는 쓰임과 심판으로 깨어지고 가루가 되는 흩어짐도 말씀하신다.
연구 묵상
1. 내게 맡기신 것이 무엇인가?
2. 나는 내게 맡긴 주님의 것을 잘 가꾸며 소출을 드리고 있는가?
3. 내게 오신 예수님, 상속자를 환영하며 공경하고 주인으로 섬기는가?
4. 버린 돌이 예수님으로 인해 머릿돌로 쓰임 받는 인생임을 알고 감사하는가?
5. 나를 힘들게 하는 내 옆의 버린 돌과 같은 사람을 나는 어떻게 대하는가. .
6. 깨어지고 가루로 흩어질 심판받을 인생, 그게 당연함을 알고 내 상황과 처지를 인정하며 감사하는가?
느낌
내게 맡기신 내 인생,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시지만 내게 선택권을 맡겨 주신 내 인생... 그 감격에 감사하며 그게 전부라고 고백했던 나는 이제 변심을 하고 있다. 내게 맡긴 주님의 것이건만 잘 가꾸며 소출을 드려야 마땅함에도 게으름으로 악을 꾀하며 소출을 요구하시는 주인의 말에 오히려 학대하고 배반하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다.
내게 오신 예수님을 공경하며 환영하고 주인으로 모셔야 함에도 나는 여전히 홀대하고 있다. 나를 존중하시는 태도에 안하무인 같은 무시와 조롱을 마음껏 하면서도 가책도 없이 자유함을 누리고 있다. 그게 내 모습니다. 인격적인 존중과 대우, 대접을 받는 것을 이용하여 내가 하고 싶은 소욕을 좇아 막 살고 있다. 그게 내 모습이다.
버린 돌이 예수님으로 인해 머릿돌로 쓰임 받는 귀한 인생임을 알고 있음에도 감사보다는 불평과 짜증, 힘들다는 투정과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게 내 모습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내 옆의 버린돌 같은 섬김의 대상이 귀찮고 싫어서 깨어지고 흩어지는 심판이 당연한 인생이 자신임에도 그 처지에 대한 인정보다는 내 처지와 상황에대한 생색과 억울함이 더 나온다. 그게 내 모습이다.
비로소 그게 나라는 것이 인정이 된다.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고 직면하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기 싫었다. 그 말씀을 듣고도 그 진멸과 심판의 일이 내게만은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란다. 나를 바라보고 말씀하시지만, 나는 나를 보지 못한다. 예수님이 왜 나를 보고 말씀하시겠는가? 그럼에도 나는 부인한다.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듣고 싶지 않다.
처음 예수님을 믿었을 때, 신앙 생활 20년 된 사람이 부러웠다. 막연히 그 년수가 차면, 당연히 믿음도 성장하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지금, 내 신앙의 연수가 20년이 넘었다. 기도할 때, 처음 사랑 첫 사랑을 회복시켜 주소서 라는 기도를 들을 때, 나는 불쾌했었다. 교제 기간이 길면 길수록 깊어지는 게 사랑이지 어떻게 처음 사랑만을 노래하는가?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그 고백이 내 고백이리라 나는 자신 했다. 그리고 그 찬양을 부를 때마다 그렇게 된 양 혼자 취해서 감격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나는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갈 것이며 그만큼 더 사랑하리라. 내 주님, 내 사랑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하며 찬양하리라
그런데 오늘 나는 그 입술이 닳게 사랑한다 부르짖던 그 예수님을 쳐죽이는 포도원지기를 만난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이라고 나를 보시며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만난다. 내가 왜 어수선하고 속이 허하고 자리 잡지 못하고 붕~ 떠 있었는지, 왜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허허로운 마음에 쓸쓸했는지... 지금, 조금 보이는 것 같다.
우리 집에서는 흔하디 흔한 티슈~ 수요 예배에 갔다 손수건이 없어서 뽑아쓰다가 '이건 목사님 전용이에요"라는 그 말과 티슈를 뺏어서 집어넣는 걸 보며 뽑았던 휴지도 드리고 싶은 심정, 또 싸늘하게 가슴이 얼어붙는 치사함과 억울함에 못마땅하고 휴지조차 후하지 못한 교회 인심이 각박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깟 휴지에 그런 대접을 받는다는 게 속상했다. 그런데도 그 몇 장의 티슈가 왜 그렇게 부드럽게 느껴지는지... 평소에 귀한 걸 귀하게 대접하며 사용 못했던 나를 봤다. 한편, 목사님 전용 휴지를 목사님이 사용하시는 휴지라는 자랑스러움과 함께 말은 웃으면서 친절하게 했지만 그 말이 주는 거절감, 나도 상대에게 저렇게 할 때가 있었겠구나 싶은 자성도 되었다. 그리고 그 말에 밴댕이 속같이 또 꼬여드는 내 속 좁음, 미성숙함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회개도 되었다.
당연한 대접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는 내 태도, 어디 이뿐인가? 더 신경써 달라는 요청에 '나만큼 하는 사람이 어딨어?' 그 말이 불쑥 올라와 혈기가 났다. 그 입장이라면 당연한 요청인 것을 .... 또, 나란 사람이 어떻게 빚진 자인줄 객관적으로 안다면 인정하고 감사해야 할 일들을.... 나는 그렇게 내 감사를 허비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나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못 듣고 속이 꼬이고 있다.
나는 비난받아야 마땅하고 심판받아야 마땅하고 진멸하고 빼앗겨야 할 인생이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하나님이 내 환경과 상황, 처지 가운데 만나게 하시는 일들, 예수님이 나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 그 말씀에 감사하고 인정하고 회개할 것 밖에 없다. 그게 나를 직면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본 내 태도여야 한다.
적용
1. 예수님이 비유로 하시는 말씀이 나를 향한 말씀임을 알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회개하겠습니다.
2. 나에게 반응하는 피드백은 마땅함을 인정하고 겸손히 순종하며 나의 나된 모습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3. 나는 티슈가 아닌 두루마리 화장지를 사용할 처지임을 인정하고 가방에 여유있게 넣어 다니고 그게 없을 때에도 목사님 전용 휴지에 손을 대지 않겠습니다.
4. 내가 듣기 좋은 말씀만 혹해서 기울이고 나를 지적하는 말씀에 교묘하게 피해가는 나의 간계를 인정하고 말씀과 더 깊이 마주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