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어머니가 우리들교회에 오다
작성자명 [이민영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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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19
헤로디아와 딸 살로메...
무서운 어머니와 자아를 상실한 맹종적인 딸...
그들의 무서운 미움과 살인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의 가정으로 살아온
그들 삶의 결론일 것이다.
나 또한 무섭고 악한 엄마로 살아온 오늘 내 모습을 내 삶의 결론으로 보면서
내 31가지 죄목록 중 한가지라도 쳐서 죽이고 싶은 심정이다.
연년생으로 낳은 세 아이들은 하루 종일 시도때도 없이 하찮은 일로 잘 싸운다.
이기는 편은 당연히 큰 아이, 둘째 아이, 순서이다.
막내는 항상 막내라는 이유로 말싸움에서 밀려나 분을 품고 울고 만다.
둘째는 막내에게는 이기면서도 큰 애에게는 바락바락 대들다가 한 대 맞는다.
큰 애는 목소리와 키로 제압해버린다.
전혀 비논리적인 주장이다.
싸우면서 크는 아이들이라 했던가.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싸울 때마다 그냥 봐 넘겨지지가 않는다.
큰 애의 날카로운 쇳소리가 관자놀이를 찌르기 시작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내가 약자의 편이 되어 조용히 부글거리기 시작한다.
힘으로 억지를 부리는 큰 애에게 작은 애가 억울하게 당하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중간에 개입을 한다.
공정하게 판결을 해서 끝을 내게 하려고... 난 더 크게 소리지르며 큰 애를 몰아붙이고
어느새 약자(작은 아이)의 편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또다시 큰 아이를 울리고 만다.
그냥 놔두면 자기들끼리 그러다 말 것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알콩달콩 놀 아이들을
내가 공연히 편가름을 해버리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잘잘못을 정확히 가리는 것이 그리 큰 문제가 아닌데..
그냥 자기 의견 고집하다가, 자기 입장을 주장하다가
금방 잊어버리고 마는 일인데...
그러면서 자기들끼리의 서열과 질서가 생겨야 할 문제인데...
이것이 둘째 아이를 낳고부터이니
햇수로 10년... 째이다.
큰 애는 내리 동생 둘을 낳으면서 계속 우리 집안의 문제아가 되어갔다.
큰 아이에게는 마음의 병이 생겼고, 나에 대해 피해의식이 생겼다.
그래서인지 큰 애는 동생이 둘씩이나 되는데도 동생을 휘어잡지 못해서
얼마전 학원에서 인성검사를 했는데
리더쉽 능력이 0%가 나왔다.
충격이었다.
그리고, 지난 학기에는 자기 반 여자아이들에게 따돌림이 되고 있다.
만일 누군가 나를 10년 동안이나 옆에 붙어서 내가 큰 애에게 한 것처럼
네가 잘못이고... 네가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고.. 네가 억지 부리는 것이라고
계속 비난한다면 아마 나는 뛰쳐 나가든지, 미쳐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게다가 한 술 더 떠서 엄마에게 대들고 동생 미워한 죄를 회개하라고..
율법적으로 아이를 짓누르고 숨통을 졸랐다.
편애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너무나도 기도하고 울기도 많이 하고
차라리 나를 거두어 가시라는 기도도 했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큰 애가 너무나 불쌍해서 눈물이 나온다.)
그런데, 번번히 큰 애를 야단칠 때마다 나는 어릴 때 나의 모습과 언니의 모습이
투사되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니와 내가 연년생으로 친구처럼 지냈지만, 다투기만 하면 할머니가 달려와서
눈을 파랗게 뜨시고 나를 노려보시며 나만 야단을 치셨다. 잘잘못을 따져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억울했지만 당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학교 나가시고 내 편은 아무도 없었다.
왜 맨날 착한 언니를 이겨먹느냐고...
넌 동생이 왜 그렇게 못되 먹었느냐고...
모-옷 된 것..이었다. 나는.
그래서 사이가 좋아야 할 언니와 나 사이에는 늘 할머니 때문에
긴장감이 감돌았고, 엄마한테라도 사랑을 받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언니와 비교하고 모든 면에서 언니를 이기려고 했었다.
그런데 늘 그렇지 못했다.
언니가 외모도 뛰어났고
언니가 먼저 예수를 믿어 나를 교회로 인도했고,
언니는 미팅에서도 늘 킹카였고
기독학생단체에서도 믿음 좋은 형제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언니는 백마탄 왕자처럼 어느날 짠- 나타난 캐나다 교포 형부와
결혼하여 보란듯이 떠나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결혼한 언니도 지금 고난의 한 가운데에 있다)
언니가 떠나고 난 뒤, 대학 생활은 우울증과 수면병이 왔다.
학교에 가서 교실에 앉은 기억만 있을 뿐, 수업시간 내내 잠을 잤고,
집에 와서 잤고, 쉬는 시간에 휴게실에서 잤고
창피함과 수치심으로 기도실에 올라가 내가 왜 이러냐고 치료해달라고
고래고래 울부짖으며 기도를 드렸다.
이제 언니와 만나지 못하므로 그 긴장감을 잊고 살았지만
그 열등감이 내면화되어 다른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교만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똘똘 뭉쳐있는 어린아이가 내 안에 살면서
큰애를 야단칠 때마다 언니와 할머니에게 못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혼 후, 나에게 열등감을 갖게 했던 사람은 바로 내 남편..
멋있고 잘나가는 아트 디렉터였던 남편에 비해
세 아이 낳으면서 뚱뚱해지고 사회적 능력을 보여줄 수 없는 무능함으로
내 자존감은 한없이 열등감의 바닥을
헤엄치고 있었다.
나의 괴로움을 전혀 아는 체도 안하고 건져주기는 커녕,
정서적인 위로도 격려도 줄 줄 모르는 남편은
따뜻한 말 한마디 주고받을 줄 모르는 차가운 인형이었다.
더구나 원치 않는 아이를 셋이나 싸지른 내가 죄인이기에
힘들어도 힘들단 소리도 못하고 자존심으로 버텨오며 겉으로는 행복한 척,
속으로는 이를 갈며 견뎠다.
이제 우리들교회에 등록한지 6개월 째가 되었다.
혈루병 여인처럼 울며 살아온 결혼생활 12년만에
김양재 목사님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다.
목사님의 말씀 말씀이 다 내 이야기였고, 예배 시간마다 눈물 둑이 터져나와
울다 지쳐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 죄를 인정하니 자유함을 얻었고,
내 죄가 중한 만큼 십자가의 은혜로 마음이 가벼워졌다.
집에 돌아와 다시 옛모습이 튀어나올지언정 그것에 절망하지 않고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의 거룩한 신분을 확인한다.
내 자존감이 왜 그렇게 낮아졌는지... 나도 모른다.
사탄은 끊임없이 나를 정죄하고 내 정체를 속이려고 거짓말해왔다. 그 속삭임을 들으면
설겆이를 하다가도 다 팽개친다. 화가 나서.
그러나 이제는 그런 거짓말을 속살거릴 때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친다.
내 자존감은 예수님 안에 놓여졌기 때문이다.
구원의 목적이 없는 가족은 가족이 아니라 원수임을 알았다.
예수가 없는 가족은 사단 마귀의 온갖 미움과 분노와 더러운 죄를
실험 실습하는 지옥임을 알았다.
남편이 외도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가출하지 않고, 부도를 맞지 않아도, 돈이 있어도...
가족은 얼마든지 말로써 서로를 비교하고 죽이고 때리고,
감정으로 서로를 짓밟고 무시하고 자기자신을 하찮게 취급함으로써
얼마든지 지옥을 만들 수 있다. 겉으로는 멀쩡하게 보이나 속으로는 활활 타오르는 지옥...
그 지옥이 모두 나 한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제 내 마음을 예수님께 드렸다.
이제 밤에는 잠을 자고 아침이면 눈이 떠진다.
군대 귀신이 떠나고 정신이 온전해져서 예수님 앞에서 큐티로 하루를 시작한다.
내 마음에 풍랑이 잔잔해지니 남편이 보이고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10남매 속에서 자기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죽여가며 저 혼자서 묵묵히 살아 온 남편..
비교의식의 쓴뿌리도 없지만, 사랑받고 자란 경험도 없어 사랑 없는 공허감도 모르고
사랑을 표현하고 나눌 줄 모를 뿐이다.
나 때문에 고난 받은 큰 딸이 이제 그 받은 고난만큼 말씀이 들리기 시작하고
나를 용서해주고, 나와 가장 잘 통하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캐나다에 사는 언니도 고난의 한 가운데서 나와 하나가 되었고,
김양재 목사님의 말씀으로 언니와 언니의 친구들이 살아나고 있다.
예수 안에서 우리 가족이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다.
나도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
두렵고 떨립니다. 내 안의 악함을 아직 다 끌어내지 못했지만..
혈루의 근원이 마르는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하며,
정신이 온전하여져서 주님의 증인이 된 거라사 광인처럼
저도 온전한 주님의 증인이 되기를 기도하며 글을 올렸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죄의 뿌리들을 캐내어 여기에 올려야 합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삶으로 양육해주시고 목욕탕 나눔으로 저를 길러주신 박희경 목자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존경하는 김양재 목사님, 저를 위해 우리들교회를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