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본문 누가복음 19:28-44절 은 사실 몇일전 본문이다. 이 본문을 묵상하며 몇일동안 나는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예수. Who are you?
마치 빙산의 일각을 건드려 드러난 엄청난 빙산의 모습에 기가 질린것 처럼 , 혹은 무슨 뇌관을 잘못 건드려 내가 감당할수 없는 어떤 것이 건드려 진것같은…..
본문내용은 예수님께서 , 보기에도 민망하게 뒤뚱이는 나귀를 타고 (겸손하게)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모습이다. 군중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곳에서는 영광이로다” 하며 어떤이들은 나뭇가지들을, 어떤이들은 웃옷을 깔아드리며 너도 나도 예수님을 환영하는 열광의 도가니이다.
아마도 그들은 오병이어나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떡먹듯이 (?) 쉽게 하시는 예수님이 떡먹듯이 후딱 로마 군병들을 몰아내고 그들의 왕이 되는줄 알았을게다.
나는언제부터인가 예수님을 갑자기 잘 모르게 되었다. 성경을 읽어도 선지자 예수님의 비유말씀은 잘보여도 하나님인 예수님이 만나지지 않았다. 이게 내게 얼마나 큰 고민이었는지…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시작으로 콘스탄티노플 회의, 에베소 회의 ,칼캐톤 회의에 이르기 까지 무려 150년에 걸쳐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토의가 되고난 후에야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일체론이 신학적인 정설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그냥 궁금해서 인터넷 찾아본것임) 리처드 도킨슨같은 쓸데없는자가 “만들어진 신” 따위를 운운해도 애초에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 재앙을 타고난 그를 그저 불쌍하다고 여겼지만 나역시 사도신경의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장사한지 사흘만에 죽은자 가운데 살아나시사…”는 어느새.. 입술의 고백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끊임없이 들었다.
동정녀 탄생이 신화이든, 상징이든, 때안묻은 순전한 믿음으로 믿는 ‘사실’이든..나는 그분이
사람들이 구세주가 왔다며 환호하며 소리치던 바로 그곳에서 꿈에도 생각하기 끔찍한 십자가를 지고 졸지에 정치적 영웅에서 비참한 허풍쟁이가 되어 죽어버린 그순간, 인간이 경험할수 있는 가장큰 치욕, 육체적 고통, 공포를 느끼며 벌거벗겨져 죽어버린 그순간. 내가 놓임 받았다는것을 믿는다. 느낀다. 눈물이 난다….
나는…지금 어떤 모습으로 예수님을 연호하고 있는가?
내 주문사항이 적혀진 자동판매기 옆에 서계신 예수님이 척척 내 기도의 응답을 꺼내주시기를 바라며 그분의 이름을 부르는가? 호산나 호산나를 외치던 그 군중사이에 끼어 엉거주춤 서있는가?
주님, 저 정말로 주님을 알기를 원합니다.
아둔한 제게 주님 드러내 주시고 1+1이 2인것은 증명하지 않아도 진리인것처럼..또 1+1은 공부하지 않아도 어느날 그냥 알아버리게 되는거 처럼 부활이, 그 진리가, 우리의 유일한 그 돌파구가 어느날 그냥 알아버리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