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도 믿지 않는 것과 몰라서 믿지 않는 것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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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18
2007-01-18 마가복음 (Mark) 6:1~6:13
알고 짓는 죄와 모르고 짓는 죄 중에 더 악한 것은?
양육 과정에서 다뤄져 이미 깨달은 문제지만
세상적 가치관으로 설명하기 힘든 게 이 문제다.
나는 이미 이해했기에, 조심스럽게 아내에게 물어보았더니, 역시나..
오늘 본문의 묵상 주제로 생각해 보았다.
‘알고도 믿지 않는 것과 몰라서 믿지 않는 것 중 더 악한 것은?’
예수님은 오늘 고향을 방문하신다.
제자들이 따르고, 그동안 행한 사역의 중간 결산을 할 장소로
자신의 홈 라운드를 택하셨는데 결과는 예상 밖이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이상히 여기셨더라’ ......상당히 놀라신 장면이다.
지금까지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내어 쫓고 죽은 사람을 살리셨는데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신 일이
고향에서 행하신 사역의 전부다.
왜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알고도 모른 체 했을까? 몰라서 그랬을까?
알고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지 않았을까, 몰라서 안 믿었을까?
중요한 것은 둘 중 어떤 경우라도 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더 악하든 덜 악하든 악한 것은 악한 것이며 그들의 갈 길은 뻔하다.
편견, 교만, 자존심.... 그 어떤 것도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지 못한다.
그들은 불신의 댓가를 치를 것이다.
이제 나의 선택은 분명해진다.
죄는 지을 수 있지만 믿음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지은 죄는 회개하면 되지만 모르고 지은 죄는 회개할 수도 없음을 경계하여
항상 내 죄를 볼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은혜를 인하여 얻은 믿음으로, 오직 영혼 구원만을 소망하여
나를 이 땅에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
오늘, 아니 방금 전 어제 그 친구가 찾아왔다.
7년 전, 퇴직금 거의 전부를 내가 경영하던 회사에 자원하여 투자할 정도로 친했고,
신문사 경제부 기자하다가 출가하여 어느 절의 주지승이 된 법안 과 함께
음주의 자리에서 자주 어울렸으며, 자신은 카톨릭 신자지만 나에게 불가의 인연이 있으니
법안 과 같은 길을 가야 한다고 권하는 바람에 멀리하게 되었고,
어제도 수요 예배 중, 만나자는 연락이 왔으나 응하지 않자
대취하여 포장마차로 찾아온 친구 앞에는,
몰라서 믿지 않던 나도, 알고도 믿지 않던 예전의 나도 없었다.
다만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으로 새 생명을 얻은 나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