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7:1-10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4)
내게 맡겨진 일에 감사할 때가 더 많다.
한가할 때면 이렇게 큐티할수도 있고
시간조정하여 기도모임에도 갈 수 있다는 점에서.
또, 여지껏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운영해 왔으니... 불평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간혹 내가 예상했던 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스스로를 들볶고
고객에게 시달릴 때는 머리 안쓰는 일을 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난주 일이다.
자기 말이 곧 약속이라는 고객과 말로, 또 그이후 계약서에 싸인함으로서 일을 맡아 처리 하였다.
그는 곧 약속한 금액을 송금해 주기로 했는데
그사람의 부인이 전화를 해서는 자신이 동의하지 않은 계약이므로 돈을 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짧게 얘기하면, 일이 성사 되고 나니 마음이 바뀌어서 약속한 돈을 다 내기가 싫어진 것이다.
미국 측과의 약속을 지키기위해서는 이 고객의 부인을 설득하던가
미국측에 계약 취소를 통보하고 그동안 쌓은 신용에 먹칠을 하던가 둘중의 하나였다.
극심한 스트레스중에 이틀간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묵상하였다.
계약철회로 수임료를 못받을 것을 두려워 하는것인지,
쌓았던 신용잃는 것을 두려워 하는 것인지,
즉, 두려움의 실체가 돈인지 신용인지 곰곰히 생각을 했다.
신용보다는 못받게된 돈이 더 아쉬웠다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즐겨 암송하는 신명기 8:18 을 부르짖었다.
'내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노니 그가 내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
그리고 선포했다. 재물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므로 맘몬의 영에게 휘둘리지 않겠다고.
돈에 대한 아쉬움은 선포 기도하면서 떨구어 냈는데
속았다, 이용당했다는 피해 의식은 쉽사리 가라앉지를 않았다.
미국측에 다 까발려서 이사람이 아무하고도 일 못하게 재뿌려 버려...우이쒸?
그러나 사무실벽에 십자가를 걸어놓고 하나님 믿으라 권면하는 자가
그런 행동을 하면 안되므로 의지적으로 꾸욱 눌러 참고 밤을 보냈다.
다음날 결국, 해약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갔다가 계약금의 일부를 감해주고 돈을 분할로 받기는 했다.
그녀는 자신은 암수술을 했고, 마음의 병도 있어서 신경안정을 해야하는데
의사도 속에 있는 말 다 하고 맘속에 두지 말아야 병이 도지지 않는다고해서
그리 한다며 나중에 맘이 가라 앉으면 사과도 곧잘 한다는 말을 했다.
환자인 자기를 사람들은 이해해줘야 한다고도 했다.
???
말도 안되는 논리지만 오늘 본문을 읽으니 생각이 좀 달라진다.
'만일 하루 일곱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4)'
영어 본문에는 if he returns to you, saying, 'I repent', you shall forgive him.
진심이든 아니든 말만하면, saying 만 하면, 믿어 주고 용서하라는 뜻이다.
위와 같은 경우를 가끔 당하다보니 방비책을 마련하면서
나도 모르게 영악한 사람이 되어간다. 그게 맘에 불편하다.
그냥 누가 변명을 둘러대면 그냥 믿어주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싶다.
속더라도 믿고 좀 손해 보고 사는편이 나은것 같기는 한데 잘 안된다.
혹시 진짜 그 사람이 병이 깊어서 히스테리를 부린것이라면
내가 같이 맞서서 말싸움하고 대립하는 것보다 져 주고
달래고 설득하는 것이 더 성숙한 사람이 할 노릇이라는 생각도 든다.
맞나? ???
아니면 그냥 다윗이 시므이의 저주를 담담히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이유가 있으실테니 그저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길 바라면서 참는 것이 좋을 둣도 하다.
사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나를 대비시키면 나역시 유구무언이다.
하나님~ 제가 어렸을 적에 이런 상처 받은것 아시지요.
그래서 제가 지금도 이부분이 아프고 저부분에 쓴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저를 봐 주세요라고
어리광을 부릴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또 변덕은 얼마나 부렸던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안그럴게요..
라고 얼마나 많은 입발린 just saying I repent... 하지 않았던가.
위 고객의 부인처럼 나도 말도 안되는 논리로 나를 합리화 시킨적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하나님이었다면 구역질이 날정도로 싫어졌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를 수만번도 용서했던 것을 기억하면
나역시 진심이든 아니든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 천만번이라도 옳다.
주님 죄송했습니다. 지난주 처럼 황당하고 기찬 일이 생길때
오늘의 본문을 명심하고 관용하는 맘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