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이 좋아하는 사람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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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15
2007-01-15 마가복음 (Mark) 5:1~5:20 ‘귀신이 좋아하는 사람’
오늘 본문의 귀신들린 사람을 보면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순다고 되어 있다.
귀신이 들어가서 그의 힘이 세어졌는지, 아니면 원래 힘이 센 사람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두 가지 이유가 다 해당되는 것 아닐까?
밤새 돌아다니고 자기 몸에 상처를 낸다고 한다.
부지런하여 잠도 없고 자기 분을 못 이겨 자해하는 모습이다.
또한 귀신은 신령해서 제자들도 모르는 예수님의 신분을 정확히 알아본다.
귀신이 좋아해서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힘이 세고 부지런하며
자기 의가 강하고, 성격이 강퍅한 사람일 것 같다.
힘이 세고 부지런해야 밤낮 없이 부리기 좋을 테고
자기 의가 강해야 한 번만 속여 들어가면 끝까지 종노릇 할 테고
성격이 강퍅해야 악한 말을 하는데 익숙할 테니 말이다.
부지런하고 힘이 세며 자기 분을 못 이기면 악한 말을 서슴없이 하고
술에 취하면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사람의 모습이다.
그런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바로 나였다.
30 년도 더 전에,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의 개종으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은 폭발 시각을 맞춰놓지 않은 집안의 시한폭탄이었다.
장손의 대학입시 실패가 뇌관에 불을 붙여 불화의 먹구름이 덮이면서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시작된 나의 폭음은 군대 가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10.26으로 인한 휴교로 군에 갈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 팔에 난
담배 불 자해 흉터 때문에 성형수술을 받고서야 해병에 지원 입대할 수 있었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고 목사님 주례로 결혼하여 딸 아들 낳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주일에만 교회당 가는 일이 신앙생활의 전부였던 우리 부부의 문제는
거의가 나의 음주로 인한 것이었고, 신혼 초 다니던 교회에서 교육 받은 귀신론 덕분(?)에
귀신은, 나의 일탈을 정당화하며 나에게 면책 사유를 제공한 고마운 존재였다.
아내의 권유로 몇 번이나 귀신을 쫓아낸 기억이 있다.
세월은 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생명의 말씀이 없었다면 오늘의 내가 있었을까?
예수님께 절하며 그 냥 있게 해달라는 귀신을, 예수님은 단호하게 꾸짖음으로써
우리가 귀신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를 알려 주신다.
“더러운 귀신아” 라는 말씀에서 귀신은 더러운 존재라고 규정하신다.
포악하다거나 간교하다는 말로 표현하지 않고 더럽다고 표현하는 건
우리 마음속의 성스러운 곳, 성령님이 거하실 그 곳을 더럽힌 죄가
가장 크기에 ‘더러운(unclean) 이라는 표현을 썼으리라.
귀신이 나간 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은 더 급한 소명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이것도 내 모습과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