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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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7.01.12
2007-01-12 마가복음 4:13~4:20 ‘말씀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다른 날보다 아침이 부산하다.
재형이가 실력이 못 미치는 곳이라 생각하여 기대도 안 한 학교에서,
서류 합격 했으니 오늘 실기 시험 보러 오라는 통보를 받고
청년부 수련회 가다 말고 돌아와, 밤새 그린 악보로 실기 보러 간다기에
수능 끝난 후 내려놓았던 아침밥 극성을 모처럼만에 떨었다.
큐티 하다가 밥하랴, 아내 장사할 야채 다듬어 주랴 나 혼자 정신없는데
늦게 일어나 무슨 일인가 하던 아내가, 볶음밥 양이 많다며 짜증스런 목소리로
“5 인분은 되겠다” 하는 말에 화가 치밀어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당신 눈에는 이게 5인 분으로 보여? 분별이 안 되는 사람이구만,
나는 큐티도 못하고 정신없는데, 안목이 어쩌구.....궁시렁 궁시렁~~”
말씀 듣고 양육 받으면서 일어난 변화 중의 하나가
새로운 언어의 학습인데, 그 언어들은 세상에 있는 흔한 말이지만
목사님의 영적인 가공으로 조립되면 촌철살인의 카피로 바뀐다.
아쉬운 건, 세상 사람들에게 써먹으면 알아듣지를 못해, 풀어 써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공동체 지체끼리의 나눔에 주로 사용하는데,
유독 아내에게는 핍박의 무기로 사용하니,
말씀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옥토가 되지 못하는 나를 본다.
몇 달 전 마태복음의 이 본문으로 목장 예배를 볼 때
돌투성이에 가시 떨기 무성한 길가 밭 같은 나를 고백하고
옥토가 되기를 간구하였는데, 아직도 사단이 무시로 드나들고
돌무더기, 가시 떨기는 그 모습 그대로다. 조금 변한 게 있다면
옥토가 조금씩 보인다는 건데, 공간적 개념이 아니라
은혜의 햇살이 비치는 예배와 나눔의 시간에만 잠깐씩 옥토로 변했다가
그 자리를 뜨기가 무섭게 원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아내를 위해, 아내와 나눌, 말씀 준비 못했다고 아내에게 화를 내고 말았으니
열심이 특심이 되어 나도 속고 아내도 속는다.
자는 모습을 보고 나왔기에, 잘 가고 있는지 전화했더니 아들은 속이 안 좋아서
볶음밥은 먹지도 않고 나왔단다. 무엇을 위한 열심이었던가?
화내느라고 집에서 못 한 기도를 전화로 해주었다.
“하나님, 저의 쓸 데 없는 열심에 분별력을 주시고,
재형이에게 허락하신 재능이 있다면 오늘 발휘하게 하시되
그 재능이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만 쓰이게 하시고
30배, 60배, 백배가 아닌, 노력한 만큼의 열매만 거두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