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17
누가복음 9:37-50
제목: 예수님 앞에서
요약
산에서 내려오시자 무리가 맞이하는데 한 사람이 귀신들린 아들을 치료해달라고 외친다. 제자들에게 의탁하였지만 하지 못했다는 말씀에, 믿음 없고 패역한 세대여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참으랴 하시며 그 아들을 낫게 하사 도로 주시니 하나님의 위엄에 놀란다. 예수님은 그 때 내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우리란 말씀을 하시며 귀에 담아두어라 말씀하시나 숨김이 되어 깨닫지도 못하고 또, 제자들은 이 말씀을 묻기도 두려워한다.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변론할 때 작은 그이가 큰 자라 하시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은 쫓지만 제자들을 따르지 않는자에 대해 금했다는 질문에 금하지 말라고 하신다.
연구 묵상
1. 예수님을 기다리며 참으며 말씀하실 때까지, 내려오실 때까지 나는 인내하는가?
2. 나의 가슴 아픈 고난을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외치며 간구하는가?
3. 예수님께 가르침 받은 대로 사명대로 나가서 일 할 때, 나는 역사하는 현장에 있는가? 능히 못하고 있는가?
4. 믿음 없고 패역한 세대라는 예수님의 지적에 나는 회개하는가?
5. 아들을 데려오라는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데려오는가?
6. 꾸짖어 낫게 할 것이 무엇인가?
7. 하나님께 데려오면 낫게 하셔서 도로 주심을 믿고 있는가?
8. 하나님의 행함을 보고 그 위엄에 놀라 어떻게 반응하는가?
9. 귀에 담아 두라는 말씀을 듣고 나는 어떻게 반응하는가?
10.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할 사람이 누구인가?
11. 주의 이름으로 일하는 나와는 생각이 같지 않고 함께하지 않는 이웃을 나는 용납하고 수용하는가?
느낌
변화산에서 내려오시길 기다리다가 예수님이 오심을 기다렸던 큰 무리는 예수님을 맞이한다.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기다리며 인내하고 예수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맞이하고 나의 고난을 다른 사람들 앞에 부끄럽지만 내놓고 돌아봐주시기를 간구하고 있는가? 기다리는 것, 인내하는 것, 게다가 언제일지 모르는 기다림은 참 답답하고 힘들다. 그렇지만 기다리니까 맞이할 수 있었다. 예수님을 맞이했더니 그 앞에 부르짖었더니 돌아보셨고 고침 받았다. 무리 중에 묻혀 있을 때에는 내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었고 무리와 만났을 때에는 내 안에 역사가 없었지만 나를 드러내며 그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예수님께 아뢰었더니 내 안에 역사하신다. 무리에 속해서 기다렸기 때문에 오래 기다릴 수 있었고 그게 공동체의 유익이고 공동체 가운데 있는 힘일 것이다. 그렇지만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는 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소리질러 예수님을 향해 간구해야 한다. 내 외아들이니이다. 나의 절체절명의 고난이니이다. 자세하게 아뢴다. 자세히 아들의 상황을 아뢴다. 입으로 얘기하고 싶지 않고 직면하고 싶지 않은 그 증상들을 자세히 아뢴다. 마음 아픈 그 일을 자세히 아뢴다. 피 철철 나는 그 아픔을 내놓는다. 우리들 공동체를 보는 것 같다.
나의 덜렁거림, 반복되는 실수!! 어제도 여러 가지를 나눠주다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건 놓쳤다. 그러나 나의 다행스러움은 공동체에 오픈은 잘 한다. 그리고 나의 한계도 잘 인정한다. 부끄럽지도 않다. 그게 나니까.... 그런데 때로 거추장스럽다. 반복되는 듯한 모습에 짜증이 나기도 하다. 수용하고 용납하여 내놓긴 하지만... 예수님께 드러내는 게 필요하다. 예수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아들의 아빠와 화평하지 못함, 자신의 관리 능력 부족, 삶의 무질서.. 그 역시 예수님께 간구하는 나의 큰 문제이다. 그 앞에 부르짖었더니 돌아보시고 고침 받았다. 그 말씀에 힘이 된다.
예수님의 제자로 내 삶터에 나왔는데 역사가 없다. 신우회, 공동체에서는 탄력을 받아 나오지만, 같은 공동체여도 그냥 모임에서는 나와 상대는 구별이 없다. 똑같은 말씀에 배꼽 잡고 웃고... 나는 세상과 너무나 화평하다. 목사님 말씀처럼 한 영이 아니어서 불화하는 게 맞는데, 나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화내야 하는데... 나를 너무나 좋아하고 나도 상대들이 너무나 좋다. 뿌리와 근원에서의 약간 말이 통하지 않고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상대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지만, 귀신을 쫓아 주기를 구하는 말도 없을뿐더러 귀신 쫓는 일을 할 수 없는 나의 무능을 만난다. 그냥 웃고 떠들 때, 내가 드러내야 할 때가 언제일까? 라는 생각만 잠깐 했지만...나는 예수의 '예‘자도 못 꺼냈다. 다만, 술을 안 마실 뿐이다. 다만, 술을 권하지 않을 뿐이다. 내 속의 영역에서는 힘이 있어 보였지만, 예수님께 파송 받아 나간 제자들이 쪽도 못펴고 믿음없는 패역함을 보였듯, 나는 오늘을 믿음 없는 패역함 속에 살았다. 하나님, 내 믿음 없음을 용서하시고 나의 패역을 고치소서. 세상과 불화하는 것을 겁내지 않게 하시고 내가 있는 곳에 참화평을 누리려면 싸움이 먼저 있음을 인지하고 싸움이 있어야 할 곳에서 화평한 것을 회개한다.
아들을 데려오라는 말씀에 즉시 순종하고 데려왔고 예수님께 내놓아야 해결됨을 알았기에 믿음으로 순종한다. 꾸짖어 낫게 할, 나의 믿음 없음, 세상과 화평한 나의 진정한 불화, 아들의 질서 회복,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품고 열심내는 아들로의 변화... 먼저 예수님께 데려오자. 예수님께 꾸짖음을 받게 하자. 그래야 낫는다. 그래야 고쳐서 도로 주신다. 예수님의 행하심에 나는 감사와 찬양을 돌린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행하셨고 행하시고 행하실 주님을 믿고 감사와 찬양을 돌니다.
깨닫지 못함은 숨기시기 때문이지만, 또, 내가 그 말씀, 그 고난이 두려워 묻지도 못하는 것은 없는지 오늘 내게도 질문하신다. 예수님을 믿으면 고난은 세트 메뉴로 따라옴을 알기에 처음엔 발 담그기가 두려웠고 그리고 내놓을 큰 고난이 없음이 부끄러웠고 이제는 말씀 들리지 않는 이 고난이 가장 큰 고난임을 안다. 그래서 나의 말씀 듣고 적용하지 못하는 이 고난, 날마다 묻는다. 말씀하여 알려주시길 날마다 여쭙는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접해야 할 내 작은 이웃, 내가 깔봤던 나의 상사, 노인네라고 흉봤던 나의 상사, 그가 어린 아이다. 이번에 떠나면서 선물해야 할 명단에 넣지도 않았던 그 상사, 나의 어린아이다. 나와 소통하지 못하고 교제하지 못했던 그 사람들이 어린 아이다. 그 사람의 영향 아래 있지 않은 내 주위의 작은 어린 아이, 그 사람을 내가 영접할 때 나도 곧 성장할 수 있다. 그렇게 얕보고 멀리해서는 그를 통해 내가 성장할 나의 영역은 여전히 어린아이로 고착되어 나를 성장시키는데 방해를 줄 것이다. 내 생각과 다르고 내 방법과 다른 그러나 주님의 이름을 알고 있는 내 동지들, 나는 금하고 있었다. 나와 교류하는 것도 금하였고 나를 이해하지 못함에 금하였다. 그러나, 주님의 이름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그들, 나를 위하는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이다. 시숙, 시어른, 신우회에 별반응 없는 믿는 동료, 내 교육 철학과 다른 동료, 생활 양식이 다른 이웃, 그들은 모두 나를 위하는 사람들이다. 나의 동지들이고 함께할 귀한 협력자들이다. 함께할 나의 이웃들을 위해 기도한다.
적용
1. 예수님 앞에서 기다리며 들리지 않는 말씀을 듣고 깨닫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여쭙기를, 아들의 세세한 상태를 아뢰며 큰 소리로 간구합니다. 주님이 그 일 가운데 행하심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 삶의 터에서 드러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낫게하지 못함을 용서하시고 내 믿음 없음과 패역함을 회개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고침 받기를 바랍니다.
3. 세상과의 불화를 통해 질서가 회복되고 진정한 회복과 화평이 이뤄짐을 인지하고 예수님 앞에서 세상과의 불화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4. 예수님 앞에서 내 주위의 어린 아이, 내가 영향 받지 않는 어린 아이를 잘 섬기며 그들과도 교류하며 선물 명단에 그들의 이름도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서 그들이 나의 협력자이고 동지임을 알고 마음을 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