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28-36절을 보며, 초막 셋 증후군을 묵상한다.
변화산상에서 예수님의 몸이 영화롭게 변화되었다.
황홀감에 취한 베드로가 말한다.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사십시다.'
하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또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을 짓자고 했다.
초막 셋 신드롬이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영광에 취해 자기도 모르게, 무슨 소린지도 모르는 말을 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초막 셋을 짓고 거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이 땅에 초막이나 지어놓고 영화롭게 거하시려고 오신 게 아니다.
우리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을 받으시려고 왔다.
하지만,
당장 눈앞의 황홀경에 취한 베드로에겐 그 어떤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의 영광, 기쁨, 황홀함을 영원히 누리고 싶었던 게다.
성경은 말한다.
베드로는 자기가 하는 말을 자기도 알지 못했다고.
무슨 정신없는 소리를 하고있는지 자기도 몰랐다고 말씀한다.
초막 셋 신드롬은 다른 말로 하면 정신없는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을 살면서 정신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지어야 할 십자가는 생각도 않고,
눈앞의 황홀경에 취해, 예수때문에 받을 영광만 생각하는 초막 셋 신드롬에
빠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없는 말을 할 수 있다.
잠깐 눈앞의 황홀경에 취하면 정신없는 생각도, 정신없는 말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초막 셋이나 지으려고 하는 엉뚱한 짓을 할 수도 있다.
베드로가 그랬는데, 난들, 우린들 예외이랴.
그래서 하나님께 구한다.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한다.
내힘으로는 안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가 밝았다.
예수덕분에 영광받을 생각보다는,
예수님 때문에 져야 할 십자가를 먼저 생각하는,
단호히 내몫에 태인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고 싶다.
그런 힘과 능력을 달라고 또 예수님을 부르는 목욜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