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을 분명히 하시라니깐요/막1:23-34 마가복음에서 길(Way)은 터닝 포인트의 단서를 제공합니다.
울 주님께서 가버나움으로 가시는 도중에 해변을 지나시다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이윽고 찾아간 회당은 때마침 예배 중 이었습니다.
교회가 아직 형태를 갖추기 전에는 회당장이 집례를 하고
시편과 토라를 낭독하는 정도의 예배였는데
울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회당에 오신 것을 보면 아마도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인 사이트를 제공하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갑자기 귀신들린 사람이 일어나서 예수님에 대하여 언급하자
주위가 어수선해 졌는데 곧바로 울 주님께서 권세 있는 말씀으로
사태를 진정시키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귀신 론을 가지고 재미를 본 이단이 김 귀동 입니다.
저는 귀신논쟁이 나올 때마다 유치하게 생각해서 들어보고 자시고 하지도
않았었는데 작년에 베니 힌(Benny Hinn)이
여의도 S교회에 와서 집회를 하고 간 후에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영향을 받았던지
제가 아는 집사님이 베니 힌(Benny Hinn)의 성령 론에 대하여
제게 강청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의 이론중에 가장 설득력있는 부분이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알리는 팡파래가 귀신을 쫓은 사건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저도 그것을 인정하지만
그러나 이것(이적)이 현재에도 연속되어야 한다는 것은
목적 인식에 대한 소치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1차 독자에게 이적(귀신을 쫓는 것)은
하나님 나라, 혹은 메시아에 대한 입증이 목적이었던 것처럼
현재의 이적도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인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세요?
해결할 수 없는 죄와 깊은 죄책의 그늘 속에 있던 저를
시몬의 장모처럼 벌떡 일으켜 주신 주님,
제가 먼저 생명력 있는 주님의 가르침으로부터
잘 배우고 순종하고 따르게 하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싸움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의 싸움인 것을 직시하고 나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갈 때
기도의 씨름으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시고
높아지고 싶고 쾌락을 누리고 싶은 자아와 싸움을 끝까지 포기치 말게 하옵소서.
2007.1.3/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