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속에 떠는 너를 위하여 내가 할 일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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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2.30
시편34편1절-10절 [두려움 속에 떠는 너를 위하여 내가 할 일] 2006/12/30
엊저녁 송년예배를 마친 시간 열한시경쯤
그전 나와의 거래가 잦았고 거래 금액이 많았던 젊은 청년이
지금은 업계에 큰 손해를 끼치고 서울로 피신하여 머물고 있습니다.
나에게 자신을 소개한 것과
사건이 발생한 후 다른 이들이 집안을 조사해본 결과를 들려주는
집안내력은 사뭇 틀림이 있어 어떤 것이 정확한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에 대한 헤아림보다
그 청년에 대한 아쉬움과 근심이 큽니다.
그와 거래하는 동안 손해를 당하지 않았기에,
거래하는 동안에도 계속적인 신앙에 관한 얘기들을 주고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처음 그와 거래한 몇 달 만에 그가 제품이 든 가방을 분실하였을 때에도
그가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준바가 있었고
그 사건을 통한 인간적인 정이 두터워 졌으며
이후 그를 통하여 많은 제품을 팔게 되었습니다.
삼십도 못된 청년이 거래하기엔 큰 금액이었지만
그가 하는 말을 통해서 집안의 배경이 좋고
그러다 보니 친인척을 통한 고가의 제품을 구입할 만한 여유가 있는 분들이 많았었나 봅니다.
거래를 위하여 제품을 가져갈 때마다
“잘 팔리기를 기도해 달라”는 말을 들으며
맘속으론 “그런 일은 기도해서 이뤄지는 것이 아냐”하는 생각과는 달리
“알았어”라는 대답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 때 좀더 강력하게 모든 인생의 필요는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부족함이 없게 하심을 전하여야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한 제품씩 판매를 성공할 때마다 저는 많은 수익이 있었고
교회와 가정과 제 사업장에도 윤택한 빛이 돌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청년은 예전 ‘오렌지 족’ 까지는 못되었어도 ‘낑깡’족 정도는 되었든 시절을 못 잊어
수입이 날 때마다 신발에서부터 머리모양까지,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의 치장이 달라졌습니다.
그를 통해서 명품의 다양한 종류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날은 신형차 SM7로 바뀌어서 가정에서 사용하는 차가 바뀌었나 했었는데
근래 알게 된 것은 집에서 사용하는 체어맨 최고급 사양이 따로 있고
SM7은 그 청년 전용차라고 하니 씀씀이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외에도 집안 사업으로 소금사업을 잘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들려오는 소식은 모든 사업을 되팔기 위한 위장사업이라 하니
그동안의 그와 나누었던 대화들에 대한 공허함이 밀려왔습니다.
오늘 새벽5시 30분경 눈이 떠졌습니다.
평소 금요기도모임후 토요 일 만큼은 푹 잠을 자는 습관을 가졌었는데
밤늦게 그가 단돈 몇 십만 원이라도 송금을 부탁하며
두려움 가운데있는 그와 통화한 후여서 그런지 다시 잠을 들지 못하고
머릿속이 점점 맑아져 옴을 느꼈습니다.
늦은 밤이라 엊저녁 송금해 주지 못한 돈을 폰뱅킹으로 송금한 후
다시금 누웠어도 맘속으로부터 주님께서 주시는 것은
“그를 위하여 해 줄 수 있는 것이 송금 밖에는 없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일어나 큐티를 시작했습니다.
곤고한 자, 모든 두려움가운데 있는 자, 부끄러움 가운데 있는 자,
모든 환난속에 있는 자, 모든 것에 부족함을 맛보고 있는 자들이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낱낱이 일러주시는 하나님음성을 듣는듯 하였습니다.
긍휼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하나님의 선포하심이
그를 향한 생각으로 어둠속에 있는 저의 맘속에
천둥과 번개를 동반하여 어둠을 밝히시고
큰소리로 인하여 음습한 생각이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거지셨도다”시편 34편.
보내고 다시금 말씀들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였을 때
나는 항상 곤고함을 느꼈고, 어찌 살아가야 하는 두려움이 있었고,
포장된 외식으로 인하여 속사람은 늘 부끄러움을 가졌고,
속에 근심 밖의 걱정이 늘 환난이었고,
늘 의식주에 관련하여 부족하게 생각하였음으로
안절부절 하였던 나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지금 그 청년은 부모에 대한 신뢰가 없고
더군다나 부모가 그를 진정 사랑하는 모습은 더욱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결혼도 하지 않은 더군다나 이십대 후반의 외동아들이 처한 상황들을
참으로 악한 성인들이나 취할만한 방법들로 대처하고 있으니
안타까움을 넘어 한탄이 나옵니다.
예수 생명이 없는 자로서는 당연한 처사겠지만
일반 윤리까지도 도외시한 그 부모들의 행악을 들으며
이 문제가 그에게 발생됨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되어집니다.
그동안 그래도 자신의 친할아버지께서 교회를 다니셨고
세례 받으신 장로님이었다는 자랑과 함께
자신도 조만간 교회를 나갈 것임을 입술로 고백한 순간들이 많았기에
그 마음의 소원함이 진실하여 주님께서 들으셨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기에 더한 악을 행하기전
그에게 자신과 그의 가정에 대한 죄와 악과 허물의 실상을 드러내 보이심이 아닐까...
그를 대하여 저의 할 바를 짚어봅니다.
그가 수익을 가져올 때만큼이나
나는 그의 영혼이 주님 앞에 설 날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기뻐하였었던가...
그에게 고가의 제품을 주며 판매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만큼
그의 영혼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던가...
그가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 맘속의 낙심했던 것만큼
그가 주일성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하여 그만큼 낙심했던가...
그가 원하는 제품을 알아보는 열심만큼
그의 영혼이 간절히 원하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 들려주기에 얼마나 열심을 내었던가...
한 가지라도 내세울 만한
그에 대한 나의 생명을 살리는 희생과 봉사가 없었음을 후회와 함께 회개합니다.
좀 전에도 돈 좀 부쳐 달라고,
삼십오 만원만 입금하면 다시금 대출금이 나와서 빌려주겠다는 이가 있다면 연락이 왔습니다.
주님, 그에게 당한 상황들은 저는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다만 주님께서 그에게 행하실 일들을 저가 알기 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통하여 하시고자 하는 주님의 역사하심을
제가 잘 깨달아 순종하기 원합니다.
그래서 이전에 못했던 그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지금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성령으로 알게 하시고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감사하오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