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11
누가복음 8:16-25
제목: 이에
요약
등불의 역할은 그 빛을 보고 드러나 알려지고 나타나게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듣고 있는가 삼가라 하시며 있는 자는 받고 없는 자는 빼앗긴다 하신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내 가족임을 말씀하신다. 호수 저편으로 건저가자 예수님이 말씀하셔서 이에 떠나 갈 때, 마침 광풍이 임하여 죽음의 위태함에 예수님을 깨우자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자 잔잔해진다. 제자들조차 두려워하며 이 일을 기이히 여긴다.
연구 묵상
1. 숨은 것, 감추인 복음이 알려지고 나타났는데 나는 그 복음을 어떻게 듣고 있는가? 내 안에 말씀이 있는가? 없으면서도 있는 줄 알고 빼앗기는 인생은 아닌가?
2. 내 안의 악과 어둠, 숨은 것, 감춰진 것이 무엇인가?
3. 예수께 왔지만 무리 때문에 가까이 가지 못하는 가족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인가? 예수께 왔지만 가까이 가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4. 배에 오르사 저편으로 가자 하시는 말씀을 듣고 이에 제자처럼 나는 행하고 있는가? 떠나자 예수님은 말씀 없이 잠을 주무시고 계시는데 예수님께서 잠잠히 계실 때, 나는 어떻게 하는가?
5. 예수님 말씀이 없을 때, 마침 광풍이 내리치는데 가장 위태한 것은 무엇인가? 말씀이 없어서 위태한가? 광풍이 내리쳐서 위태한가?
6. 광풍이 일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깨워 말씀 사정을 여쭙는데 나는 어떻게 하는가?
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잔잔해지는데, 나의 광풍으로 요동함을 향해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신다. 내 믿음은 어디 있는가?
8. 순종함을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기는 제자들, 나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느낌
숨은 것, 감추인 복음을 나는 스스로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며 잘 듣고 있는가 복음인 말씀이 있는 자는 받겠다고 하시며 없는 자는 그 말씀이 없으면서도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하신다. 내 안에 말씀이 있다는 것은 행실로도 드러나 밖에서도 보인다. 내 안에 말씀이 있을 때는 숨길 수가 없다. 빛이 있다는 말은 그 빛을 드러내는 역할까지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 빛이 있으면서도 밖에서 안 보이게 덮어두지는 않고, 그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나를 부르신 건 등불로 부르셨다. 드러내고 알려지고 나타내고, 예수님께 들어가는 자들에게 잘 보이게 하는 게 내 역할이다. 믿지 않는 동료를 만나서 “천국은 반드시 있고 지옥도 반드시 있습니다.”라고만 말했다. 아쉽다. 조심해서 잘 듣고 있다면, 그 복음이 내 안에 있는 것을 드러내고 알려지고 나타내야 한다.
내 안에 숨은 것, 감추인 것이 알려지고 나타난다 하신 말씀에 부끄럽다. 내 악과 어둠... 남들 앞에서는 그럴듯해 보이기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덮어주고 감춰주시기에 얼굴 들고 다니는 나이다. 완벽하게 했다고 더 이상 들여다보지도 않고 넘겼는데 부서에서 확인 후 보내진 걸 보니, 다른 것에는 수정해야 할 딱지가 많이 붙어 있는데 내 것에는 딱 두 개인 것이다. 그걸 보고 흐뭇하고 뿌듯하게 얼른 고쳐서 다시 제출하려고 보니 그 곳에는 체크되어 있지 않았지만 내 눈에 뜨인 오류 내용들이 다시 보이는데 얼굴이 뜨거워졌다. 사람들 앞에 드러나지 않게 하셨을 뿐, 내 안의 결점들이 더 많았음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게 되고 다시 제출하면서 부장님이 “ 역시~!!” 하시는데... 정정해서 말씀드렸다. “사실 지적해주신 것은 두 개 밖에 없었는데 제가 살펴보니 훨씬 더 많았어요.”
이것 뿐이랴. 감춰진 내 속이나 드러나고 고백하는 상대 속이나... 악과 가증은 같다. 처음, 우리들 교회에 왔을 때, 이 사람은 어떤 죄패일까? 화장실에서 만나지는 사람들, 예배당에 따라들어가며 오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 어떤 사건들일까 싶은 궁금함과 함께 뭔가 꺼림찍함도 살짝 들었다. 특히, 내가 약한 부분중 하나가... 바람피우는 것을 굉장히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약점이 있다. 너무나 부정하게 여겨지고 어떻게 결혼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바람을 필 수 있을까? 그건 약속과 신뢰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다시 합칠 수 없는 큰 과오로 평소 생각했고 간혹, 교회 목사님들의 바람 사건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쩌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저럴 수 있어? 더구나 지도자라는 목사라는 사람이?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런데 여기 대부분의 사건은 음란이었다. 이 사람도 음란한 것 같고 저 사람도 음란죄이고... 나의 에너지는 대부분 밖으로 향해 있었다. 그런데 일 년간 매주 예배 전 간증, 주보 간증, 목장 보고서 간증, 주일 예배 말씀, 목자님 말씀, 수요 말씀, 목장 나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네 죄나 내 죄나 악과 음란은 같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그 상황과 그 한계에 놓여지지 않아서라는 차이일 뿐,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음을 몸으로 느끼고 깨닫게 되었다. 머리로는 ‘큰 죄 작은 죄가 어디 있나? 죄의 삯은 다 사망이지.’ 가 정답으로 알고 있었지만, 삶속에서는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말도 안 돼!! 가증스럽고 더러워.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 하고 밀어내고 있었다. 내 안에 감춰지고 숨겨진 나의 ‘악과 가증’ 을 보고 고백하고 회개하며, 내 외부와 내부, 머리와 가슴, 몸과 마음, 말씀과 삶이 일치하고 균형을 찾아가는 몸부림의 시간을 가져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행실로도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게 성장하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예수께 왔지만 가까이 가지 못하는 가족, 무리 때문이라고 한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내 안의 핑계, 크게 드러나는 고난을 찾지 못한 것도 부끄러움이었고 그것이 말씀을 잘 적용 못하는 나의 콤플렉스에 대한 답 같았다. 말씀이 잘 들리지 않았던 건, 질서에 대한 순종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못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찾았었다. 적용을 잘 하지 못하는 건, 말씀을 깊이 꼭꼭 씹어 먹지 않았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고 내가 아닌 목사님과 목자님이 씹어주신 것이라도 들리는 대로 적용해보려고 했다. 여전히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는 내 안의 원수는 있지만, 말씀을 씹으려고 한다. 꼭꼭 씹으려고 한다. 잘 못 씹으면 못 씹는 채로 내가 보이고 들리는 대로.... 혹, 잘 못보고 잘 못 들어 잘 적용하는 게 아닐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잡고 가실 믿음 가지고, 다시 수정해서 지도하시고 알려주시고 인도하실 거니까. 나는 맘껏 말씀 위에서 뛰놀리라. 문자적인 해석과 적용일지라도. 하나님이 또, 내일 또, 내일 말씀해주시고 말씀으로 인도해주실 거니까.
가족이 예수님께 가까이 왔지만, 예수님은 그 소식을 듣고도 그들을 부르시지 않는다. 내 가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고 다시 말씀하신다. 그 말씀에 좀 서운하고 섭섭하기도 하지만, 예수님이 지금 부르시지 않는 건 예수님이 옳으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를 부르시려고 오신 거니까. 그들을 가까이 하고 만나주시려 오신 거니까. 예수님은 예수님 사명대로 가는 게 옳으시다. 그리고 나는 그 말씀, 그 처분에 순종하여 가까이는 가지 못하나 그 밖에 서서라도 들려오는 말씀 듣고 행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 듣고 행하는 자, 곧 예수님의 진정한 가족이 되어 살아갈 수 있는 길이다. 육의 가족이 아니고 영의 가족, 참된 영적 후사가 되는 길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해주셔야지’하는 나의 기대 때문에 서운하고 섭섭한 것이지, 예수님의 행함과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 기울여 듣는다면 모두가 감사다. 모두가 찬양이다. 나는 삼가서 잘 들어야 한다.
예수님이 배에 오르셔서 저쪽으로 가자하시는 말씀에 즉시 제자들은 따른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순종하는 모습이 멋지다. 그럼에도 곧 이어 만난 광풍, 당황스럽다. 순종해서 따르고 있으면 광풍도 피해갈 것 같은데 예수님과 함께하는데도 광풍은 우리 삶에 불고 있다. 그렇지만 함께하시기에 나는 예수님께 아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광풍은 광풍이되 괜찮다. 죽을 것 같은 위태함이고 위협이고 아픔이지만 예수님이 잠잠히 있을 지라도 나는 부르짖을 수 있다. 예수님 말씀과 처방이 들리지 않아서 요동되고 확인하고 싶다면 부르짖으면 된다. 예수님 처방과 말씀이 들리지는 않아도 함께 하심에 대한 확신으로 요동하지 않을 수 있다면 더 큰 믿음이겠지만, 내 수준에서 예수님께 부르짖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게 내 최선이다. 그게 내 믿음이다.
예수님은 내 믿음 없음을 수준 낮음을 먼저 꾸짖지 않으신다. 나의 한계에 요동하는 나의 근원을 제공한 광풍, 그를 향해 꾸짖으신다. 그 꾸짖음에 잔잔해진 바람과 물결, 얼마나 아름다운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건 피조물인 우리의 본분이다. 그 본질에 맞게 듣고 행하는 광풍! 그리고 난 후 제자들에게 이르신다. 믿음이 어디 있는지 물으신다. 그 말씀에 무릎 꿇지 못하고 기이히 여긴다. 아직도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독생자이심을 모른다. 그러나 삼가서 듣고 있다보니 복음의 감추인 비밀을 알고 복음을 뜨겁게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된다.
가자 하실 때, 따랐다. 하나님이 가자 하셨기 때문에 내 앞에 광풍은 생각하지 못했다. 광풍이 있겠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실 줄 알았다. 그 환경과 사건을 처음부터 풀어주시며 인도하실 줄 알았지 잠잠히 주무실 줄은 몰랐다. 게다가 내게 주신 말씀은 승리의 말씀이었다. 나는 승리가 고난 없는 형통, 눈에 보이는 열매로 해석하고 적용했고 가을로 알았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기준은 내 인생의 겨울로 지내기를 원하셨고 고통과 아픔 겪고 부르짖을 수 있는 환경이 승리고 형통이었다. 하나님이 들려주신 말씀과 나의 해석과 적용은 비록, 달랐지만 그러나 예수님의 동행을 맛봤고 잠잠히 계시는 예수님이 계셔서 위로가 되었다. 나는 비록 요동되어 부르짖었지만, 내 믿음의 수준대로 예수님은 나를 인도하셨고 여기까지 인도하고 계시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되 ‘이에’ 반응하는 제자와 광풍, 또 다시 나는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이에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곧 이어 나를 휘젓는 광풍 앞에 요동하며 부르짖을 것이다. 그렇지만 괜찮다. 예수님이 함께하시기에 괜찮다. 가자 말씀하시는 것도 예수님이시고 광풍을 허락하시고 계획하시는 것도 예수님이시니까. 난 괜찮다. 비록, 죽겠나이다 부르짖을 믿음의 수준이지만... 그래도 괜찮다.
예수님의 말씀하심에 ‘이에’ 순종하는 제자, 그리고 광풍! 듣고 행하는 자들이다. 내 수준, 그대로 내 믿음 그대로, 있는 이 곳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삼가 조심하여 듣고 행하면 된다. 그렇게 인도하심대로 따르면 된다. 그 말씀이 위로다. 세밀한 음성으로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 여전한 모습으로 나에게 알아듣기 쉽게 가르치시고 함께하실 주님! 사랑하고 사랑하고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적용
1. 등불로 부르셨으니 빛으로 살겠습니다. 감추인 것을 드러내며 나타내며 복음의 비밀을 알리며 살겠습니다.
2. 내 안에 숨은 것, 감추인 것, 나의 악과 가증, 음란을 인정하며 듣고 행하는 고백과 회개로 말씀과 삶을 일치하며 치우치지 않고 균형있게 성장하겠습니다.
3. 삼가서 잘 듣고 행하는 믿음의 영적 후사로 살기를 간구합니다.
4. 예수님 말씀하시면 이에 듣고 행하며 지금, 있는 모습 이대로 요동되면 부르짖으며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겠습니다.
5. 오늘 주신 말씀을 좇아 내 생을 돌아보게 하시고 말씀으로 해석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6. 나를 여기까지 인도하신 주님의 인도하심, 사랑하고 감사하며 앞으로도 가르치심대로 순종하며 영광 돌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