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 집사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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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2.29
시편33편13절-22절 [집사님! 집사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2006/12/29
이것저것 장사하여 벌어들인 돈으로
동생의 사업에 빌붙어 한 부분을 맡아 할 욕심으로 시작한 사업이
일 년 정도 만에 투자한 자본을 다 잃고
아내는 식당 보조로 자신은 암웨이에 뛰어들어
사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신 분이 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집사님의 형편은 어려워져 갔고
점차 교회에서 얼굴 보기가 힘들게 되었고
급기야는 주일 낯 예배만 드리고는
식사 후 곧 미팅을 위하여 일찍 가는 행보를 하였습니다.
집사님은 시간이 날때면 항상 저의 사업장에 들러 암웨이 설명회를 갖습니다.
어제도 찾아와 목요일 밤 미팅에 함께 가자며
이 어려운 때에 돈 벌 방법은 이것 뿐이라며
세상 돌아가는 것도 배우고 정보도 얻자며 찾아 왔습니다.
이렇게 집사님이 거의 이 년에 걸쳐 저를 찾아와서는
암웨이 모임에 함께 가자고, 무자본으로 큰돈을 벌어 잘사는 길은
이것 밖에는 없다며,
또한 이것은 자식에게 법적으로 상속이 되기에
후손들도 힘들지 않게 살 수 있다며
아비가 되어서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고
자기들 하고 싶은 것 다할 수 있도록 함께 암웨이 사업을 하자며
권고하기를 오래도록 하였습니다.
듣자하니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며,
지혜 있다하는 자, 배경이 뒷받침 되는 자, 자본이 없는 자,
큰돈에 욕심이 있는 자,
돈에 한이 맺힌 자 등등
이러한 분들이 사업 설명회를 듣게 되면
뛰어 들만도 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세상 법에 저촉되는 일도 없고, 기존의 피라미드와는 조금 다르다 하고,
제품 또한 기능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우수하다고 하니
딱히 거절할 이유가 없겠다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한 가지,
암웨이가 하나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암웨이를 통하여 만나는 사람들이
친 혈육 보다 더 친밀한 교제를 갖게 되고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도 암웨이를 통하여 구축한 인맥이나 수익의 보장이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분들도 하나님과 사업은 별개라고 하며
그 중 목사님들은 암웨이 사업을 통하여
안정된 수익을 보장 받음으로 더욱 목회에 전념할 수 있는 잇 점이 있다고 합니다.
집사님은 절대로 자식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두 달 전 입대하는 큰 아들과 약속하기를
제대 후에는 절대로 금전적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다 합니다.
집사님이 처음 교회에 왔을 때를 기억합니다.
단순 우직하여 신앙하는 모습이 믿음직하게 보였는데
지금은 그 단순 우직함이 황소고집으로
의사가 불통되는 쪽으로 쓰임 받고 있음을 봅니다.
많은 집사님들이 권면하고
심지어 오랜 친구 분인 집사님이 여러 방도로
살림에 대한 걱정은 없게끔 일자리를 주었지만
끝내 암웨이 만을 주창하고 있으니 이런 벽창호가 없다 싶습니다.
몇 년의 어려운 살이를 통하여 고생한다 싶어
이모저모 권고도 하고
오실 때마다 따듯하게 대하였는데
말씀으로 권면하는 이야기를 어느 순간부터인가 강퍅하게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도 함께 기도하고 가슴과 가슴을 맞대며 인사도 하고 하였는데
한 날은 “나도 남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고향에 선산을 팔면 이렇게 고생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암웨이가 좋은 사업이라 함께 하자는 것인데
뭘 하나님이 어떻고 신앙이 어떻고 하느냐”고 버럭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드니
가버리는 사건이 발생 하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집사님에 대한 커다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나 보다 형편이 좋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권면의 말도 중보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집사님은 본격적으로
교회 다니는 암웨이 사람들을 데리고 오며
암웨이 종사자중 목사님들의 간증 테이프를 전해주며 들어 보라며 권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간증 테이프는
“절대로 나는 암웨이를 가면 안 되겠다”는 확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들어보니 암웨이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하실일들을
암웨이가 모두 대신 할수 있다고 하는 결론으로 세뇌당할 공산이 백프로 임을 알았습니다.
어제는 집사님께 물었습니다.
“집사님! 집사님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집사님이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는 도대체 누구십니까?”
또 한 차례의 냉기를 품고 돌아가는 집사님을
도저히 인사조차 할 맘이 없어 그냥 보냈습니다.
그리곤 생각에 빠졌습니다.
도대체 교회에서 뭘 하고 있나...
양육을 위한 가르침도 없이... .
저 집사님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바른 복음을 통한 하나님을 아는 것이요 제대로 만나는 것인데...
하며 교회에 원망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곧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그 사랑의 하나님을 전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집사님의 영혼을 위하여 눈물로 하나님께 대신 회개할 사랑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나는 왜 이리도 눈물을 흘리며 회개할 능력이 없을까...
영혼을 위하여 가슴 절절히 기도할 사랑의 능력이 없을까...
하지만 주님께서 저에게
“이미 주었다”라는 메시지를 주십니다.
성령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을 생명을 이미 주었음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다만 내가 그 영혼에 대하여 강퍅한 맘이 있음으로
생명 살리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임을 알게 하십니다.
말씀으로 권고할 지라도 권세가 없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너의 삶을 통하여 바른 복음을 실천으로 보여 주지 않았음을 깨닫게 하십니다.
지금은 저가 변화받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 영혼을 살릴 만큼의 내공이 쌓여 있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많은 집사님들이 박 집사가 많이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타산에 빠른 저를 봅니다.
조금 부어주신 물질을 부둥켜 안고 내놓기를 싫어 하는 저를 봅니다.
교회 송년행사에 맡은 부분에서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하여 비용이 배가 된 것에 대하여
혼쾌히 수락하는 아내에 비하면
억지 까지는 아닐지라도 인색함이 넘쳐흐르는 저를 봅니다.
연약하다 하는 지체에 대하여는 후하지만
믿음이 있다, 능이 있다 하는 지체들에 대하여는
그들의 실수나 잘못에 대하여 여전히 분을 내는 저의 모습을 보며
“너가 하나님 해라”는 책망을 스스로 할 때가 여전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도움과 방패’이심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전하고 증거 해야겠습니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나와 나의 가정과 후손들과 믿음의 지체들과
사망의 그늘에서 울고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주님,
집사님의 영혼을 더 사랑하겠으니
저의 강퍅한 심령을 용서하옵소서.
오늘 송년의 밤을 통하여
그에게 더욱 다가가는 저의 심령 되기를 기대합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능력을 더욱 발휘 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예수 이름을 의지하고 찬양하며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