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죄인’이란 말에 가슴이 턱 막히듯 먹먹합니다. 그녀의 살아온 삶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지 헤아려 봅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손가락질하고 온갖 수치와 비난과 조롱과 비웃음을 받으며 살아왔던 그 동네의 죄인인 한 여자라고 합니다. 주님은 누가 50죄인이고 누가 500죄인인줄 다 아시는데, 인간들의 눈으로는 그 여자만 죄인으로 보였나 봅니다. 자기 죄를 인정한 그 동네의 죄인은 예수님 앞에도 감히 서지 못하고 뒤에서 발곁에 서서 그냥 울고만 있었습니다. 할 말없는 인생입니다. 주님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그 눈물이 모든 것을 다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 이제야 죄인이 왔습니다...’ 나의 죄가 나를 아프게 하고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시고 치유하신다는 사랑에 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눈물로 발을 적시고 머리털로 씻고 입맞추고 나의 가장 귀한 향유담은 옥합을 주님의 발에 붓습니다.
이여인, 동네의 죄인이 할수있는 최상의 최선을 다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죄사함이 많은 자는 사랑함이 많고 죄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한다고. 이여인의 예수사랑은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최선 최고의 행동으로 주님을 위하였습니다. 그사랑이 죄사함을 얻고 구원 받고 평안히 갈 수있는 것이고 여인은 더욱 낮아지고 겸손하였을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여인의 마음이면 좋겠는데 나는 바리새인 시몬같습니다.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생각하는 시몬처럼 예수님께 100%확신이 없이 작은 사건이 와도 의심하고 구원보다는 현실의 문제가 커 보이고, 일단 나의 생각과 방법대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고도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섬김이 아니라 나의 시간과 재물에 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적당히 하였고 타협하였습니다. 생각속에서 잔머리를 굴리며 계산하며 내가 받은 만큼만 해주고 욕먹지 않을 정도만 하자는 식이었습니다. 최소한으로 하면 하고도 욕먹을 것같고 많이 하면 받은 것에 비해 손해라는 체면과 경제논리에서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발씻을 물도 주지 않았고 입 맞추지도 않았으며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정도의 믿음밖에 안되었습니다. 외면하지 않고 #51922;아내지 않는 50의 믿음입니다. 그냥 교회다니며 예배에 앉아있고 적당히 헌금하는 정도였습니다. 50의 죄만 사함받고 50만큼만 사랑하는 욕심많고 죄많은 바리새인이었던 것입니다.
나는 어찌하면 그냥 동네의 대표죄인임을 인정하고 500만큼 주님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나는 어찌해야 500의 믿음으로 주님의 구원과 평안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
아무리 변명할 궁리를 찾아봐도 꼼짝없이 바리새인 시몬이 바로 ‘나’임을 알았습니다.
동네의 죄인이라 불리는 여인을 묵상하며 감동받고 눈물 짓지만 돌아서면 시몬이 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도 500의 사랑을 주님께 드릴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 또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오래 참으심과 이끄심을 찬양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