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1-11
요약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 이삭을 비벼먹자,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고 트집한다. 예수님은 다윗이 시장할 때 진설병을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 주었던 사건으로 대답하신다. 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다. 서기관, 바리새인은 예수를 송사할 증거를 찾으러 병고치시는 것을 엿보니, 예수님이 이를 아시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 그것이 옳다시며 손 마른 자의 손을 회복시킨다.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처치할 방법을 의논한다.
연구 묵상
1.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트집하는 바리새인들의 공격,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바리새인들의 비방에 나는 어떻게 응대하고 있는가?
2.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는 가르치시고 고치시는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시는데 나는 가르치고 고치고 있는가?
3. 내게 안식일은 무엇인가? 안식일의 주인이심을 가르치심에도 왜 배우지 못하고 있는가?
4. 예수님은 엿보는 것과 저희들의 중심 생각을 아시고 무리에게 가르침의 기회를 삼는다. 나는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있는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배우지 못하는데, 나는 배움의 기회를 찾고 있는가?
5. 오그라든 손을 내밀어 회복되었지만, 꼬인 마음을 내놓지 않아 분기가 가득한데 나는 손내미는 자인가? 분기가 가득한 자인가?
느낌
내 고정관념과 율법에 매여 ‘하지 못할 일’이라는 트집을 잡는, 마음과 생각의 꼬임이 있기에 공격을 하고 있다. ‘~해야만 해’라는 내 편협,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관계이고 사랑이다라는 내 또 하나의 편협은 상대의 옳고 그름의 문제에 발끈하고 트집을 잡는다. 내 의도와 중심을 못 헤아려준다는 상대의 편협함에 불편해지면서 나 역시, 상대의 의도와 중심을 헤아려주려는 마음의 여유는 없다. ‘어찌하여’ 는 상대도 나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주일 새벽 예배가 주보에는 나와 있는데 어찌하여 문이 닫혀 있는지, 여건이 그럴지라도 비록 한 성도일망정 간절한 바람이 있다면 교회를 개방하겠다는 열린 마음, 배려함을 베풀 수는 없는지에 대한 작은 아쉬움은 교회를 훼파한다는 억지스러운 모함같은 말에 억울함과 분이 올라왔다. 시작은 분명, 작은 바람이었지만 공격같이 상대는 받아들였고 내게 역시 그건 공격같이 들렸다. 나는 교회의 본질을 외치고 있었지만, 본질을 회복하고자 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본질을 벗어난 행동을 했고 상대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고 있었지만, 생명을 구하는 일을 우선하는 예수님의 성품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런 부딪힘, 상처였지만 그 경험은 나를 성장시켰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경계가 넓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비방에 다윗의 예로 말씀하고 있다. 잘못된 해석과 벗어난 오류를 수정해주고 계시다. 예수님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들었던 바라새인은 여전히 달라진 것 같지 않지만, 오늘 그 말씀 앞에 서있는 바리새인인 나를 그 말씀이 붙잡고 머무르게 한다. ‘하지 못할 일’이 무엇이며 ‘어찌하여’란 트집이 웬 말인가?
안식일에 주인되신 예수님은 주인답게 선을 행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 그 일을 담당하고 계신다. 가르쳐도 듣지 않고 모름에도 끊임없이 가르치고 고치시는 일을 행하고 계시는데, 아들들에게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다고 말을 닫고 있었다. 안식일의 주인 되신 예수님이 응당 고치실 것을 예측하면서도 복음은 놓치고 송사할 일로 트집 잡고자 기회를 엿보는 그들마저도 바라보시고 가르칠 기회,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알려주시는 예수님, 나는 아들들에게 가르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내가 배울 기회를 찾고 있는지 살펴보게 한다. 예수님의 꿈과 비전을 갖고 뜻을 세워 준비하는 아름다운 10대를 아들에게 꿈꾸지만 전혀 움직임이 없다. 남편은 여전히 지속적인 잔소리로 가르치고 있지만, 아들들의 움직임에는 변화가 없고 나는 입을 닫고 말았다. 예수님 사역 동안 주목하고 행했던 것은 사람이었고 가르치고 병고치고 사람을 세우는 일에 집중하셨는데, 나의 가정 사역에도 아들이 최우선이었음에도 생활 질서조차 자리잡고 있지 못하고 큐티 역시 진보가 없다. 가장 중요시했던 부분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내 삶의 결론임을 인정하고 나니 무기력해지고 힘이 빠졌다. 그럼에도 오늘 예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가르치고 일하신다. 끝까지 일하신다.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 예수님이 희망임을 바라보며 우리 가정의 희망인 아들들을 놓지 않고 말씀과 기도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그게 내 삶의 결론에 대한 해답이다. 내가 한다고 했지만, 구멍이 많고 여기저기 허물어지고 기울어지고 치우쳐져 있는 그걸 보수하고 고치시고 가르치실 주님을 바라보는 것, 그게 희망이다.
7일 모두 주님의 날이고 주님이 주인이심을 알기에 예수님이 주인다운 치리가 내 생활에 다스려지시기를, 나를 가르치고 고치셔서 선한 일, 생명 구하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 날들 되기를 기도한다. 먼저, 나를 가르치고 고치는 일에 힘쓰겠다. 나의 고정관념, 나의 악, 나의 고집과 편협, 트집과 공격, 무절제함, 게으름.... 말씀과 기도 가운데 가르쳐주시는 성령 하나님께 의지하여 깨닫게 하시는대로 알려주시는대로 그 만큼씩 성장하며 배우겠다. 우리 가정이 그렇게 고침 받고 가르침 받아 아름답게 사용되는 일에 쓰일 수 있도록, 내 일터로 확장되도록 기도한다.
손 마른 자는 오그라든 손을 내밀어 회복 받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오그라진 마음을 내놓지 못하고 분기가 가득하며 일을 더 도모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순종했다면 손을 내밀 듯 마음을 내놨을 것인데... 정말 안타깝다. 그러나, 내 마음의 분기, 가득한 분기는 어떠한가? 어제 산책길에 ‘ 앞으로 절대 메일로 편지 드리지는 않을 거야.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남편 앞에 토로했던 일이 생각난다. 아~ 지금, 잠잠하다고 내 마음의 분기가 회복된 건 아니다. 어떤 사건이든 걸리기만 해 봐라. 또 분기가 올라오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게 내 악의 밑바닥이고 현재 주소이다. 안타깝게 성경속의 바라새인들을 바라봐야 할 일이 아니고 나를 먼저 불쌍히 여기며 돌봐야 한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 그 당시 살았다면 참 좋았겠다 싶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임을 알겠다. 말씀으로 잘 기록되어 있어 그 당시 살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그 예수님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성령 하나님이 깨닫도록 조명해주고 계시다. 수 천 년 동안 신앙의 선배들이 갔던 발자취를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내 눈 앞의 증거들이 수두룩하다. 지금이 믿음의 때요 가장 좋을 때임을 알기에 감사하다. 게다가 지금, 나는 가장 건강한 공동체에 속해 말씀으로 매주일 인도함을 받고 있으니, 더 없이 최고의 인생을 살고 있다. 이 보다 좋았을 때가 있었으랴. 내 인생의 최고 전성기이다.
적용
1. 상대를 사랑으로 수용하며 ‘하지 못할 일’ ‘어찌하여’란 트집을 버리고 이 말씀에 더 머무르며 붙잡고 묵상하겠습니다.
2. 아들들을 바라볼 때, 가르침과 배움의 기회를 찾게 하며, 변하지 않는 바리새인을 보고도흔들리지 않고 일하시는 예수님을 좇아 예수님이 희망임을 놓지 않고 희망을 품고 살겠습니다.
3. 모든 날들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인정하며 주인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먼저 나부터 가르치고 고침 받으며 우리 가정과 내 일터로 확장되기를 기도합니다.
4. 내 마음의 분기를 내놓지 못함, 내 악과 밑바닥을 인정하며 사건들에서 보여지는 내 주소를 직시하며 불쌍히 여김 받기를 간구하며 고침받겠습니다.
5. 내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과 기도에 깨어있고 건강한 공동체가 부흥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