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27-39
요약
레위를 보시고 좇으라 하시니 레위가 모든 것을 버리고 좇으며 예수를 위해 잔치하니 다른 사람이 많이 예수님과 함께 앉는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비방하는데 예수님은 병든 자에게 의원이 쓸데 있음을 말씀하시며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 왔노라 하신다. 금식은 신랑을 빼앗겼을 그 날에 하는 것이라 하시며 새 옷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지 않듯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고 비유로 말씀하신다.
연구 묵상
1. 나를 보시고 좇으라 하실 때, 나는 레위처럼 버리고 좇으며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하며 사람들을 부르는가?
2. 바리새인처럼 나의 의로 상대를 정죄하고 비방하지 않는가?
3. 병든 자인 나를 보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고자 오신 의원 예수, 나는 모시고 고침받으며 회개하고 있는가?
4. 내가 무엇을 하든 나의 행위는 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가?
5. 낡은 것을 덧대고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새 옷, 새 부대, 새로운 삶의 방식 새 포도주 되신 예수님, 나는 새 부대인가?
느낌
레위, 죄인을 보시고 부르신 예수님, 나의 죄를 보고 나를 불러주셨다. 내가 예수님께 부름 받은 단 하나의 조건은 죄인이었기 때문이고 병든 자였기 때문이다. 나를 불러 회개시키려고 부르셨다. 나는 예수님의 부름에 버리고 좇는다고 앉아 있지만, 모든 것을 버렸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죄인임을 말씀의 기준이신 예수님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끊어지지 않는 악, 예수님만이 해결책이기에 예수님이 대신 죄값을 담당하시지 않았는가? 그 예수님을 위하여 나는 잔치하며 사람들을 불러야 하는데,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 집에서 잔치한 기억이 안 난다.
바리새인처럼 나는 나의 의로 정죄하고 비방했다. 껍질에 가려 본질을 보지 못했다. 예수 그리스도 참 복음,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구별하지 못했다. 2007년도는 부흥 원년으로 내게 기념되는 해이다. 모든 상황과 관계가 가장 밑으로 내려갔던 시절, 내 안과 밖, 교회 안과 밖, 한꺼번에 밀어닥친 큰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고 이슈화 되었던 그 사건, 교회에 대한 공격은 나를 향한 공격같이 느껴졌고 절망감과 비통함에 울었던 내게 그 시절은, 고된 시련과 아픔이 있었던 만큼 나를 성장하고 부흥하게 하는 원년이 되었다. 아프간에서 돌아가신 배형규 목사님은 혼자만의 순교가 아니었고 나의 죽음과도 함께였다. 내가 죽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목사님이 대신 돌아가셨다. 그랬기에 배목사님의 순교 소식은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들의 비방과 정죄, 그 때에는 어떻게 그럴 수가~ 였지만, 그들의 입장이었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다란 생각이 든다. 거기서 배운... 공격과 대립, 나는 피하고 싶고 가능하면 좀 멀어도 돌아가고 싶다. 예수 믿는 역사 이래, 순교는 계속 되고 있었지만, 내 옆에서 직접 들린 순교의 소식은 패닉 상태로 나를 몰았다. 순교의 소식만으로도 충격인데 여기저기의 공의로 결국 두 번 세 번 죽게 하는 잔인함, 만행, 폭력에 멍해졌다. 그런데 그렇게 휘두르는 ‘의’ 그 ‘의’ 역시 내가 휘둘렀던 폭력의 하나일 뿐이었다. 껍데기에 그쳐 본질을 보지 못하는 게 악이고 폭력이고 왜곡이다. 나의 악과 폭력, 왜곡하는 죄, 본질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는 볼 수 없음을 이제는 알겠다.
아들들에게 있어서도 나의 의는 발동된다. 큐티를 요점정리하고 하나님 어떤 분이신지 찾고 교훈을 찾고 적용점을 찾아야지, 왜 졸고 있는지, 왜 큰 소리로 또박또박 읽지 않는지.... 결국, 말씀의 본질이 되신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최대한 방해하는 우를 나는 범하고 있다. 그 아이 수준에서 그 아이 입장에서 하고 있는 것을 용납하고 인정하고 수용하고 격려하면 될 것을.... 끊임 없는 부모의 잔소리로 오늘, 큐티 나눔은 마무리 됐다. 이 아이에게 장차 될 일, 예수님이 오심으로 장차 이루실 그 일, 예수님만이 희망임을 오늘도 보고 내려놓는다.
나는 병든 자이고 나는 죄인임에도 예수님께는 우리 아들만 소개하고 있다. 내가 먼저 치료받아야 하고 내가 먼저 돌이켜야 함에도 나보다 우리 아들 등을 더 떠밀고 있다. 예수님을 모신 이유가 아들에게 소개하기 위함인 줄로만 착각하고 있다. 빨리 아들이 알기만을 바라고 내가 먼저 고침 받고자 내놓지를 못하고 있으니.... 주님, 나를 먼저 고치시고 나로 돌이키게 하소서
내가 무엇을 하든 그 행위는 구원을 목적으로 하기만을 바란다. 먹고 마시든, 기도하며 금식하든... 나는 구원을 위해 살고 있는가?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든 구원을 위한 약재료로 사용되기를 간구한다.
새 포도주이신 예수님을 담기 위해서는 새 부대가 필요하다. 내게 익숙해진 게 좋고 묵은 게 편하고... 새로운 변화, 결단, 시작, 혁신은 낯설고 어렵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새롭게 변화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내 안에 이미 새 포도주인신 예수님이 들어와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바라봤던 그 시각, 외모와 행위를 보지 않고 본질을 주목하고 내면을 보셨던 예수님,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 말씀을 날마다 주목하고 품고 묵상함으로 내가 본질을 놓치지 않도록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연마해야 한다. 말씀으로 연마해야 한다.
적용
1.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 집이 날마다 잔치하는 곳, 사람들이 예수님과 나누는 곳이 되게 하소서. 말씀으로 아들들과 말씀 잔치, 예수님 잔치를 열며, 초대해야 할 이웃이 어디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나의 악, 폭력, 왜곡을 고침받고 본질이신 예수님을 바라보기 위해 말씀으로 연마하며 날마다 품고 묵상하여 구원을 위한 사명, 나의 본질을 잊지 않고 내 주변 아들, 남편, 이웃의 본질을 주목하겠습니다.
3. 아들들에게 장차 될 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될 일을 기대하며 희망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요동하지 않고 잠잠하겠습니다.
4, 상대를 먼저 보지 않고 나의 병듦, 나의 죄를 먼저 보고 치료받기 위해, 회개하기 위해 내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