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복음을 전하면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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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2.21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영광이 저에게 세세토록 있을찌어다 아멘>(갈라디아서1:4~5)
세상은 바울당시나 지금이나 언제나 악하였음을 본문 말씀을 통하여 볼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이후 사람들의 본성에는 하나님을 거스리는 불순종의 성품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들을 건지시려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어 그 죄의 대가를 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사람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크리스마스 절기를 맞이하여 아기 예수님 대신에 산타할아버지와 온갖 상술들이 판을 치며 거리는 흥청망청하는 분위기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그 예수님은 낮고 천한 마구간에 탄생하셨고 병든 자, 갇힌 자, 눌린 자들에게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의 몸마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들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증하여 보여주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 모두를 감싸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크리스마스절기에 나도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고자 합니다.
삶의 모든 기준은 주님의 영광을 위한 행동을 내가 하고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8~10)
사실 나는 너무나 값싼 구원의 은혜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성경말씀을 깊이 묵상하다보면 그 말씀대로 고백하여 구원을 받지만 생활에서 나타나야 됨을 곳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할 때 더러는 십자가상위의 강도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하지만 그는 분명하게 하나님을 고백하였지만 그가 처한 상항이 생활로 나타나기까지의 시간이 없었음을 봅니다.
물론 믿으면 구원을 얻지만 그 믿음자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시대에 로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황제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황제의 자리에 모신다는 이야기이고 어/저면 목숨이 달아날 상황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복음이 선명하지 않기 때문에 일제시대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신사참배에 적극적으로 가담을 하는 모순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 자신도 신사참배를 하던 당시에 살았다면 지금의 신앙으로는 부인하기 어렵지만 그러한 사람이 되도록 앞으로의 행동이 믿음에 의한 행동들을 하고자 합니다.
나는 과거에 은혜의 복음에 머물렀지만 앞으로는 그 고백에 걸맞은 행위로 나아가r자 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개인구원에 치우치다보면 공동체의 모습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반쪽신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고 그 속에서 문장 하나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단과 별로 다르지 않는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신앙을 갖게 됩니다.
여기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의 삶속에서 찾아보며 과연 나 자신이 먼저 복음에 바로 서 있는지를 날마다 점검하렵니다.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다보면 이는 내가 칭찬을 받았으므로 주님으로부터는 칭찬을 받을게 없습니다.
내가 주님을 따르는 종이므로 내 삶의 주인이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13~17)
바울의 과거의 삶은 하나님을 핍박하는 사람이었으며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고 과거의 전통에 열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삶의 자세에 있었다고 봅니다.
인생이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대충대충 사는 사람은 주님도 그를 그럭저럭 대접할 것입니다.
삶에서 맡은 분야에 최선을 다하다보면 주님의 때에 주님이 사용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반대방향으로 치닫고 있는 그를 예수님이 방향을 바르게 가르쳐주자 그는 목숨을 버리기까지 충성을 다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전적으로 그를 불러 주님의 사도로 사용을 하신 것입니다.
그는 아라비아 광야에서 주님으로부터 직접배울 수 있었습니다.
나 같은 자는 교회와 믿음의 사람들을 통하여 복음을 듣게 되었고 제자가 무엇이며 그 길을 어떻게 가야하는지를 배우고 있습니다.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수많은 것들을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들을 통하여 좋은 그릇을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나의 모든 인생의 여정 중에 그래도 주님이 선한 목자가 되어 주셔서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