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 1:1-25
제사장 사가랴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주의 깊게 들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큰 사명을 가진 요한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러나 정작 간구는 하면서 응답을 기대하지 않는 그의 적은 믿음에
천사 가브리엘은 아기가 태어날때까지 벙어리가 되리라는 선한 징계를 하였다.
이후에 엘리사벳은 임신하였으므로
그날 부터 이후 어느날 까지 + 만 9개월 = 최소 9개월 며칠, 최대 몇년을
사가랴는 벙어리로 지내야 했다.
말을 그냥 안하는 것과 하려고해도 말을 못하는 것은 너무 다르다.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 벙어리 기간동안 그는 무슨 생각을 주로 하였을까.
그런 우여 곡절 끝에 노년에 얻은 귀한 아들 요한이 30년 남짓 살고 순교한다.
그때도 사가랴는 살아 있었을까?
만일 살아 있었다면 제 아무리 거룩한 사명을 갖고 태어난 아들이라도
끔찍한 죽음을 당한 것에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 당사자가 나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눈곳간과 우박창고를 본적이 없는 나는 하나님을 크신 뜻을 다 이해할 수가 없다.
복중에 짓기전에 이미 나를 아신 하나님이 정하신 목적에 따라 이땅에 태어났다는 것외에는…
머리로 이해 안되는 상황이 내앞에서 전개 될지라도 불평하지 않고
모든일의 되어 지는 형편대로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살아갈 때
참 평안을 누릴수가 있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 뿐이다.
내 머리로는 아무리 성경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는다 해도
사가랴의 인생을 부러워 하기 어렵지만....
혹시 하나님이 나를 사가랴로 택하신거라면, 혹시 요한으로 택하신거라면
너무 좋아서 날 뛸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나님의 알 수 없으신 뜻에 묵묵히 순종할 수는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제는….
어제 부가세 신고자료를 세무사에 보내면서 작년에 십일조 얼마나했나 살펴보았다.
혹시 하나님의 돈 떼어먹었을까봐.
돈이 없어서 늘 찔찔매었었는데 재작년보다 적지 않다.
그러고 보니 여전히 아이 유학 비용 감당했고 직원 월급주었고
먹고 싶은거 돈없어 안먹지 않고 잘~ 살았다.
다만 예전보다 먹고 싶은것, 갖고 싶은것, 하고 싶은것이 줄었을 뿐.
광야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내 의복은 해어지지 않았고 내 발이 부릍지 않았다.
여러 어려움이 내앞에 있었지만 진실로, 진실로, 고난이 내게 유익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여전히, 좀더 편한 믿음의 길을 가면 좋겠다고 기도한다.
재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큰 손이 되고, 아들이 명문대에 턱하니 붙어서
"저 사람 아침 저녁으로 교회 들락거리더니 하나님이 기도들어주셨네. 나도 기도해야겠어..."
라는 기도의 동기부여를 주고 싶고
나의 외로움을 아시는 주께서 내게 하나님을 함께 잘 섬길 동반자를 보내주셔서
과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본을 보여 주고 싶지만…
그리하지 않으실 지라도, 나는 주님께 늘 감사하기로 선택한다.
에벤에셀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