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을 보니 내가 예수씨를 수태하게 된 사건을 무서워하고 부끄러워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멋진 동네에서 상류층처럼 잘살고 싶어했던 나에게 예수씨를 품게된 이혼사건은 놀랍고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 수치와 조롱과 비난의 사건이었습니다.
미리 예고하셨고 알려주셨지만 말씀이 없었고 기도하지 않았던 내가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나는 예수씨를 품고만 있었습니다.
더큰 수치와 조롱이 두렵고 감당하기 싫어서 그냥 품고만 있었습니다.
배가 불러 드러나는 것이 싫어서 조이고 숨기고 있었습니다.
어느 선배가 소문을 듣고 전화로 별일 없느냐고 물을때 수치스럽고 설명하기가 싫어서, 또 더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별일없다고만 하였습니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텐데도 내안에 남아있는 알량한 자존심이 막아서는 것같았습니다.
또 가족모임에 잘 참석하지 않는 형님 한분이 어느날 나에게 물었을 때도 말하기 싫은 투로 대답하였습니다.
내안에 참 자유함이 없습니다.
이사건이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건이었고 예수씨를 수태하는 사건이었는데도 앞으로 더 당할 수치와 조롱 때문에 세상에 밝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모임에 안나가는 이유가 세상놀이를 끊은 이유도 있지만 나의 수치가 화제의 중심이 되는 것이 싫었고 그들과의 대화에서 자유하지 못한 것도 이유가 됩니다.
드러내야할 것을 감추고 감추어야 할 것을 드러내려하는 아랫 생각이 나에게 있습니다.
내가 미리 말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다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닌 척하는 또 다른 수치를 내가 만들고 있었습니다.
3년이나 되었는데도 지경도 안넓어지고 머리로만 생각하며 제자리만 뛰고 있었습니다.
이사건을 통해서 내가 예수를 제대로 알게 되었고 믿게 되었다고,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고 주일에 골프도 안치고 교회가고 수요예배 뿐아니라 목장예배도 간다고 얘기를 못했습니다.
저들은 이해 못할 것이라는 나의 속된 생각과 내가 더욱 작아질 것이 두렵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받은 충격이 커서 세상을 피하려는 나약한 자로 보여지는 것이 싫었고 저들의 값싼 위로가 싫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부끄러운 것은 세상의 수치와 조롱의 무서움이 내안에 예수씨를 수태한 기쁨보다 크다는 것입니다. 그예수가 세상의 가장 큰자이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시고 다윗의 위를 받으신 분인데, 나는 세상에 그 무슨 미련과 영광이 남아있는지 예수씨를 잉태한 것을 세상에 밝히 드러내지 않고 있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혼자만 기뻐하고 우리끼리만 좋아했습니다.
이혼을 통해서 내가 예수씨를 수태한 것은 성령이 나에게 임하시게 된 사건이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버리지 않으시고 은혜로 덮어주시려는 사건입니다.
그런데도 내속에 아직도 내가 남아서 주님 앞에서 주의 종이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가 안되고 있습니다. 정말 질기고도 질긴 나의 자아입니다.
이제 더 이상 수치와 조롱을 무서워말고 예수씨를 수태한 것을 기뻐하여 세상에 드러낼 수있기를 바랍니다. 예수씨를 품은자의 평강과 형통을 보이며 말씀으로 증거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에게 찾아온 사건을 무서워 하였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한 수치와 조롱과 비난이 무섭고 감당하기 싫어서 말씀까지 감추는 자가 되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내가 예수씨를 수태하게 되었다는 것을 충분히 기뻐하며 나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잘 감당하여 열매 맺는 인생 삼아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