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누가복음 1장1절 중의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피던 나'
가 그 결과로서 발견한 내 마음의 저 밑 깊은 구렁 속에 잘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던
세상 가치관 중의 하나를 발견하게 된 짧은 3일간의 큐티 행로를 차례대로 써 봄으로써
훗날의 증거가 되고 새로운 전환점으로 삼고자 합니다.
(1) 16일 저녁에 중국의 차기 최고 지도자인 시진핑(습근평)에 대한 아래의 인물평 기사를 읽고
내 마음이 시진핑의 인간적인 매력에 훅 가 버림
“중국인들은 남한테 밉보이는 것(得罪)을 제일 기피한다” “중국의 공직 사회에서 적을 만들면
오래 못 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은 유명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찌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홍루몽(紅樓夢)의 구절도 공직자들이 반드시 새기는 처세의 철칙”이라며 “
시 부주석은 깊은 정감으로 사람을 대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처신으로 호평을 받아왔다”고 전했다.
시 부주석은 중국의 정계·학계·군부에 거미줄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그의 이름이 들어간 사자성어
평이근인(平易近人)처럼 ‘쉽게 사람이 다가갈 수 있는 친근감’이 최대 무기다.
그는 한 번 만난 사람을 금새 형님, 누님으로 각별한 친구로 만드는 재주가 탁월하다,
그의 리더십 키워드는 정이다.
읽고 보니 너무 멋있어 보이고 부러웠고, 나는 그러지 못하지만 아들이라도 이러한 처세훈을
잘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위의 기사를 별도 박스 표시하면서 아내에게 아들이 꼭 볼 수 있도록 부탁.
(2) 17일 오전에 영적 리더 한 분께 위 사실을 말씀 드렸더니 ‘그렇게 부럽다면
참 깨지기가 힘들겠다 라는 말씀을 듣고
처음에는 이해하고 공감해주시는 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점점 사랑의 책망 성격으로 받아 들이게 되면서 심각해 짐.
(3) 17일 저녁에 당일 큐티인 말씀을 다시 보면서, 이 날의 내 큐티가 나의 믿음 수준을 나타낸다고 생각
1절에 ‘신들 앞에서 주께 찬양’ 이 눈에 들어오면서 어제, 오늘의 내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시진핑에게 찬양이었구나 생각함
아침에 한 큐티 내용은 8절 ‘내게 관계된 것을 완전케 하실찌라’를 주 내용으로 해서
내가 깨뜨렸던 아내, 직장에서의 관계의 사건들을 재료로 삼고, 또 적용으로,
답답함과 혈기가 날 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내가 못마땅해 하는 상대의 그것이
바로 나에게 있음을 생각하기로 함
그런데, 저녁에 새로 깨달은 것은,
내가 주위의 관계의 회복을 묵상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본질적이고 선행해야 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어제 오늘의 경우에는
부차적인 것이 되어 있었음을 깨달음
내게 없는 것 같은 시진핑의 의리와 정의 관계가 부러워 한 방에 훅 간 나를 확실하게 알게 됨
(4) 17일부터 내 죄를 보는 묵상이 되면서 다음의 말씀들이 연거푸 상기됨
ㅇ 목사님 창세기 초기 설교에서 강조하셨다고 생각되는,
초라하지만 영적인 인물들을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한 아브라함의 믿음
-롯 구하기 전쟁 승리자로서 족보도 없는(?) 멜기세덱에게 십일조 드린 것과
오정 뙤약볕에 먼지 뒤집어 쓴 초라한 나그네로 장막 문 앞에 선 하나님을 알아보고
극진히 대접한 일
ㅇ 이번 주 설교 말씀 연관하여 : 내 마음 무저갱의 구멍에서 휴머니즘 최고봉의 연기가 올라와
해같이 밝은 십자가를 가리우는 가치관이 무너지는 혼돈이 왔구나.
또 우리는 멋있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다. 권세 가지고 부드럽고 강해 보이는 황충에 속지 말라.
--> 세상 최고의 권세자가 호걸 풍모에 나에게 없는 인간적인 의리와 정의 매력까지 더해서
눈 앞에 보이니, 초라한 십자가는 그 순간 잊어버린 것 같음.
(5) 18일 말씀에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살핀 나'란 말씀이 나오면서
3일 동안의 과정이 한 실로 꿰어지는 느낌
우리들교회 와서 나의 악과 음란의 종류들인 돈 사랑, 관계와 질서에 불순종, 육적 음란은
터닝포인트를 지나 51까지는 온 것 아닌가 하고, 더 깨지기 힘들었던 인간적인 착함은
아내의 2차례의 큰 수고로 반환점인 50을 돈 것 아닌가 하고,
그리고 그 근원은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 온 너는 착하다. 또 착해야 한다는 말이
마음에 각인이 되어서라고 생각했었는데
이틀 정도 나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것의 근원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0대부터 나름대로 읽어 오면서 나의 은근한 자랑거리이자 자부심이었던
역사관련 책에 나오는, 그 순간만은 나의 마음을 지배했던 위대한 영웅들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듬
ㅇ 한 5번 이상씩은 읽었던 박종화, 이문열 삼국지에 나오는 영웅호걸들의
충절과 의리, 특히 나는 감히 따라 갈 수도 없을 것 같은 관우
ㅇ 로마인 이야기 중 하일라이트로 2권에 걸쳐 나오면서 로마 제정을 확립해 놓고
암살당한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관용과 솔직한 인간미에 바탕한 카리스마
ㅇ 일본 중세시대 3영웅의 이야기인 32권짜리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인내와 희생의 리더십
ㅇ 중요한 장면이나 전투신이 나오면 흥분이 되고 너무 멋있기도 하고, 그 꿈에 취해서 내가 그인양...
아 이것이 내가 시진핑에 한 방에 가 버린 그 근원이구나.
그런데 확실한 것은, 위의 영웅호걸들은 내가 나의 구원자로 믿는 예수님을 상징하는,
일찍 죽임당한 어린 양 (계 5:6)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는 것에 생각이 미침
또, 그 영웅호걸들은 소설 람세스에서 너무나 멋있게 그려지는 람세스 바로와 같은 종류라는 것,
그리고 이 바로는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찾아가는 길을 막고
못 가게 한 하나님의 대적자라는 것.
내 마음 저 밑바탕 심연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호걸 풍모에 인간적인 의리와 정까지 갖춘
너무나 인간적인 매력을 흠모하는 마음이 나의 믿음에 치명적인 방해 세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달은 이 순간을 오랫동안 기억하기 원합니다.
이 부분 만은 지금부터 50의 터닝포인트를 향해서, 나아가기를
나아가 천국문 까지의 내 수준의 비아 돌로로사 여정을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씀한 초등학문과 배설물로 여겨질 때까지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시고, 돌보아 주시옵소서.
내 안에, 나로서는 못하는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씩 이루어 가 주시는
내 사랑,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