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사무엘상 6:10~15)
지금 우리 사회는 거구로 간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걱정하는 게 아니고 국민이 정부를 걱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것처럼 생각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교회가 사회를 걱정하였는데 참으로 반성할 일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유행하였던 코미디를 소개합니다.
수녀님과 국회의원이 한강에 빠졌습니다.
그러자 누구를 먼저 건져주어야 합니까?
국회의원이 너무 썩어서 한강물이 오염되므로 국회의원을 먼저 구해야 한다는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제사장시대에 엘리 제사장이 나이 늙어서 영적 영향력이 느슨한 때의 일입니다.
블레셋사람들이 쳐들어와서 4천여명이 부상을 당하고 대책을 논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담은 법궤를 앞세우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이긴다고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블레셋사람들은 법궤를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 신당 안에 두었습니다.
그러자 자신이 신이 다곤 신의 머리가 덜어져 나갔고 다시 붙여놓자 팔, 다리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법궤를 암소 두 마리에 채워서 벳세메스로 돌려보내고 있습니다.
밀 수확 때이나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목적지를 행해 갔는데 영적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4가지의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소명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소처럼 법궤를 옮겨야 하는 암소 두 마리를 보세요.
목표가 분명하여야 합니다.
둘째 공사를 구분하여야 합니다.
10절에 송아지가 딸린 소였지만 송아지를 생각하지 않고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갔습니다.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을 잘 구분하여야 합니다.
셋째 보조를 잘 맞추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는 두 마리의 소가 논을 갑니다.
서로가 마음이 맞지 않을 때는 이해하고 설득하여야 합니다.
넷째 희생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14절에 목적지에 도착하자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명자의 길입니다.
상금을 기대할 수도 있지만 끝까지 인내함으로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 그 수고를 다 주님께서 갚아주시리라 믿습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의회의원 및 동료 공무원들은 오늘 사명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잘 실천하여 올 한해도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