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하는 사람들은 "산이 거기 있어서 올라간다"라고 합니다. 저는 "산이 거기 있었군요"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등산 자체를 싫어하고 생각도 않고 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산이 있으면 "여기산도 높구나~" 라고 합니다. 강원도 홍천군 서면 개야리가 시골입니다. 시골에 갈때면 널미재 라는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되는 산을 넘는데 널미재를 넘는 것이 왜그렇게 싫던지요...브레이크 라이닝이 다되어갈 때도 그 산을 넘어본적이 있답니다만.... 저는 어디 올라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오늘 말씀에 아버지는 산 같다고 합니다. 하필 내가 싫어하는 산일게 뭡니까.. 그래도 묵상을 해야 하니 읽어봅니다.
1 절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 시온산이 요동치 않고 영원히 있음같도다.
2 절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룸 같이 =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하늘 아버지께서 조밀한 성읍 조밀한 공통체를 둘러싼 산들이라고 합니다. 요새중에 요새라고 하십니다.
본래 산을 싫어해서 산에 대한 묵상이 잘 안되네요 ㅋ
제가 살아오면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아버지께 잘 의뢰하지 않았었습니다. 어떻게든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는 어금니 깨물고 입술을 깨물어가면서 해내곤 했답니다. 한 두번 이겨내다보니 아무리 힘들어도 아버지께 말씀드리기 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고집스런 막연함에 인생을 걸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됩니다.

현재 11월에 끝낸 공사에서 수금이 50%이뤄진 상태에서 새해를 맞이 했답니다. 돈이 없이 시작한 일들을 겨우겨우 해내는 데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의뢰하지도 않고 목장에 대충 물어보고 시작한 일의 결과가 50% 결재라니 ㅋㅋ 마땅한 결과였나봅니다.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들이라 순리대로 되어야 할 일들에 대해 막연한 기대감과 고집스런 막연함으로 기도가 아닌 기대가득한 순종의 결론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제 수금되기 전까지 쓸 돈이 없기에 작은 현장 하나 맡기에도 너무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2월달에는 처 이모님이 500만원을 상환하라고 하십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현 자본이 제로상태에서 더구나 지난달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마땅히 올것이 온 상환이라는 시기가 내 어깨를 짖누르고 있습니다. 현재 건설경기는 그닥 좋지 못한가운데 있습니다.
늘 목장나눔에서 내려놓을 건 다 내려놓은 것처럼 말했었는데 아직도 내가 내려놔야할 것이 있음을 오늘 말씀을 통해 다시 깨닫게 되네요
3절 악인의 권세가 의인의 업에 미치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으로 죄악에 손을 대지 않게 함이로다.
어떤 사람들은 일을 주고 나중에 돈을 주지 않으려고 머리를 굴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어떻게든 깍으려고 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사건이 생기는가? 악인의 권세가 왜 하나님께서 의인이라고 한 나에게 미치는 사건인지 생각해봐야겠습니다. 내가 나를 의인이라고 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의인의 흉내를 내고 사는 것은 아닌지...
4절 여호와여 선인에게와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선을 행하소서
5절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를 여호와께서 죄악을 짓는 자와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찌어다.
여호와의 산에 둘러싸여 있는 이스라엘은 평안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산을 바라보고 산이 거기 있다고 감탄하거나 거기있었다고 깨달은 것처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시다고 겨자씨같은 믿음으로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 나의 모든 행실을 말하고 있어질 사건을 두고 기도하는 산 같은 아버지 안에서 문제해결을 해야 할것을 알겠습니다. 또한 내가 만든 굽은 길로 치우쳐 이번 사건이 온것으로 알고 죄악을 짓는 자들이 내가 하는 일에 함께 하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깨달았습니다.
적용할것....
먼저 아버지께 의뢰하고 나의 말할 바를 알도록 기도하고 목장에서 나눔할 때 의인인양 떠버리지 않겠습니다.
내가만든 굽은 길에서 떠나 아버지께서 만든 좁은길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목장에서의 처방에 잘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