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9편 33-48절을 보며, 눈의 욕심을 묵상한다.
보는 것때문에 죄를 짓는다. 보았기 때문에 욕심을 내고 욕심을 내니 먹고 싶고, 먹어버리고 나면 죄의 늪, 수렁에 빠진다.
그건 공식이다. 아예 보지 않았으면, 애당초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죄짓지 않았을 그런 것들이 우리주위에 너무 많다.
눈의 욕심이다. 눈의 정욕, 안목의 정욕이다. 눈의 탐욕이다.
오늘 시편기자는 한마디로 말한다.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소서.
보고도 견딜 장사가 없다. 창초의 에덴에서도 그랬다. 탐스런 과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실과는 보암직했다. 보암직했고 먹음직했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다. 그래서 견디지 못하고 죄를 짓고 말았다.
눈의 욕심은 입의 욕심으로 이어지고, 입의 욕심은 몸뚱아리의 욕심으로 연결된다. 사람은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그런 존재다.
그래서 죄짓지 않으려면 보지 않아야 된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허탄한 것을 아예 보는 것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잃지 않는다.
하루에도 열두 번, 보는 것때문에 실수하고 넘어지고 자빠지고 죄를 짓는다. 시편기자 다윗뿐아니라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건 똑 같다.
그래서 나도 아버지를 부른다.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이런 기도로 금욜의 차가운 아침을 또 힘껏 열어제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