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의 말씀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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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1.28
11/28(화), 여호수아 8:30-35 저주하는 율법의 말씀
여호수아는 아이성을 정복한 후 그 날의 전투가 주는 교훈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성문 어귀에 아이 왕의 무덤을 만들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다. 또한 승리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백성들의 기강을 다잡기 위하여 순결한 돌로 단을 쌓고 율법을 낭독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그 율법에는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있는데 모든 말씀을 낭독함으로써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면 축복이 올 터인데 그러지 못한 나에게는 고난이 먼저 찾아왔다. 그러나 고난도 하나님의 자녀에게만 축복의 통로로 허락하시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시니, 하나님은 자녀를 무관심 속에 방치하지 않는 분이라고 생각되며 하나님의 관심이 떠난 상태 그것이 곧 저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제 퇴근길에 전철에서 오랜만에 어떤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번호를 보는 순간 그 번호의 주인이 바로 생각나지 않았지만 중고등하교 6년을 같이 다니고 사회에 나와서도 자주 만나던 친구였다. 안 본지는 2,3년 밖에 안됐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기억이 빨리 잊혀진 건 내가 의식적으로 잊고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나 첫사랑의 연인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게 인지상정일 텐데 그건 자신만의 추억의 방에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 친구는 사업적으로 성공하여 재산 관리하는 일에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넉넉한 형편이다. 서로 안부를 묻고 덕담을 나누며 한번 놀라오라고 하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내가 세상적으로 실패하여 궁핍한 형편일 테니 자신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냐고 묻는 것 같은 느낌이 전화기를 통해 전해져 왔다. 사실 나는 말씀을 좇아 살기로 결심한 이후 그의 도덕적 흠결 때문에 옥토 된 자의 성품으로 그 친구를 받아낼 자신이 없어서 아직 그를 구원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며 아직은 율법의 저주의 죄목과 같은 그 친구의 삶을 나의 연약한 믿음으로 축복의 대상이 되는 삶으로 인도할 자신이 없어서 멀리해 왔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육적으로 잘 사는 놈, 영적인 축복까지 받게 되면 너무 배가 아플 것 같은 마음도 은연중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축복의 말씀과 동일하게 저주의 말씀을 낭독하는 여호수아의 모습에서 왜 두 말씀이 나에게 중요한 지 깨달을 수 있었는 바, 비록 평강을 누리며 사는 것 같지만 자신의 죄를 알기에 마음 한 구석에서 커 가는 저주의 불길한 예감 때문에 오늘도 늦은 밤 친구를 찾는 그 친구에게 내가 할 일은 축복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