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만난 이후 전적으로 이타적인 삶의 모습을 보인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나는 누구를 위해 괴로움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없습니다. 기껏해야 자식을 위한 것이겠지만 그것도 결국에는 나를 위한 것이었고 그 괴로움을 기뻐까지 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괴로움을 받고 기뻐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구속사를 완성시키기 위해 당하신 고난이 십자가의 사건이라면, 그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인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의 일꾼이요, 교회의 일꾼이라고 합니다. 그 고난이라도 남겨주셔서 동참케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오면서 당한 경험과 연륜의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철저하게 남을 위해서만 이루어진 삶,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입니다.
나는 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나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었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는 남이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철저한 이기주의와 나의 시간과 생활은 누구에게도 침해받아서는 안된다는 지독한 개인주의자였습니다.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인 줄도 몰랐습니다.
복음을 전하는데도 나의 위신과 체면을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복음은 좋은데 너는 싫다가 바로 나였습니다. 심지어 내가 교회다닌다는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꺼려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는 것은 고사하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올것 같으면 입을 닫았습니다.
내가 이타적인 삶은 꿈도 꾸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아왔음에도 지금 말씀을 묵상하고 있다는 것은, 이혼과 이별로 인생이 절단나는 사건을 통하여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인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삶이 감사하고, 들려지는 말씀과 읽혀지는 말씀이 감사합니다. 그 비밀을 조금씩 알게 하여주시니 감사합니다.
또 나보다 더 바울인 사람의 가르침속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서야하고, 나보다 덜 바울인 사람에게 성령님의 역사를 따라 힘과 수고를 다하여 가르쳐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공동체인데 나는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일대일이나 예목까지는 나를 위해 배우고 싶어서 받았는데, 양육교사하라는 것을 안한다고 하였고 고등부교사를 못하겠다고 하였고 이슬비를 못쓰겠다고 하였습니다. 회개합니다.
바울은 너희를 위해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육체에 채우기를 원하고 너희를 위해 내 삶이 이루어지는 이타적인 삶을 원합니다. 공동체에서 서로 배우고 가르치고 세워주고 서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으로 연합하고 서로 이해함을 넉넉하게하여 비밀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오로지 나의 안위와 편안함만을 위해 살았고 나의 생활이 외부에 의해 깨지는 것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씀을 적용하는 삶속에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 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