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죄로 인하여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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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1.24
11/24(금), 여호수아 7:1-15 한사람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한 사람의 죄에 대한 징벌로 민족 전체를 꾸짖어 36명이나 죽게 하셨다. 공동체 전체에 대한 징벌로 끝나지 아니하고 당사자를 가려내어 불태워 죽이고 그 소유까지 불사르라고 명하신다.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고결한 인품을 가진 어떤 사람의 죄가 만천하에 공개될 때 우리는 “어떻게 그럴 수가?” 하며 경악한다. 그 사람의 평소 언행에 비추어, “아닐 거야 모함이겠지” 생각하다가 결국 사실로 밝혀지면 사정없이 매도한다. “쳐 죽일 x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중학교 도덕 시간에 배운 내용인데, 착한 성품과 악한 성품을 모두 꺼내어 신 앞에서 심판 받으면 어떤 인간도 예외 없이 51:49 또는 49:51의 비율로 나뉘며 이 2%의 차이가 세상에서 말하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그 때 예로 든 사람이 도끼로 일가족을 살해한 고재봉과 김수환 추기경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죄’와 ‘선행’을 대입해도 이 원칙이 성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자기 죄를 보는 일이 왜 중요한지 이해가 된다. 이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지만 자신과 하나님만 아는 죄가 얼마나 많은가? 이제 사람 나누는 기준에 새로운 항목 하나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자기 죄를 보려는 사람과 남의 죄를 보려는 사람’ 하나 더, ‘자기 죄를 끄집어내는 사람과 덮어 두는 사람’
셀 수 없이 많은 죄 중에 하나만 고백하면, 술 많이 먹던 시절에 휴대폰과 지갑을 많이 잃어버렸다. 휴대폰은 5개 쯤 되고 지갑은 10번 쯤 될 것 같다. 그 반면에 휴대폰은 3번 줍고 지갑은 한 번 주웠는데(이유는 자명함- 늦은 밤 유흥가를 많이 돌아다녔으니), 휴대폰은 2번 돌려 주고 지갑은 돌려주지 않았다. 양심의 가책을 극복할 수 있었던 논리는 ‘하도 많이 잃어버리니 나도 줍게 하는구나.’였다. (이 때는 말씀을 모르던 시절임)
어제 늦게 아내를 도와주러 포장마차에 갔다가 숭실대 전철역 입구에서 현금이 두둑한 지갑을 주웠다. 아침에 회사에서 지갑 속의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그 사람의 요청대로 퀵으로 보내주었다. 죄 하나 추가하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오늘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사람의 지갑을 줍게 하셨나보다. 기껏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전투에 참여하여 승리하고도 화형 당할 운명에 처한 ‘아간’이나, 그냥 저냥 나쁜 놈 소리 듣지 않고 살지만, 덮어 둔 하나의 죄 때문에 약속의 땅에 가서도 젖과 꿀을 경험하지 못하고 지옥 불에 던져질지 모르는 나 자신이 다를 게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