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충만한 광야에서 가나안으로 나아가자
작성자명 [이민영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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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1.22
올해 8월, 우리들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갈등 충만한 나날이 시작되었습니다.
육체를 위해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영으로 심으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여전히 세상적인 성공과 편함과 여유를 좋아하면서도 영생도 얻고자 하는 나의 죄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의 가장 큰 기도 제목은 남편의 믿음 회복과 구원이고 세 자녀를 말씀과 믿음으로 잘 양육하는
것이라 하면서도 열심히 육체의 자랑을 위한 생활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의 실력 뿐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기를 수 있는 일
이라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계에도 보탬이 많이 되었구요.
그러나 제가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선순위의 문제를 자꾸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결혼 후, 180도 달라진 남편의 일중독과 무관심 속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우울했었기에,
그것을 극복해보려고 시댁에도 잘하려 하고, 아이들도 잘 가르치며,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며,
경제력도 길러서 혼자서도 당당하게 잘사는 모습을 남편에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존감은 낮아서 겉으로 자존심만 세우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살려 독서글쓰기를 가르치며 자부심이 넘쳐났었습니다. 성공을 향해 오늘
사과나무 씨앗을 심는다는 생각으로 한 명의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해 가르쳤습니다.
이젠 제 스스로 벅차서 팀을 정리할 정도로 잘되었지만 주님 앞에서 스스로 속일 수 없는
갈등에 부딪혔습니다. 왠지 지금 내가 잘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
남편과 가정의 구원을 위해서 이 일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점점 많아지는 아이들, 읽어야 할 책들이 시간을 재촉하고, 집안 일도 저의 손길을 기다리고,
한 시간 반의 수업을 위해 교재 연구하고 준비하는 시간도 만만치않은데,
여러 팀이다보니 일주일 내내 수업만을 위해 사는 것 같았습니다.
제 손길만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서성거리며 안정감이 없고,
수업에 방해가 될 시에는 저에게 눈짓을 받고, 때론 꾸지람도 듣습니다.
가정의 식탁은 점점 인스턴트 식품이 올라오게 되고, 저녁에는 외식이 잦아지다보니
아이들은 포동포동 뱃살이 오릅니다.
수요예배, 목장예배에 빠지지 않으려니 시간은 늘 빠듯하여 살림도 후딱, 식사도 대충....
(다른 독서지도하시는 선생님들의 생활도 저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밤 늦게까지
가정방문하며 수업하시는 선생님들에 비해 저는 제 집에서 편하게 적게 하는 편입니다. )
남편에게도 항상 스피드 요리만 내놓게 됩니다. 남편을 위한 기도도 초고속 시대입니다.
급기야는 이번에 시작한 일대일 양육을 중도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빨리빨리 양육받고 변화받고 남편을 교회로 이끌고자 했던 저로서는 속상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영적 갈급함이 있는 제가 왜 이렇게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할까요?
교육적 사명감? 아니, 바로 욕심 때문입니다.
남편이 성실하게 생활비를 주지만 늘 턱에 차는 목마름(?)으로 살기가 지겨워서 시작한 일이라
두번세번 생각하고 돈 쓸 일도 그냥 한 번 생각하고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기니 좋았고.
아이들 앞에서도 일하는 엄마, 능력있는 엄마로 보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구요, 남편에게도
가끔 한 턱 쏠 수 있는 것도 좋았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제가 코트 한 벌 사준다고 인심도
썼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내 무능력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같아서, 그럼 그렇지, 잠시
하다 힘들면 금새 그만 둘 줄 알았어, 라고 누군가 욕할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내가 게으른 탓이라 여기며, 열심히만 하면 이것도, 저것도 다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감히 내려놓을 용기를 못냈습니다.
성실과 인내가 우상인 남편 앞에서 스스로 점수를 깎는 행위라 여겼기에
더더욱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할례를 행하라 는 명령이, 제 일을 잘라내라는 명령으로 들려집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잡고, 삶의 우선순위에 하나님을 두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남편에게 존심 세우고, 인정받으려 하고, 돈벌기를 애쓰는 삶은 썩어질 육을 거두는 일입니다.
만약 내려놓지 않을 시에는,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않아 광야에서 멸절한 이스라엘처럼
광야에서 유리 방황하다가 멸하게 되리라 경고해주십니다.
양피를 베어내는 아픔처럼 당장 아쉽고 쓰린 마음 고생이 있을 것도 아십니다. 그러나
낫기를 기다릴 때에 세상을 사랑하여 성공과 돈에 종노릇하고, 남편의 사랑을 구걸하며
살았던 애굽의 수치 를 나에게서 굴러가게 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상처가 낫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온 몸에 힘을 빼고 그저 시간이 가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저 또한 힘을 빼고 말씀 속에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금식하며, 견뎌야 합니다.
주님은 이제 제가 남편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혼인한 신부로써의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한 후 남편의 죄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동반자가 되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그 달에 여리고 평지로 들어가, 그 땅 소산을 먹으며,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을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그 달, 그 해--는 하나님이 정하신 맞춤의 때임을 믿습니다.
제가 소망하는 가나안의 열매는 남편의 구원입니다. 남편의 영혼 구원을, 그것도 그 해에 ,
주신다고 하시는데 제가 왜 매일매일 만나를 모으러 광야를 쏘다니는 수고를 하겠습니까?
말씀 잡고 건너온 요단강물은 다시 넘쳐 흘러 돌아갈 수 없으니 또다시 말씀과 약속 붙잡고
적용하며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을 뿐, 후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를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로 감사히 받으며, 이 안에서 자족의 비결을
배워야 겠습니다. 그리고 세 자녀와 남편의 거듭남과 구원을 위해서 기도와 말씀과 예배를
통해 삶의 적용을 열심히 심어야 할 것입니다. 다 끊지 말고 조금만 남겨둘까? 하는 타협심도
불쑥불쑥 솟아오르지만, 투명하게 저를 내려다보시는 하나님의 눈 앞에서 더는 스스로를
속이거나 물러서면 안될 것입니다.
그동안 저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학부모들을 잘 이해시키고 서로 감정 상하지 않도록
지혜롭게 정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을 날이 속히 올 것을 기대합니다. 먼저, 제가 속히 낫기를 기대합니다.
주님의 인도하심이 어찌 이리도 세밀하신지.. 참 놀라움으로 감사드립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