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믿음으로
작성자명 [정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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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1.21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좇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좇았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하더라.>(마8:19~27)
하나님을 어떻게 높이며 살 수 있을까요?
마태는 서로 상충되지 않는 두 가지 사건을 결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루 종일 언덕에서 가르치고 마무리된 시점에서 한 말씀입니다.
파장분위기로 집으로 떠나가는 중에 한 서기관이 제자로 입문하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러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즉 사글세방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 앞길이 열릴 것이라고 생각하여 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고 하자 좇기를 포기하였습니다.
포기한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제자에 관한 일은 결과를 설명해주는데 그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4:19~20)
예수님에 대한 표현이 선생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아서 쫓아다녔지 구원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이러실 수 있을까? 라고 의문이 가는 말씀입니다.
성지순례를 가보면 바위로 판 무덤이 많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머물 때에 왕궁에 있는 무덤을 플래시를 가지고 가보았는데 바위에 구멍을 내고 또 구멍을 내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이러한 바위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여러 개의 무덤을 두고 그 속에 죽은 시체를 넣었다가 1년 정도 있다가 썩으면 다시 두 번째 항아리로 옮기게 됩니다.
아마 본문은 두 번째의 장사를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다른 제자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나와 고명진 목사와는 비슷하지만 나와 마이크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500여 형제에게 라는 말에서 형제를 제자로 똑같이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셨고 그 중에서 3명을 마지막에는 수제자로 1명을 지목하셨습니다.
12명의 제자들조차도 처음에는 세상의 성공을 바라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에 묻히시자 다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사글세방도 없어’ 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자 이 제자도 마음을 접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을까요?
#61569; 예수님께 온전한 헌신입니다.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것이 없이 예수님을 좇을 수 없고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구원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예수님의 제자는 좁은 길을 가는 자에게만 열려있습니다.
정말로 여러분들도 예수님의 뒤를 좇고 싶으십니까?
왜냐하면 여기에 영생이 있고 가장 가치 있고 보람된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일은 우리가 영혼의 시대에 가보면 알게 될 것입니다.
제자의 길은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20년 전에 남편을 고르는 순서가 판사, 검사,변호사, ......이발사, 목사... 이었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입학을 하였을 때에는 40명이 있었는데 졸업은 13명이 하였습니다.
가락동 시장에서 판매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그 당시 장가도 못가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학교를 그만두었다고 말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사건은 풍랑을 만난 사건입니다.
제자들이란 말은 그 제자들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아마 그들은 조상대대로 어부생활을 하여 자신들이 대단하게 노를 잘 저으며 자부심이 있었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걱정을 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저어 나갔지만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깨우셨고 주님께서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에는 이 말씀이 거꾸로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에게 중점을 두었고 마가복음에는 이적에 중점을 두고 먼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어디에다 중점을 두고 기록을 하였는가 입니다.
저는 마가복음의 순서가 맞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파도와 바람이 몰아치지만 건너라고 명령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자신이 헌신을 한다고 생각하였던 서기관도 탈락을 하였습니다.
#61570;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갈릴리바다 가운데서 이 일을 일으키신 것은 제자들에게 ‘나를 의지해야만 돼’ 라고 가르치시려고 하셨습니다.
제자와 비슷한 사람들은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의지해야만 합니다.
그 분만을 인생의 스승이자 목자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새벽기도에 나오신 여러분 중에서도 과거에 풍랑을 경험하였거나 지금도 폭풍 속을 지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미국에 가기 전에 월요일 소그룹 모임에 갔는데 한 자매가 통곡을 하는 것을 보고 입구에서 5분 동안 기도만 하고 나왔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폭풍우를 만나게 됨을 봅니다.
어떤 때는 나 보다 더 좋은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마나기도 합니다.
한 가정에서는 6살 난 아이가 유치원에 가다 트럭이 들이 받아 병원에 옮겼으나 죽었습니다.
운전사 가족들이 찾아 와서 사죄를 하자 그들에게 ‘새 생명 축제에 3일 동안만 참석해 달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옆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어느 날 괜찮으시냐고 묻자 퍽 쓰러지면서 울었습니다.
저들이 믿지만 믿음으로 저들을 용서한다고 하며 보상금을 1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 가정에 얼마 전에 아들 하나를 하나님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어도 사고나 불행이 올수도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풍랑으로 인하여 육신도 영혼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의지하면 풍랑을 이겨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께서 잔잔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보다 더 정하겠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려날 때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겠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 찬송은 자녀3명을 풍랑에 잃은 분이 그 바닷가를 지나면서 지은 찬송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능력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온전한 헌신, 온전한 신뢰가 필요합니다.
우리들도 끝가지 쫓아가는 참된 제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나의 믿음과 헌신을 돌아보게 하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변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로하며 기도하며 살고자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풍파를 잔잔케하여 주시리라 믿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