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과 교제하시기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질문할 때에 들어주십니다.
그들의 알지 못함을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교제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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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야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느니라 너희가 내게 물으려고 왔느냐
내가 나의 목숨을 걸고 맹세하거니와 너희가 내게 묻기를
내가 용납하지 아니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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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의 예언은 바벨론에 온 지 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7년은 예언을 시작한 지 2년이 넘어서고 있는 시점입니다.
이때 이스라엘 장로들이 에스겔에게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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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하나님께 질문을 가지고 왔습니다.
질문을 들으시고 기꺼이 말씀하시던 하나님이
이번에는 장로들의 질문 받기를 거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부하셨기에 질문의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어서 하시는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질문이 무엇인지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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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눈을 끄는 바 가증한 것을 각기 버리고 애굽의 우상들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내 말을 즐겨 듣지 아니하고
... 가증한 것을 ... 애굽의 우상들을 떠나지 아니하므로”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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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노예로 있을 때에
애굽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애굽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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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애굽의 노예로 있으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인지 모릅니다.
노예는 주인이 하라면 무조건 순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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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노예로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신을 선택할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의 신들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도 이해하시라는
말을 하려고 이스라엘 장로들이 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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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바벨론의 포로가 된 것은
여호와께서 바벨론의 신에게 패해서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으로 간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범죄한 백성을 국문하는 법정이 바벨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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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스라엘은 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입니다.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참회하는 것입니다.
엉뚱한 질문을 해야 하는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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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하여
그들이 하려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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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알려주셨습니다.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은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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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 지에 있다고 아무 신이나 따라갈 존재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전히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께서 언약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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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하나님도 어려워지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십니다.
우리의 상황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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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눈에 보이는 것에 미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 생각, 느낌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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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을 통해 하나님은 강력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의지를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거부하시고 침묵하실 때에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에게 말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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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기 원합니다.
외면의 몸짓에서 나오는 강한 메시지를 듣기 원합니다.
여전히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로 서 있음을 알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