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르신대로 명하는 지도자 (지체들을 통하여 주시는 훈계와 책망을 기다립니다)
작성자명 [박동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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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1.20
여호수아3장1절-4장24절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 2006/11/20
한해가 얼마 남지 않은 11월의 말미에
또 한번 교회를 요동케 할 직분자 임명식과
새로이 부임지를 찾아 오시는
시무 목사님을 대할 일들을 생각합니다.
담임 감독자로 부터 임명을 받아 오시는 목사님에 대하여
무조건 순종 하여야 하는 것이 제가 섬기는 교회의 전통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지극히 성경적이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목사님(이곳에 목사님이라 할땐 우리들 교회 목사님을 뜻합니다. 앞으로도 쭈~~욱)께서도
개혁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은 절대로 순종 이 잘 되지 않음을 말씀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과연 나 자신은 개혁적인 성향이 두드러진 사람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그런것 같기도 합니다.
남들에 대한 모방 보다는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노력들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백프로 창조적이기 보단
경험된 것들에 조금의 다름을 가미한 산물에 불과합니다.
또한 저가 감정사로서 직업병이라 할 수 있겠지만
기준에 비추어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하여는 굉장히 민감한 반응을 보입니다.
이것 또한 개혁 성향으로 비춰질 우려가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비추어 틀렸는지, 나와 다른지에 대한 분명한 판단은
오직 주님께서 하실 일 입니다.
하지만 매일, 매주, 매년 교회에서의 시무목사님이 명하시는 모든 것에
무조건 순종을 해야함이 성도의 의무임을 교육받는 평신도로서
그 명령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음인지
목사님 개인의 의지인지 분별할 지혜가 너무 아쉬운 실정입니다.
법궤를 맨 제사장들을 따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나도 따라가야 할 지도자가 나의 목전에 보여지기 원합니다.
능력 행함을 위한 순종인지, 순종함으로 인한 능력인지 분간이 되어 지지 않는 지금
영혼을 향한 사랑만이 아닌 나의 강퍅된 맘이 녹아지는 사랑을 받기 원합니다.
십일조하라! 전도하라! 헌신하라! 모든 예배에 참석하라! 순종하라!
...하지만 정작 먼저 요단강에 들어서는 지도자가 보이지 않음이 저를 혼란케 합니다.
요단강에 들어서지 않음이란
지교회에 속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없는것 같음을 뜻합니다.
저는 양육받길 원하지 관리의 대상은 아닙니다.
목자장께서 여러 목자들에게 양들을 맡겨두심은
주님의 양을 치고 먹이라 하심인데
다만 젖이나 짜고 숫자만 헤아리고 있다면
목자없는 양이 아니라 이리떼 가운데 있는 양들이 아닐까...
장년 50명도 안되는 교회에서
나는 여러분의 아픔을 잘 모르지만... 이라고 하심이 과연 겸양의 표현이라고 일축할수 있을까
그것이 실재 상황일땐 목자 없는 양떼 를 불쌍히 여기심으로
통분해 하시던 곳이 바로 이곳이 아닐까...
릭워렌 목사님의 교회성장에 관하여 기록된 것중
성장하는 교회의 공통점으로 한분 목회자의 꾸준한 섬김 에 대하여
언급하심을 기억합니다.
몇년에 한번씩 교회의 목회자가 새롭게 바뀐다면
그 교회는 꾸준한 성장을 기대하기 힘들다 하십니다.
유대인을 위한 사도와 이방인을 위한 사도를 분류하신
주님의 뜻을 묵상해 봅니다.
전능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있는 무리와
[능력의 종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용하심으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충만한(?; 하였던)]
목사님이 직접 시무하시는 곳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의 무리
율법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사귐이 무엇인지,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이들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있으므로 자신을 비춰볼 성숙된 무리가 있는 곳)
그 사망의 그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백성들을 위하여
약속하신 메시야인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함과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이방인들에게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에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함의 방법은
분명 다를 수 밖에 없음을 성경을 통하여 봅니다.
하지만 전혀 낮선 부임지에
또한 좁은 땅 덩어리지만 지방색이 유난히 강한 우리나라에
새롭게 오셔서 서울 본당의 믿음의 무리를 생각하고 시무한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방법과 지혜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본당의 담임감독님 마저도
오늘날 처럼 순종하지 않는 것은 내 목회경험상 없었다 라고 하심은
순종 해야할 하나님께서 일러 가라사대 가 없는 것이 아닐까.
나 자신도 이러한 생각이 너무나 위험한 생각들이라고
한계점을 훨 벗어난 것이라는 일련의 염려함도 있지만
나의 목전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지는 것이 없음이,
바라볼 무엇도 보이지 않음이 문제인것 같습니다.
부분적인 회복됨이 있었지만
시무목사님으로 부터는 직분을 정지 당했고
무리들 중에서는 택함을 받은 자로서
나의 행보는 어쩌면 이천 규빗쯤 앞서가는 자로서의 행함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지도자를 통한
하나님의 이르심에 대한 명령을 받지 못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저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가 말한것과 같이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심으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심을 알게 하심 같이
당신이 우리를 사랑함으로 인도하는 길은 사망과 음침한 골짜기라도
오직 빛되신 주님과 함께 하시는 당신을 바라봄으로 따르리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유독 힘든 신앙생활을 해야하는 이곳에서 참음으로 인내함은
하늘 소망이 너무나 크기 때문인데
그 소망을 유지할
주님께서 사랑하심으로 주시는 생명과 부활의 복음을 들려주지 못한다면
내가 무슨 방도로 살아남을수 있으리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공동체가 있다면
따로 세워져 보내지는 적진의 여리고성에도 다녀올 각오가 되어있다.
오직 하나님의 이르심대로 순종하는 공동체로서
거져 주어지는 지경이 아니라 정복해야 할 땅에 대하여 앞서 나아갈 열성도 있다.
오늘날 내 목전에 있는 지도자에 물어볼 이 돌 이 없다는 것이 슬프다.
나의 믿음으로 내 맘속에 읊조림은
믿음으로 애굽을 박차고 나왔고 홍해를 건넜으며 그 광야시절을 거쳐왔건만
이제 저 요단을 건너게 할 지도자가 보이지 않음은 어찜인가...
내가 아직도 하나님의 구하시는 거룩함에 온전히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인가
아니면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해 달리 세우심을 인한 분리하심인가.
목사님께서 좋은 교회는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 이란 말씀에
나 자신을 순복하지 않았다면 이미 다른 곳에서 신앙생활을 하였을 터이다.
하지만 왜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을 이곳에 보냈셨을까...
그저 있었더라면 부산과 경남에서 제일가는 물리적 환경에,
교사직분을 감당하고 있을 터인데... 어찌하심인지...
아직도 주님으로 부터 명하심을 듣지 못하고 있기에
무리와 함께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주님의 인도하심에 신뢰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법궤를 맨 제사장과 너무 가까이 있었음도 문제점이었나 보다.
이천 규빗쯤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따라야 했었는데...
아무튼 다시금 소망을 가져본다.
하나님의 이르신대로 즉시 명하는 지도자를 발견할 수 있도록
내가 성숙하기를...
주님, 저의 완악함을 인함이라면, 마음밭이 좋지 않음을 인함이라면
저에게 부드러운 마음과 정결한 맘을 주시옵소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합소서.
주님, 믿음의 공동체를 위하여 기도한 모든것
주님의 뜻안에서 이루어짐에 대에
기한이 이를때에 주셨던 약속의 자녀 이삭 을 보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기다린 지도자,
약속대로 보내주신 지도자를 맞아서
잘 순종하는 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