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1. 24(목) 큐티 제목: 이스라엘의 외도(에스겔16:15`34)
-부제; 악하고 음란한 여인과 나.
-요약: 자기 화려함을 믿고 명성을 팔아 매춘한 이스라엘
15절:2011. 11. 24(목) 큐티 제목: 이스라엘의 외도(에스겔16:15`34)
-부제
그러나 네가 네 화려함을 믿고 네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되 지나가는 모든 자와 더불어 음란을 많이 행하므로 네 몸이 그들의 것이 되도다
-이스라엘의 종교적 매춘
16절:네가 네 의복을 가지고 너를 위하여 각색으로 산당을 꾸미고 거기에서 행음하였나니 이런 일은 전무후무하니라 17절:네가 또 내가 준 금, 은 장식품으로 너를 위하여 남자 우상을 만들어 행음하며 18절:또 네 수 놓은 옷을 그 우상에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을 그 앞에 베풀며 19;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음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저는 제가 인정머리없고 못되고 독하고 징그러운 사람인줄 알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고모들에게 할아버지가 인정머리가 없다고, 일예를 들면 두분이 같이 밥을 먹고있는데 자기 밥 다먹었다고 할아버지가 불을 꺼버렸다고(그 방은 창문이 옆집담에 막혀있어 낮에도 캄캄함) 몇번이고 곱씹으며 잔소리 하시다가 옆에있는 저를 끌어 들여.
ㅇㅇ이도 하나버지를 닮아 인정머리 없다고 길에서 나를 만나 빵을 사서 들려보내줬는데 다른 아이들 같으면 한번 뒤돌아보고 갈텐데 ㅇㅇ은 인정머리가 없어서 그냥 가기에 일부러 한번 불러보았다고(아마도 할머니는 제가 예뻐서 제가 한번 돌아보기를 바라셨나봅니다. 그때는 할머니가 미워서그런줄 알았는데 자식을 키워보니 이제사 이해가....
하지만 새벽부터 일나가시고 밤늦게 돌아오시고 주일날도 한번 안쉬시는 할머니와는 정이 별로 들지 않았었습니다.)그얘기를 자는척하며 들어야햇던 나는 속에서 분노감이 솟았습니다.
아니라고 나는 할아버지도 안닮았고 인정머리도 많다고. 그래서 저는 나이 사십이 넘도록 사람들과 헤어지면 꼭 돌아보는 습관이 있습니다.
못되고 독하다는 말이 징그러워서 남에게 싫은소리 한번을 못하고 남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합니다. 거절할때는 그사람과 모든 관계를 끊을각오를 하고서야 거절을 할 수가 있고 미안해서 상대를 잘 보지를 못합니다.
세째고모는 유난히 예민하고 수다스러웠는데 제가 어릴때는 예뻐서 팔이 부을정도로 안고 다녔는데(내가 돼지같이 살이 쪘엇다며)이제는(초등저학년일때) 징그럽다고 징그럽다고, 유난히 키가 크고 발육이 빨랐던 저는 제자신이 점점 징그러워져 갔고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져 가는데 늘 냄새나는 허름한 옷을 입고 다녔기에 나의 모든 성장이 수치스럽고 창피하기만 했습니다.
피투성이의 모습이 그런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상속에서는 고귀한 열국의 공주요 왕비였지만 현실에서는 누덕누덕기운 냄새나는 누더기를 걸친 재투성이 계집애.신델렐라....
그리고 이마가 훤하고 얼굴이 동그스름하고 눈썹이 그린듯이 예쁘고 눈도 속쌍꺼풀에맑고 코도 복코인 여동생에 치여 늘 차별 받으며 안팎에서 언니는 밉고 동생은 예쁘다는 소리를 늘 들어야 했고 그 동생은 성격도 밝고 착해서 더 사랑스러워져 갔고 저는 성격마저도 내성적이고 예민해서 상처 잘받고 신경질적이어서 갈수록 괴물이 되어갔습니다.
대여섯살때 넘어져 이가 빠졌는데 송곳니가 났고 그 틈으로 이가 또 나기 시작해 송곳니를 부랴부랴 뽑았지만 앞니가 심하게 삐뚤어져서(나중에 그 이를 뽑을때 의사는 뒤틀려진 이라고 함) 드랴큘라라는 별명이 있었고 삐쩍마른 볼품없는 모습에 공장을 다녔습니다.
지독한 근시에 초3때부터는 만화책과 교실에 학급문고가 생겨 동화책을 보았고 5학년때 아버지께 우리집에는 책(동화책)도 한권 없다고 불평하자 아버지는 우리집에 책이 많다면 한국문학 단편전집을 주셨습니다. 저는 무슨뜻인줄도 모르고 스토리에 얽매어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그 내용들이 대부분 가난과 인간의 고통을 다루는것이어서 쉽게 읽혀졌습니다.
목가적이고 서정적인 배경의 묘사도 저를 가난하고 배고프지만 소박한 자연환경에서 단순하고 처절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속으로 저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굶어죽지도 병들어 죽지도 않았으니 이들보다는 낫다. 내 부모는 살아있으니, 나는 고아원에서 학대받지 않았으니 이들보다는 낫다.
나는 점점 독서광이 되어갔고 집안에 있는 한국 문학 장편전집 고모들이 읽다 두고 시집간 세계문학전집 잡지책 만화책 닥치는대로 읽어갔고 눈은 갈수록 나빠져 수업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교실 맨 뒤편에서 국어와 세계사와 국사 가정가사 수업만 받고 수리와 과탐시간에는 주구장창 책만 읽었습니다.
그러다 부모님과 저의이상은 높아 상고가 아닌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고 학력고사 성적은 꽤 괜찮아 명지여고에 입학했습니다.
고등학교부터는 열심히 공부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시력은 나빴고 외모에대한 열등감때문에 높은 기대치가 있었던 저는 안경을 전혀 끼고 싶지 않았고(어렵게 맞춘 안경도 시력조절이 잘 안되었음)꾸준히 공부할 성실함과 인내심도 전혀없었으며(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화가나고 우울했음으로) 기초도 없었고 그나마 잘하던 국어시험도 한문으로 나와버리자 저는 학교 공부에 절망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과목에는 소설책읽기와 형편이 여의치않으면(까다로운 선생일경우)공상으로 때웠고 들리는 과목은 들었지만(그나마 책이 재미있으면 계속 책만봄) 필기도 하지 않고 즐기기만 했고 시험공부도 전혀하지 않아 중학교때는 그나마 중간정도 유지하던 성적이 고등학교때는 그나마 학력고사를 거쳐 선발된 아이들과 수준높은 학과목에 하위를 맴돌았습니다. 저는 미련없이 공부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공상과 망상에 빠져 살았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도 항상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자라고 책을 많이 읽어 말잘하고 기발하기까지 했던 저는 반 아이들의 어쩌면 천재일지도 모른다는(사실은 똘끼) 문학소녀라는 그런 과분한 평가에 그래 나는 너희들과는다른 차원의
사람이라는 교만함이 싹트고 자라갔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여전히 준비물 준비를 못했고 교복자율화로 두어벌의 구호물자로 버텼고(교복이 있었어도 고통스러웠음 중학교때 오버도 못입고 다니다 한참 지나서 얻어 입음) 등록금도제때 못내 여전히 괴롭고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의 헐벗음과 굶주림과 병듦에 견디다 못해 새어머니와 아버지께 얘기해 야간반으로 내려가 낮에는 취업을 하겠다고 해서 야간반으로 갔지만
취업이 안돼어 더더욱 고난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이제 야간순이라는 열등감까지(짝이 마포구청에서 사무보조로 일하는 것을 보고 서대문구청장과 막내학교 성서중학교 교장에게 편지도 씀...절대로 못부치는 편지) 새어머니는 니가 불성실해서 그렇다고 화를 내셨다.(만가지 화풀이와 구박과 언어적 폭력은 다음기회에)
여전히 취업이 안되 고2여름방학때 크레용 만드는 공장에 들어갔고 여름방학이 끝나도 학교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더이상 착한 딸 노릇을 집어 치웠다.
새어머니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어서 집안 살림을 거의 도맡아 했고 항상 웃는 모습을 보였고 참하고 침착한 내가 되려고 무진 노력을 하며 살앗던 세월이었다. 온동네에 콩쥐라고 소문이 날정도였다(그렇게도 예민하고 못되고 충동적인 내가) 그리하여 속은 곪을대로 곪아만 갔다.
공장에 다니며 사춘기로 자립심이 생기자 나는 새어머니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고 웃지도 않았다. 날이 밝으면 공장에 가고 해가지면 돌아와 조부모와 동생들과 함께쓰는 방에서 널부러져서 책만 보았다.
그러던 어느날 새어머니가 우리방에 찾아와(그집은 많은 방이 있어 세입자가 많았고 통로가 이어져 있지 않았었다) 위협적으로 나오라고 그랬다 나는 나가지 않았다(요새말로 쌩까고 책만 읽고 있었다) 세어머니가 여러번 나오라고 협박했다 그래도 듣지 않자 내 머리채를 휘어 잡아 챘다. 나는 나가지 않으려 벽을 지지대로 버텼다 .머리가 뽑아져 나갔고 온동네방네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새어머니가 살집이 좋고 힘이 쌨어도 벽을 지지삼아 필사적으로 버티는 나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포악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나도 한마디도 안지고 대꾸했다. 그동안은 당하기만 했었는데...그양반은 화가 나면 벼라별 말을 다 한다.
무슨말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잊혀지지 않는말...지 에미도 못키워서 버리간 새끼들을 내가 어떻게 키우냐고 악을 악을 쓰던....누가 지더러 키워 달랬나???내 에민 우리때문이 아니고 니 남편이 무능해서이거든...너도 나한테 말했잖아...니애비가 무능하지만 내자식(아들둘을 낳았다)들 니들처럼 한쪽부모 밑에서 키우기 싫어 참고 산다고...(이제 할머니.고모들의 사설을 넘어서 새어머니까지 내게 갖은 말을 하며 고문하기 시작했다...
이제사 혹시 그분들이 나를 존중해 주어서 내게 이해받고 싶어서 그런것이 아니었나...나같이 하찮고 더러운 인간에게 구구절절이 말하고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자신이 준 옷을 다 내놓으라고 했다. 동생들과 옷 제품공장을 운영하던 그녀는 여동생들이많았고 그녀들이 입다 만 옷들을 내게 몇개 주었었다. 그리고 그 옷은 내 옷의 전부였었다. 나는다 가져가라고 했다. 유행도 지난 어른옷을 입고 다니느라 너무도 자존심이 상했다고...
내가 이렇게 입바른 소리만 하면 세상은 모두 뒤집어 진다...저런 나쁜년 저런 못된년이 있나 기껏 입혀주고 먹여주었더니 한다는 소리좀 보게 ...저런 천하에 몹쓸년...저년이 책만 읽어서 말만 잘한다고..저 독사같은 눈깔좀 봐라...그리고 아버지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혀 요동함이 없이 깊은 바닷물처럼 고요하기만 하셨다.
다음날 아침 나는 서랍 두칸을 통째로 빼어 새어머니가 쓰시는방앞에 갖다 놓았다. 그곳은 교회 입구이기도 했다.큰마루가 교회당이고 그한켠에 작은방과(성추행을 당한곳) 부엌과 안방이 있는 구조였다. 우리는 조부모와함께 바깥채로 나왔고...보다못한 큰고모가 엄마소식을 아냐고 물었다....
엄마와는 일년에 서너번 만났다...맥아리없는 모습으로 찾아가면 엄마는 짜장면을 사주었고, 돈 몇푼을 쥐어 주었다...나는 가서도 여전히 말이 없었고..엄마를 어찌 대할지 알 수 없었지만...배가 고프고..몇푼 쥐어주면 만화방과 주전부리를 할 수 있어 갔었다. 가면서도 엄마를 만나면 어찌 대해야 할지...내가 엄마가 보고싶어 가는지 돈을 얻으러 가는지...병적인 생각들을하며...내적 갈등이 심했었다..
.말없는 내게 엄마는 친구들에게 얘는 어떻게 사는지 생전 말을 하지 않아 좋다고 했다...만약에 새엄마가 이랬네 저랫네..못살겠네..하면 자기가 얼마나 힘들까보냐고...그러므로 나는 더더욱 아무말도 하지 않았었다..그리고 더더욱 침울해지고 황폐해져 갔다..
어느날부터 여동생을 데리고 가고(엄마는 한번도 동생들을 데리고 오라 하지않았고.....가끔씩은 나도 귀찮아 하는것 같았다...밥도 한번 안해먹이고 짜장면만 사주셨다)훨씬 편안해졌다...남동생도 한두번 데리고 가고...
큰고모는 내 여동생과 자신의 늦둥이 딸을 데리고 엄마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간의 일을 소상히 얘기 했고..엄마는 약간의 눈물을 흘리며(처음으로) 아이들이 얘기를 안해서 몰랐다 했고,
그길로 고모들의 주선으로 학교 앞에 어느집 헛간채의 재래식 화장실과 붙은 월세 50에 보증금 5만원짜리 방을 얻어주어...우리는 어느날 새벽에 몇가지 안되는 짐을 리어커에 싣고 도망치듯 아비집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어미 집 외딴방에서의 생활은 22일 큐티로 대신합니다.
토요일 친정에 김장하러 갔습니다. 감기에 걸린 올케를 빼고 모처럼 삼남매가 함께 모였는데 우리가족의 걱정은 유일한 아들이고 막내인 남동생의 걱정이었습니다. 웬만한 대학 사학과와 한양대 대학원 국문학과를 나온 동생은 젊은시절에 우리가 선생이나 공무원을 하라고 하면 자신은 인생을 그런데 매여서 살고 싶지 않다며 약간의 밥벌이를 위하여 학원강사를 하며 자유롭게 글을 쓰고 살겠다 했습니다.
기독교 신문사의 부활절문예에 시인으로 당선되기도 했고 덕분에 시집도 하나 냈습니다. 그러나 주요과목도 아닌 사탐 강사 생활은 경제적으로 항상 어려웠고 착한 올케는 나름대로 도우며 묵묵히 동생의 곁을 지켰습니다.(친정 모친의 말씀으론 며느리가 홈쇼핑을 즐기며 외식과 행동이 느리고 살림도 못한다고 합니다..그런면이 없지않아있습니다.)
동생의 나이도 이제 불혹을 넘었고(42세) 나이와 경력이 많아지자 학원에서는 인건비가 비싼 동생을 기피하게 되었고 친정 엄마와 여동생의 권유로 분당에서 고양시의 가장 척박한 고양동으로 이사오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융자를 내어3500만원 정도를 해주며 학원을 하라 했는데 그새 1500정도를 생활비로 써버리고, 저도 우리 딸아이를 맡기며 국어 사회 두과목에 100만원씩 주고 반찬이며 과일이며 건강식품이며 외식이며 엄청 해다 바쳤습니다.
어린시절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이혼을 하셔서 나이 40넘어 신학교를 다니며 개척교회를 시작하신 아버지 밑에서 저희 삼남매는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취로사업과 남의땅에 일군 푸성귀로 어렵게 자란 기억이 있어서 저는 제동생이 너무 불쌍하고 엄마도 자신이 끝까지 못키워준 아들이 안타까워 병적인 애착으로 이아이를 돌보게 됩니다.
얼마전에도 동생이 아팠고 견디다 못한 올케는 엄마에게 300만원만 보내주시라고 전화를 했고 엄마가 어렵다고 하고 여동생에게 걱정하는 전화를 하자 여동생은 제게 남동생이 못마땅하다고 일렀는데 저는 그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융자를 받아 600만원을 보내주었습니다.
어린시절 아버지는 철도청에 기차 청소일을 다니시고 엄마는 화장품 외판원일을 하셨을때 돌이 갖 지난 그아이는 여섯살인 저의 손에 맡겨졌고 어린 저는 추운 겨울에도 아이의 아랫도리를 벗겨 밖에 나가 놀았고 그러면 지나가던 어른들이 너는 입어서 안춥지만 애기 얼어죽겠다고 야단을 #52451;고 저는 그말이 무슨말인지 이해를 못해 눈만 껌뻑껌뻑 하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굶던 애기가 울다 지쳐 있을때 저는 속수 무책이었고 엄마가 집을 나가시고 할머니집에 맡겨졌을때 그아이 나이는 네살이었습니다.
늘 영상실조에 냄새나는 허름한 옷을 걸치고 있던 아이..그러면서도 착하고 예쁘기만 하던 아이...도시락도 제대로 못싸가고 준비물한번 제대로 못챙겨가도 공부도 제법 잘하던 아이( 상급학교 진급시험때 모처럼 그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사주었는데 그것조차 속이 안좋아 못먹고, 그럼에도 시험도 잘봤던 ,,,나는 너무 가슴이 아파서 지금도 눈에서 소리없는 피가 흐른다)...입이 짧아 그나마 가끔 먹을 수 있던 된장찌개도 김치도 잘 못먹던 아이...잘 체하던 아이...
그리고 제가 중1때 새어머니가 들어와 제가 고2때 새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지도 못하게 되어 재혼한 엄마가 얻어준 보증금 50에 월세 5만원짜리 재래식 화장실과 붙은 헛간같은 부엌조차 없는 방에서 살때에 저는 주간고등학교에서 취업을 위해 야간고등학교로 옮겼고 취업이 안되어 하루종일 tv만 보고 소설만 보다 오후 4시쯤 학교에 갔는데,
그 많은 시간에(취업못한 야간순이)도 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먹을만한것을 준비해주지 못했었습니다. 어느날 큰맘 먹고 감자조림을 해서는 저의 식욕을 이기지 못해 밥과 감자를 다먹고 라면사먹으라고 동전몇푼두고 간 날이 저는 잊혀지지 않습니다.
엄마한테 한달에 한번 가면 짜증부리며 던져주는 만원을 가지고 한달을 살아야 했는데 저의 허기와 욕구를 채우느라 그돈은 모자랐고, 동생들은 저보다도 더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야햇습니다...아마도 저는 그때 우울증이 심했었던것 같습니다..
소설과 만화와 주전부리에 빠져서..날마다 헛꿈만 꾸며 살았습니다. 그런동생이 이제 굶게되었다는소식에 가슴이 찢어지고..하나님 그아이에게 아직도 남은 고난이 있단 말입니까...너무도..원통하지만...그것이 정녕 그아이와 그아이의 집에 구원을 위한것이라면...주님나라에 유익한것이라면...그러한 고난을 통해 주님께서 그아이에게 하실말씀이 있으신 거라면.....
저는 제게 조금 베풀어주신 물질로 그아이의 인생을 대신 살지 못해 아타까와하는 마음을 내려놓겠습니다. 이제 이 거룩한 지면에 모두 털어놓은 아픈 과거도 주님손에 올려드리고 다시는 그 속에 들어가 분해하며 이를 갈지 않겠습니다..
그런중에도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이 헤지지 않게 하심같이 우리가 머리터럭 하나 상치않고 생명을 보전하게 하여주심을 찬양하겠습니다. 아무도 굶어죽지 않았고 얼어죽지 않았고 암에 걸리지도 않았고..그흔한 맹장수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아이의 구원도 제가 해줄수 없고 그아이의 삶도 제가 대신 살아줄 수 없습니다. 상처와 못된 성질로 주님을 떠났다가 이제사 돌아온 친정어머니...아직도 우상숭배와 세상적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정어머니가 이 사건을 통하여 우상숭배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자신의 힘으로 아들을 도우려 모진 애를 쓰는것을 끊게 하시고
오직 주님께 기도하고 예배드리고 주의 일에 힘써서 많은 세상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살게 하여주옵소서...(친정어머니 점보러 가고싶은것도 참고 하나님께 백일기도라도 하고 싶었지만 교회가 멀어 못갔다고 고백하심...기적같은 고백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난다 하자"우리가 불법을 행하여(우상숭배)여호와앞에 범죄하므로 그 의지하는 양식이 끊어져 기근이 왔다고 하십니다._아멘_
새어머니의 학대를 피해 외딴 방으로 이사왔지만 저는 여전히 취업이 안되었고 한달에 만원씩 쥐어주는 돈으로 여전히 저는 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만화방과 분식집을 드나들었고(동생들은 저보다 더 굶주리고 헐벗김을 당함)고3 겨울방학때 저는 다시 크레파스공장을 찾아갔고 봄방학 출석일수를 채우지 않아 담임이 졸업장을 안준다고 하자 제친구가 사정사정 했지만 졸업장은 못받고(물론 졸업식도 안감) 선생님의 온정으로 졸업은 되었습니다.
타자나 뭐나 아무 취업준비가 안되어있고 눈도 나빠 친구들이 추천하는 백화점에 취직할 엄두도 나지않고(한 친구가 너는 키도 크고 하니까 백화점에 취업하라고...누군지 지금도 고맙습니다.)우울증과 무기력감과 여러가지 신체적 허약증은 저를 한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했습니다.
그래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공항의 스넥코너와 강남의 어느 소형 영화관 매점...그리고 최종적으로 책을 만드는 제본소를 오래 다녔습니다. 어느날 고등학교 절친이(이 아이도 가정형편때문에 주간에서 야간으로 옴) 자기네 동네에 출판사가 있다며 너 책 좋아하니까 같이 취직하자고 직원을 모집한다고 해서 갔는데 그곳은 책만드는 공장이었고 아무래도 수상한 낌새에 출판사 맞냐고 하자 맞다고 책 나오는거 많이 봤다고해서 취직했습니다...
물론 곧 출판사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딱히 배운것 없고 갖은것 없었기에..그리고 거기는 밤에만 일을 할 수도 있었기에 몸이 허약하고 눈이 나빠 일이 서툰 저는 다닐만 했고(밤9시에 출근해 아침9시에 퇴근하는 열악한 환경, 기계돌아가는소리에 난청이되었고 추운밤을 라면으로 때우고 너무도 졸립던 시간들.//마치도 잠안재우고 고문하는듯한 극한의 고통들을) 저는 불쌍한 동생들 때문에 견디고 또 견뎠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기적같이(만25세 되던 해에) 새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국가기관 모처의 기능직 여직원이 되었습니다.
엄마도 새로 생긴 그 부서 건물의 매점과 구내식당을 맡게 되면서 형편이 피어서 저는 쌍꺼플 수술을하고 뒤틀린 이를 새로 해넣고 안그래도 날씬한데 다이어트를 또 해서(나의 상상속의 이상형에 맞추기 위해) 새직장에 출근했을때는 어디서 미스코리아가 왔냐고 사무실이 발칵 뒤집어 졌었습니다.
지방 유지라 소문난 새아버지(남들은 친아버지로 암) 때깔고운 어머니 그리고 큰키(168)에 노동으로 다져진 군살없는 팔다리 게다가 저는 s라인 원조(그당시엔 글래머 미인이라는)새하얀 피부 기다란 웨이브 머리 값비싼 정장 하이힐 자가용이 흔하지 않던시적(1990년) 아버지의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하는 미모의 젊은 처자, 책을 많이 읽어 예사롭지 않는 어휘력 만화책과 소설책을 몇백권(몇천권?)읽으며 갈고 닦은 공주 매너, 우아한 몸짓...ㅎㅎㅎ...
모친은 아리따운 얼굴에 아담한 몸집에 사교력이 뛰어났고 부친은 훤칠한 키에 하얀 피부 맑고 학자풍의 신비주의(?) 컨셉이었는데 미운오리의 털을 벗은 저는 두분의 장점이 절묘하게 조합되어 우윳빛갈 피부에(내가 원조) 168센치미터 키에 롱다리 하얗고 청순한 얼굴(의술의 도움을 쫌 받았지만) 저는 청순가련 신비주의 컨셉과 일도 열심히 하며, 나와 타인을 속이며 살아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뭇남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지경을 넓혀....직원뿐 아니라 민원인들의 마음까지 훔쳐 갔습니다. 어린시절 채워지지 않은 욕구는 그렇게 그렇게 나타나고 저는 다이어트에 집착하고 높은 구두와 우아하고 아름다운옷에 탐닉하고 피투성이 과거를 숨기기 위해 더더욱 우아해지고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왜 저를 공무원이 되게 하셨고 또 왜 그리 아름답게 꾸며 주셨는지요...저는 더더욱 악하고 음란해지기만 했습니다.
-19: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음식물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0: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그들에게 데리고 가서 드려 제물로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네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21: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넘겨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22:네가 어렸을 때에 벌거벗은 몸이었으며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네가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느니라.
2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화 있을지저 화 있을진저 네가 모든 악을 행흔 후에 너를 위하여 누각을 건축하며 모든 거리에 높은 대를 쌓았도다
25:네가 높은 대를 모든 길 어귀에 쌓고 네 아름다움을 가증하게 하여 모든 지나가는 자에게 다리를 벌려 심히 음행하고
26: 하체가 큰 네 이웃 나라 애굽 사람과도 음행하되 심히 음란히 하여 내 진노를 샀도다 27:그러므로 내가 내 손을 네 위에 펴서 네 일용할 양식을 감하고 너를 미워하는 블레셋여자 곧 네 더러운 행실을 부꾸러워하는 자에게 너를 넘겨 임의로 하게 하였거늘
28;네가 음욕이 차지 아니하여도 또 앗수르 사람과 행음하고 그들과 행음하고도 아직도 부족하게 여겨 29:장사하는 땅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하되 아직도 족한줄을 알지 못하였느니라
30: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네가 이 모든 일을 행하니 이는 방자한 음녀의 행위라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약한지 31:네가 누각을 모든 길 어귀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아니하도다
제가 공무원으로 출근하였을때 저는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사람은 훤칠하고 잘생긴외모에 낙천적인 사람이었지만
하지만 제가 공무원이 되고 몇가지 보수 공사를 거쳐 백조가 되고 보니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되었고(같은 직장 직원들은 물론 업무 연계상 오는 서울대 영문과 출신의 안ㅇ부 직원의 청혼 미국시민권자 청년의 데이트 신청이런 난리 속에서 그사람은 너무도 형편없어 보였고
저는 드디어 7급 공무원 시험 준비중인 직원과 사귀며 그사람에게 헤처질것을 통보했고 나를 너무도 사랑했던 그는 엄마를 찾아가 결혼시켜달라고 그러지 않으시면 나의 회사로 찾아가 우리 관계를 다 폭로하겠다고 ...
그리되면 나의 모든 죄와 수치가 온 세상에 드러나 직장에서 짤림은 물론 엄마마저 매점과 식당을 운영못하게 될까봐(극단적인 생각이었지만 우리는 그것들이 너무도 절실했기에 조그만 일에도 두려워짐)ㅇㅇ과 결혼하라고 니가 외로울때 너를 지켜준 사람이 누구냐고(나는 참 어이가 없어서~~내가 누구땜에 외롭고 힘들었는데~~어찌저리 뻔뻔한가며) 끝까지 버티는 나..
.어느날 저녁 우리집에서 엄마와 나와 그사람과 끝도 안나는 싱갱이가 벌어지고, 두사람으 한사코 결혼하라고 우리엄마는 벼라별 말을 다하며 살다가 헤어질수도 있는데 지금 왜그러냐며(이게 말이 됩니까)
도저히그 엄마의 집착을 꺾을수 없었던 저는 절망하여 집을 나갔고 엄마는 그사람에게 소리치며 빨리 저년을 데리고 모텔로 가라고 가서 꼼짝 못하게 하라고...저는 너무도 절망하여 그사람이 이끄는대로 모텔로 갔고...그후로 절망하며 결혼날짜를잡고 서둘러 식을 올렸습니다.
이제사 미운 오리에서 백조가 됐나 했는데 저의 과거는 제 발목을 잡아 내 남편은 일정한 직업이 없이 그 당시에는 친척네 건자재 가게 직원이었고, 동료들이 남편이 어느대학 나왔냐~~~어느회사 다니냐~~하면 얼굴이 새빨개지며 어찌할바를 몰라 하다가 차츰 차츰 거짓으로 남편을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하면 그러할 수록 저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저의 정신은 두렵고 불안하고 초조해져 갔습니다.
나는 또다시 초라한 나의 신분을 속이기 위해 더더욱 다이어트를 했고 더더욱 아름답게 치장해갔고 더더욱 착하고 아름다운 성품을 덧입혀가며 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신규직원 채용때마다 새로입사한 동료 남자 직원들은도 모두 제가 결혼했음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심지어는 책상닦고 쓰레기통 비우는것은 여직원이 하는것으로 불문율처럼 되어있음에도 그들은 책상도 닦고(온사무소 여직원들의 시샘을 받음)쓰레기통도 비우고 저의 한마디에 일사철리로 움직이고 악하고 음란한 제가 그렇게 조종을 했겠지요.
육체적 허기보다는 정신적 그리고 영적인 허기가 더 큰 저는 영리하게도 육체적 관계는 갖지 않았습니다.(어찌보면 하나님의 은혜)저는 공상속에서 모든것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현실에서는 고귀한 여신처럼 아름다운 천사처럼..폼만 잡고 있으면 되었습니다.
제가 그에게 플라토닉 러브 운운하자 모르지 않았을 그사람은 더이상 대화를 하고싶어하지 않았습니다.(참 저는갖은 주접을 다 떨고 다녔습니다)
31네가 누각을 모든 길 어귀에 건축하며 높은 대를 모든 거리에 쌓고도 값을 싫어하니 창기 같지도 아니하도다
네 자존심이 강한 저는, 교만한 저는 절대로절대로 창기가 될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내가 주는 기쁨에 값을 주기를 원하면 저는 강하게 거부하고 오히려 제가 더 밥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며 그렇게 했습니다..그래야 나의 값이 더 올라가는 것을 알았고 형이 하학적 유희가 아닌 형이 상학적 유희를 즐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사 그것은 생명을 유지하려고 몸을 파는 창기보다 더더욱 더럽고 교만한 그것을 무어라 표현 할까요 ...고급창기...나는 먹고 살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고....차원높은 비너스의 고상한 사랑을 추구하는 것이라고....(뭐라 표현을 못하겠음)쨌든 사단의 왕인 루시퍼적인 이세상것이 아닌것같은 드높은 이상과 사랑을 추구하고 있었음..나 자신이 우상이 되어 사단과 손을 잡았음....
먹고살만한데도 화덕같이 데워진 욕구를 주체못해 몸부림치는 고급창기와 다를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32: 그 남편 대신에 다른 남자들과 내통하여 간음하는 아내로다 33:사람들은 모든 창기에게 선물을 주거늘 오직 너는 네 모든 정든 자에게 선물을 주며 값을 주어서 사방에서 와서 너와 행음하게 하니 34:네 음란함이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함은 행음하려고 너를 따르는 자가 없음이며 또 네가 값을 받지 아니하고 도리어 값을 줌이라 그런즉 다른 여인과 같지 아니하니라
그런 요란한 시절을 거처 저는 아이를 낳고 다이어트에 집착하다 뚱녀가 되었고 뚱뚱할때는 한없이 초라해지고 낮아지다가(우울증) 또 요행히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그동안 못했던 갖은 치장으로 또 뭇 남성들의 비호를 받다가(조증)
집에서는 거지같은 남편때문에 괴롭고 그래서 싸우고 아이는 불화한 우리땜에 우울증에 갖은 병에 들어가고, 교통사고보험을 들고는 남편이 죽기를 바라고...그후의 일을 상상속에서 다른 남성과의 행음으로 즐기고(혼자 아주 영화를찍어요 잠도 안자고, 왜 내게는 이런 재주가 있는것인지요...이 무슨 난감한 악의 소산이란 말입니까)
이러한 저를 주님이 제나이 33세때 만나 주셨습니다. 그후로도 그러한 심리와 행각은많이 남아 있었지만 많이 깨끗게 해주셔서 제가 90jkg뭄무게에 화장도 안하고 옷도 안사입고 거지같은 모습으로 관공서를 씩씩하게 다닐정도로 저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나라 나이로 46세 내년이면 47세 지천명이 다가오니 더더욱 주님앞에 가난하고 거룩한 모습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예수님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