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6:1-14)
-선택받기 전 이스라엘의 상태
1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예루살렘으로 그 가증한 일을 알게 하여 3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사람이라 4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나니 5아무도 너를 돌보아 이 중에 한 가지라도 네게 행하여 너를 불쌍히 여긴 자가 없었으므로 네가 나던 날에 네 몸이 천하게 여겨져 네가 들에 버려졌느라
-내아버지는 믿음이 좋으신 분이었습니다. 서울의 숭실고등학교다닐때 6.25전쟁이 나자 학교를 마칠 수 없었고 전쟁이 끝나자 피폐한 땅에서 전쟁의 휴유증으로 신음하는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전라도로 내려가셔서 한 교회에 적을 두고 신학은 하지 않았지만 전도사 신분으로 이웃을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저희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전쟁중, 대여섯살먹었을때 아버지를 잃고 모친과 여동생 그리고 유복자인 남동생과 살아 남게 되었습니다.
그와중에 여동생 마저 병으로 죽었고 성정이 모질고 괴팍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외할머니는 우상숭배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던 분이었는데(늘 극단에 치우치는 성격) 예수를 믿게 되어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고 신학을 하셔서 전도사가 되어 전라도 방방곡곡을 누비며 전도사 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모나고 별난성품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충정을 받으셔서 어려운 시절에 많은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도 하셨습니다.
그 못된 성정과 아름다운 모습이 외할머니와 똑같은 어머니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자라며 공부도 곧잘하고 나중에는 교회 아이들도 가르치기도 했지만...이상이 높아 고상한 왜식하는 신앙과 머리가 좋아 교사도 하며 아리따운 자태로 복되게 잘사는듯 보였지만, 속으로는 예수를 믿는다며 자신을 버린 어머니(또 그어머니와 함께 살때는 철도 안든 아이를 그 추운 새벽에 깨워 새벽기도에 가야 한다며 모질게 채찍질하셧고, 말 한마디라도 내가 너희들때문에 사는줄 아느냐! 예수때문에 산다!며 포악질을 하셨다함)에 대한 원망과.높은 이상에 미치지 못한 고아와 같은 헐벗고 굶주리고 대우받지 못하고 천히여기는 근본적 환경(고아원)에 좌절과 상처가 쌓여가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에게 어느날 짠 하고 나타난 아버지는 훤칠한 외모와 우아한 이상 신실한 신앙을 갖춘 서울에서온 백마탄 왕자님이었고,
아버지 눈에는 비록 고아원에서 살고 있으나 너무도 아리땁고 영리한 처녀(게다가 우리어머니는 섹시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나라 표현으로는 색기가 있다고 해야하나...그러한것이 아리따움과 영리함과 청순함에 덧입혀지면 얼마나 많은 악한 파장을 일으키는지 우리는 이제 속지 않습니다.더욱더 악하고 음란해질뿐입니다.) 게다가 어머니도 전도사님이라니 이만한 배필이 없다고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젊은 두분은 자신들의 모든 자산으로 서로를 유혹하고 결혼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저와 두살 터울인 여동생이 태어나기도 전이니 정말 갓난애기때 기억인데, 아버지는 감색양복에 붉은빛도는 넥타이를 하고계셨고 어머니는 눈부신 하얀색 한복을 즐겨 입으셨습니다. 젊은 두분은 곱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늘 허름한 한복에 흙을 묻히며 일하는 시골 사람들을 예배와 하늘나라로 이끄시는 천사와 같은 모습이셨습니다.(얼마나 영적으로 교만해져 갔을지 지금은 소름이 끼칩니다. 제안에도 이러한 모습으로 살고싶은 욕망이 가득합니다)
아버지는 저를 너무도 이뻐해주셨고 어머니는 사랑을 못받고 자라신데다 성정마저도 이기적이고 미성숙해서 늘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극심한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빠져 살았습니다. 여동생이 태어나고 여러가지 사정상 아버지는 전라도 생활을 청산하시고 식솔들을 이끌고 서울 대신동 본가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런 후. 저희어머니의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여지없이 깨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친가는 할아버지께서 왜정때 경찰을 하시다가(이부분도 어머니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었을겁니다) 퇴직하신 상태였고(백수) 할머니께서 공사 현장으로 노가다 일을 다니시며 남편과 아버지의 4명의 여동생을 부양하는 궁핍한 형편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전도사님으로 대접받고 많은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고 도움을 주던 아버지가 서울에서는 고등학교도 졸업못한 실업자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식욕심이 많은 친할머니는 노가다 일을 하시면서도 아들 딸들에게 지극정성이었고 말많고 탈많고 텃세 심한 시누이들....자신의 어머니에게는 그런사랑을 받아 보지도 못했고 고아원에서 천대받고 자란 어머니가 얼마나 소외감을 느꼈을지...그녀의 어려움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시자 고모들은 이시절의 어머니를 제게 자주 고발하였습니다. 여우같은 엄마가 시골에서 우리 아버지를 홀렸고 둘째고모가 오빠 밥해주러 와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하기도 전에 저녁에도 아버지 방에서 안 나갔다는둥, 언제나 보면 여염집 여자같지 않고 화류계여자 같았고(제가 기억하는 어머니도 네명의 고모들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그 고모들이 특별히 처지는 외모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아름답고 우아한 모습이었습니다.)
결혼하고서는 핏덩어리 저를 안고 고아원에 갈래 고아원에 갈래 얼르고 날마다 아버지와 싸우고 연탄부찌갱이를 들고 들어가 아버지를 때리고 초등6학년 막내고모와 싸우고 젖먹이 저를 두고(제가 태어나 얼마 안되어서는 몸조리겸 본가생활도 하셨던듯 합니다)가출을 해서 제가 배고픔에 울다울다 지쳐 옆집 아주머니 젖을 먹게 됐는데 어린것이 젖을 먹으며 좋아서 다리를 통통 튕기는 모습을 보겨 기가 막혔다고)가출을 하는둥 이루 말할 수 없는 만행을 저는 할머니와 고모들에게 날마다 밤마다 들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시절 뚜렷한 기억이 있습니다. 어느날 새벽 방두칸중 한칸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고모3명과 저는자고 여동생과 부모님은 작은방을 쓰셨는데, 일찍 잠에서 깬 어느날 새벽 할머니께서 "쪼꼬만아""쪼꼬만아" 애정가득담아 막내고모(중학생)를 깨우셨고(아마도 조그만 아이야, 막둥아의 애칭인듯)막내고모가 일어나자 여동생을 등에 업은 엄마는 행주치마를 두르고 식모처럼 쪼꼬만이 막내고모의 밥상을 들고 들어오셨습니다.
막내고모는 공주처럼 그밥상을 거만하게 받았고 할머니의 극진한보살핌(김치를 찢어주는등)을 받으며 밥을 먹었습니다. 그 귀한 계란을 먹고, 저는 무슨 드라마를 보듯 한쪽 귀퉁이에 앉아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막내고모가 저를 힐끗 보더니 멸시하는 표정을 팍 지었습니다.(너무도 도도한) 순간 저는 식모의 딸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우리끼리 밥을 먹을때 저는 어머니께 나를 쪼고만아라고 불러 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거절하셨습니다. 저는 그 쪼고만이가 너무도 부러웠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아버지는 어머니와 저희 삼남매를 데리고 마포구 중동에있는 수단좋은 큰고모부가 운영하는 공장으로 이사했고(큰고모는 북가좌동에 집이 따로 있어 살림집이 비어있었음)아버지는 신학을 하고 싶었지만 처자식과 생계가 막막했고 이미 신앙을 버린 어머니와는 뜻이 맞지 않아 방황하셨습니다.
이상만 높고 갖은것 없는 두분은 날마다 싸우셨고 판자촌이 득시글한 동네였지만 기와집에서 때깔좋은 부모와 사는 저는 왠지 나는 그곳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우월감을 갖고 자랐습니다.아버지는 철도청에 기차청소부일을 구하셨고(고등학교 졸업장이 없고 신학외에는 달리 하고싶은일이 없으셨고 공부할 돈도 없으셨음으로)
엄마는 고모들 말에 의하면 허구헌날 동네 아줌마들과 놀러다니고 화투나 치다가(애들 밥도 안해주고, 엄마 말로는 광주리 생선장사 과일장사 안해본일이 없다고 하시고(둘다 맞는말))아모레화장품 외판원이 되셔서 더더욱 밖으로 나돌아 다니셨습니다. 예닐곱살 제게 두살어린 여동생과 돌이 갖지난 남동생을 맡겨놓고 집에 먹을것도 하나도 없이 해놓고...그러면서도 두분은 집안 남는 땅에(공장은 북가좌동으로 들어감) 푸성귀밭이 아닌 화단을 가꾸셨습니다.
어머니는 화장품대리점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인기가 많으셨고, 급기야 어떤 사람의 꼬임에 빠져 다방 마담이 되었습니다.(왜 젊고 이쁜사람이 그런 험한일을 하냐며 유혹) 그러다 어머니는 땅부자 유지를 유혹하여 바람이 나고 저희 삼남매는 친가에 버려졌습니다.어머니가 바람이 나던날 저는 할머니와 고모들의 천대와 구박에 던지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보호와 양육: 아브라함 언약
6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고 7내가 너를 들의 풀 같이 많게 하였더니 네가 크게 자라고 심히 아름다우며 유방이 뚜렷하고 네 머리털이 자랐으나 네가 여전히 벌거벗은 알몸이더라
-그리고 그 시절을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피가 뚝뚝 듣는 듯 마르지 않는 상처, 점점 퍼지고 깊어만 가는 상처, 나를 늘 우울하게 하고 방황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고 공포에 떨게하고 작은 일에도 뒤집어지게 하는 고통.
저는 초등학교 3학년때 도벽이 생겼습니다. 어느날 세째고모와 결혼할 사람이 온다며 고모는 늘 걸리적 거리는 저와 제 동생들에게 동전을 쥐어주며 만화가게에 가서 어두워지면 오라고 했습니다. TV도 없고 동화책이라는것이 있는줄도 모르던때 늘 옆방 아주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 감자며 옥수수를 삶아주는것을 구경하며(그리 빤히 바라보아도 자신의 아들과 나이가 같은 어린 막내동생에게도 그아주머니는 한조각 나눠주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밥이며 간식을 해먹임), 낮에는 늘 집에서 역정을 부리시는 할아버지, 밤이면 돌아와 나의 만행을 주고받으며 구박하시는 할머니와 고모들과 살던 저는 그 만화방이 신천지 였습니다.
세상에나 세상에나 이렇게 재미있고 신나는 세상이 있었다니, 세상에 이런 (즐거울)락이 있다니, 그때부터 저는 없는 집안의 돈이란 돈은 다 훔쳐내서 만화방으로 달려 갔습니다. 처음 돈을 훔쳐 가출하던날이 기억납니다. 그날 낮에 아버지가 동생 신발을 사야겠다며 오백원짜리 지폐(그당시 운동화가 200원정도이니 꽤 큰돈)를 함부로 두셨습니다. 저는 그 돈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며 갈등하고 갈등하다 아버지가 오수에 드신 틈을 타 그 돈을 들고 만화방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실컷 만화책을 읽으며 군것질을 했습니다.
동네 골목에 튀김집이 생겨 날마다 구경하러 갔는데 어느날 주인이 제일 작고 못난 튀김하나를 쥐어주며 다시는 오지말라고 한 튀김집에도 가서 튀김도 배가 터지도록 먹었습니다. 불안하긴 했지만 만화책에 빠져 재미있었고, 만화방 문을 닫자 도저히 집에 갈 수 없어 신촌역에 갔습니다. 거기서 밤을 지낼 요량이었나 봅니다.늦은밤 할머니가 찾아 오셨고, 집에 들어가 맞았습니다. 다음날도 맞았습니다.(아버지는 제가 동생 신발을 사러간줄 아셨고, 이상한 신발을 사오면 어쩌나 걱정하셨다함. 그리고 아버지 요량에 그 큰돈을 다 쓰지 않았을거라 판단하고 남은 돈이라도 찾아 동생 신발을 사주고 싶으셨음)물론 돈은 사백원가까이 남았습니다. 그돈은 이웃집과 마주한 담벼락 사이 깊숙한 곳에 숨겨 놓았습니다. 제게는그 돈이 천대받고 무시받고 헐벗고 굶주리고 자존심만 상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생명줄이었으니까요..온갖 환상과 꿈이 가득한 만화방, 쥐포와 과자와 빵과 떡볶이와 튀김이 가득한 거리를 저는 죽어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날마다 여동생을 패서 코피를 쏟게 하고(할아버지와 고모들이 이아이만 이뻐함), 노동일을 하시는 할머니가 닭발을 좋아하신다며 사오시면 허기진 나는 그 닭발을 으적으적 씹어먹었고 할머니가 대견한 마음에 ㅇㅇ이도 나닮아 닭박을 좋아하네 그러면 닭고기가 더 맛있는데 없으니깐 먹는거지 하면 고모들이 기함하여 이못된것 이 지 에미 닮아 아귀같은것 하며 달려들고 나는 더더욱 못되 갔고 더더욱 구박을 받으며 더더욱 돈을 훔쳐내어 만화방에 갔고 우울과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갔다.
어느날밤 할머니는 종이에 무언가를 둘둘말아 퇴근하셨고 이칼로 내 배를 째면 내가 그동안 훔쳐간 돈이 다 나온다며 어느집 애도 그랬는데 배를 째고 돈을 다 뺀 후론 도둑질을 안하게 됐다며 덤비셨고 나는 필사적으로 울며 불며 할머니 팔을 잡으며 뿌리치며 몸부림치며 울부짖었다. 나는 정말 내가 도살장의 개 돼지만도 못한 가치없는 존재라는 걸 뼈속 깊이 깨달았다.
그럼에도 도벽이 그치지 않아 나는 어느공장 경비일을 나가시느라 오후 여섯시쯤 출근하시는 아버지를 피해 학교가 파하면 신촌역과 시장, 모르는 동네 놀이터에서 까마중을 따먹으며 아버지를 피해 방황했고 집에 도착해서 아버지가 없는것을 확인하기 전까지의 시간의 극심한 공포와 불안의 시간이었다.(나는 너무 예민하고 충동성이 강하고, 그래서 못된 아이였고 할머니의 말대로 지 에미 닮아서 그런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나를 잡기 위해 내가 학교에 가기전 이른 아침에 퇴근하셨고 나는 밥을 먹던중 놀라 숟가락을 팽개치고 일어나 아버지를 향해 "어서 옵셔"라고 비굴한 인사를 나도 모르게 했다. 밥을 다 먹자(정말 밥맛이 흙맛이었지만 안먹을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내 옷을 벗기기 시작하셨다.
나는 또 필사적으로 방어했고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잘못했다고 짐승처럼 울부짖었고, 옷은 찢겨져 나갔다. 한차례 폭풍우가지난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밖에 돌아다니는 여자아이들을 깡패들이 잡아다가 몸에다 못된짓을 하고 담뱃불로 지지고 그런다는 말을 들어서...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그말이 맞을수도 있다. 그 방에는 할아버지와 세째 네째 두고모 여동생과 남동생도 함께 있었으니까....하지만 나는 마치 간음하다 현장에서 들켜 벌거벗겨진 몸으로 동네 한복판에 세워져 돌에 맞아 죽기를 기다리는 창기의 처절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그 어린 나이(초3)에 느껴야 했다. 나는 인간이기에 개돼지보다 못한 짐승이었고, 나는 철이 없는 어린 아이었기에 창기보다도 더 더럽고 하찮은 벌레만도 못한 목숨이었다.
학창시절12년 도시락을 가져간날은 합해서 채 한달도 안되었고(배고픔보다 수치심이 더 컸다) 준비물도 늘 못챙겨가서 학교가는것이 고난중에 고난이었다. 중학교때는 선생님이 시간시간마다 바뀌고 준비물도 다 달라 매초매초마다 불안과 초조의 연속이었다. 눈이 나쁜데도 키가 커서 늘 뒤에 앉아 (돈없는 아버지께 안경을 사달란 말도 관심없는 선생들께 앞자리에 앉혀달라고하는 주변머리도 없었다)
실내화는 커녕 양말도 없어 시뻘건 맨발로 다니고, 옆집 아주머니 양말을 훔쳐신어 아버지께 매맞고, 그런 아버지께 속으로 니가 양말을 안사주니 그러지라며 분노와 원망을 키워갔다. 교대할 팬티도 없고 샴프가 없다며 머리를 한달에 한번 감을까말까 하고 목욕도 일년에 한두번 하고(여름에나) 나는 아마 우울증이 깊었었던것 같다.
그나마 숨쉴 수 있었던건 도서관의 많은 책과 훔쳐낸 돈으로 보았던 만화책이 유일한 구원이었다. 천사처럼 주님을 섬기고 싶었던 왜식하는 마음에 알량한 실력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양 아버지(남동생이 교통사고가 나자 어려운 중에서도 신학을 시작하심) 개척교회 반주를 했고(제대로 배운적이 없어 화음도 하나도 안맞았지만.워낙 낡은 피아노라 불협화음을 커버해주었음),속은 아버지와 나의 양육자들(고모와 할머니) 중1때 들어온 새어머니에 대한 복수의 칼을 갈고 살았다.(어마어마한 부잣집 귀부인이 되어 도움을 구하는 초라한 그들에게 침을 뱉는것ㅎㅎㅎ)
학교에서는 나를 경멸하여 괴롭히지도 않는 친구들과 선생님들 덕분에 유령처럼 조용히 살았고 모든것을 포기했지만 간간히 찾아오는 소풍과 운동회는 나를 한없이 심란하게 했다. 제대로된 소풍도시락과 운동회 준비물을 갖출 수 없음에....육학년때 체육복이 없었다..돈없는 아버지에게 사달랄수가 없어 운동회 매스게임때 혼자 사복을 입었다.(내게 냄새가 난다며 늘 때리고 야단치던 대머리 중년의 담임선생님도 그날만은 내게 아무 말도 못하고 외면하셨다) 큰고모집에 세들어 살때였는데(그곳에서 아버지는 개척교회를 여셨다) 사촌동생도 2학년(내 막내 남동생과 같다)이어서 운동회 참관을 했는데 내모습을 보고 기함을 하셨단다. 할머니께 와서 이르며 정말 자기가 더 챙피했다고...지에미가 없어서 그런다고 그런다고..나는 이런종류의 잔소리를 날마다 밤마다 들어야 했다..나의 모든 잘못과 나의 모든 악함은 지에미 닮아서이고 지에미가 없어서라고..지에미가 없어서...지에미가 없어서.....나는 속으로 악을 쓴다..아니라고...니아들이 무능해서 니오라비가 못나서라고...당신이 챙피하면 나보다더 챙피할까보냐고.....수백명의 아이들이 모두 하얀체육복 하얀 실내화를 입고있는 와중에 혼자 허름한 사복을 입고 서있는 나보다 더 챙피하냐고...그때 악다구니라도 한번 써 볼걸....
아버지가 개척교회를 여시자 신학생들이 여기저기서 찾아 왔고(개척교회가 그리 흔하지 않던 70년대후반) 할머니 여동생 아들의 아들 왕ㅇㅇ이라는 오빠도 왔다. 고3인데 C CC에 나간다고 했다. 고모들과도 친하다.어느날은 고모가 나를 좀 혼내주라고 해서 그 오빠에게도 맞았다. 그리고 성추행도 당했다. 교회와 붙은 작은방(교육관구실 한곳)에서 내여동생과 그오빠와 얘기하다 자는데 누군가 몸을 더듬었다. 옷을 들추려해서 싫은 내색을 하자 끽끽끽 웃으며 멈추었다. 다음날 얼굴을 보았는데 너무도 믿음좋고 거룩한 주일학교선생이 다시 되어 있었다(그당시엔 고등학생도 교사를 함)나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그리고 교회의 어느 여학생이 확실히 당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대입구 대신동에 살던 초등학교 저학년때 소풍이 다가오자 나는 도시락때문에 너무도 고민이 되었다. 학교에서는 도시락이 없어도 자리를 피해버리면 돼지만, 그리고 아이들이 싸오는 도시락도 거기서 거기지만, 소풍때는 나의 초라한 모습을 도무지 숨길데가 없으니...고민고민하던중 이대에 배나무가 많았던게 떠올랐다. 지금이 가을이니 배가 주렁주렁 열렸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환상처럼 황금배와 빨간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이대교정이 떠올랐다..나는 안심이 되었고.소풍전날 경비를 피해 이대에 몰래 숨어 들었는데, 빽빽한 배나무 끄트머리에는 조그맣고 새파란 돌배만이 햇살을 머금고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그 돌배나무 아래에서의 허탈감을....절망감을...당신은 아십니까.....눈에서 소리없이 피가 흘러 내렸다.
너무도 생생한 그날들의 추억..아니 기억들..그래도 새어머니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나았다. 그리고 그 새어머니와 머리끄뎅이를 잡고 싸우고 나와 친엄마가 얻어준 헛간같은 방, 자식이 4명인 남자를 유혹해 첩같은 위치에서 남자가 차려준 다방을 하며 고스톱과 음란에 빠져 지내던 어머니는 돈도 없었고 자식들을 돌볼 모성애도 자신의 엄마 닮아 없었다. 재래식 화장실과 붙은 그방에 살며 동생들과 굶으며 먹으며 ...그 외로움과 허기에 몸부림조차도 못치고 넋을 빼고 살던 시절들, 쌀과 연탄이 떨어지기를 여러번 배고픈것보다 겨울에 추운것이 더 고통스럽다는걸 뼈저리게 깨달은 어느날 포장마차에서 처음만난 남자와 자고 삼만원을 얻어 연탄을 샀다.
어느날 남동생과 새엄마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사는 동네를 지나던 중 그래도 따뜻하게 대해주던 큰이모 생각에 그집에 들어갔는데 마침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이복동생들이 와 있었다. 잘지내는듯 웃으며 대했고 끼니를 못때웠음은 물론 연탄불이 꺼져 번개탄 살돈 500원이 절실했지만. 차마 내아버지에게도 그얘기를 할 수가 없었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그집을 웃으며 나왔지만 나는 다시는 아버지를 만날날이 없을 거라며 이를 갈았다. 일년여 만에 만난 자식들에게 지나가는 안부만 묻고 수중에 용돈 한푼 쥐어주기는 커녕 밥도 한그릇 안먹여 보낸 그런 사람이 내 부모였다.
-그때는 여호와께서 내 곁을 지나시며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나를 보고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살아있으라" 내부모의 죄가 많아 내 죄가 많아 그때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분이 내 곁에 계심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내힘으로 살기위해 피투성이로 살다 살다 그 못난 아버지와 그 못난 외할머니의 기도로 나는 그분의 신부가 되어 나의 고난과 고통의 세월이 그분의 아름다운. 영광스러운 신부과 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할렐루야 모든 영광 하나님께 모든감사 날위해 십자가 지신 내 주님께 _아멘_
-하나님의 신부가 된 이스라엘: 시내산 언약
-8 내가 네 곁으로 지나며 보니 네 때가 사랑을 할 만한 때라 내 옷으로 너를 덮어 벌거벗은 것을 가리고 네게 맹세하고 언약하여 너를 내게 속하게 하였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9 내가 물로 네 피를 씻어 없애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10 수 놓은 옷을 입히고 물돼지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로 두르고 모시로 덧입히고 11 패물을 채우고 팔고리를 손목에 끼우고 목걸이를 목에 걸고 12 코고리를 코에 달고 귀고리를 귀에 달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웠나니 13 이와 같이 네가 금, 은으로 장식하고 가는 베와 모시와 수 놓은 것을 입으며 또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음으로 극히 곱고 형통하여 왕후의 지위에 올랐느니라 14 네 화려함으로 말미암아 네 명성이 이방인 중에 퍼#51275;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_아멘_
초등학교 5학년때 엄마와 바람이 난 상대방 부인의 언니와 동생들이 집에 쳐들어 왔고 아버지와 할아버지 어린 우리들 앞에서 그들은 난동을 부렸습니다. 엄마의 바람을 처음 알게된 할아버지는 기가 막혀 하셨고 아버지가 그 여자들에게 화를 내시자 그 여자들은 니가 못났으니 니 여편네가 그러지 하며 아버지를 모욕하셨습니다. 어린 제게도 아버지의 충격이 얼마나 크실까 무너지는 가슴으로 아버지를 쳐다 보니 아버지는 그 와중에 제게 웃어 보이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버지는 제게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으로 인식이 되었고 부모가 저를 보호해주고 양육해주어아 하는것이 아니고 내가 불쌍한 아버지를 보호해 주고 도와 주어어야 한다는 비정상적인 생각이 자리잡아 일찍 철이 들어버렸습니다. 아버지의 그 미소는 제게 비수가 되어 박혔고 저는 아버지에게 저의 필요에 대해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아버지는 제게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연민의 되상이 되어 버렸고 제 내면에는 성장에 꼭 필요한 애정과 지지 물질적 결핍으로 인해 성장하지 못한 성인아이의 모습이 깊이 자리잡고 있어 저의 삶을 휘저을때가 많습니다. 자유분방하고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저는 항상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꿈을 꾸며 살았고, 어려운 환경중에 만난 남편은 나의 꿈과 이상을 채워주지 못했기에 늘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2009년 간증문중에)
모든 아픔과 모든 고통과 모든 수치와 모든 정죄와 모든 열등감과 모든 모멸감과 모든 자괴감과 모든 절망과 모든 원망과 모든 원통함과 모든 죄를 씻기시고 빛난 면류관 거룩한 흰옷을 입혀주실 내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못된저를 키워주시고 기도해주신 김소기 아버지 감사합니다.당신의 사랑때문에 오늘 내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그리고 내 할머니와 고모들 할아버지 그리고 새어머니. 이분들은 모두 선량하신 분들입니다. 제가 악하고 못되서 상처만 기억하고 잘해준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곧 잊어버린듯 합니다. 하나님 모두 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