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헤어진 가족들을 잊어버리는 연습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집사님의 아픈 아들을 찾아가지 않는 적용을 묵상하면서...
애들을 생각하면 전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가시지 않아서
애들을 객관화 시키는 것은 너무 힘든 것 같아서
잊어버리는 것이 편할 것 같아서
기억속에서 희미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제 말씀은 헤어진 가족들이 예루살렘 거민 같아서 안타깝더니
오늘은 말씀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자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어제는 흩어진 열방가운데 잠간 성소가 되신 사랑을 주시더니
오늘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끝까지 놓지 못하시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못볼까봐 목전에서 때에 따라서 구체적이고 실체적으로 보이라고 하십니다.
보여서도 안되니
예조라고 징조라고 말하여 듣게 하십니다.
혹시 그들중에 생각이 있는 자가 있기를 바라시면서
그러나 망하기 전까지 못깨달으며
죽기전까지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모르는 것이 사람입니다.
나는 어떻게 반응했었는지,
가정을 주시고 아내와 딸들을 주시고
모든 것을 풍요롭게 하여주시니
나의 하나님에 대한 배신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백성처럼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많은 사건이 와도 내 악과 혈기로 지나갔습니다.
그 많은 징조와 예조를 무시했습니다.
이렇게 망하고 나니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멸망에 이르기전에 생각하고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지금 남은 사람이 되어 가증스런 지난날을 자백하고 있습니다.
웬 은혠가 싶습니다.
그런데 헤어진 가족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저들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상태가 아닌지,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 때까지 심판이 임하는데,
자백하고 남은자로 돌아와야 하는데...
때로는 나를 들어 옮겨주시면 좋겠다는 편한 생각도 해보지만
나는 나의 자존심과 원망, 미움 때문에 애쓰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만 고고하고 우아하게 구원받은 자처럼 살았습니다.
목을 내놓고 기도하지도 못했습니다.
들리는 자처럼 보이는 자처럼 살았는데
진정 내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자였습니다.
나의 보고들은 것을
사로잡힌 자들에게 모든 것을 고하라고 하셨는데
나의 모든 가증한 일을 자백하라고 하시는데
나를 내려놓지 못하고
구원보다 나의 자존심을 미움을 원망을 더 높이 놓았습니다.
주님.
말씀이 들린다고 읽혀진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제가 진정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자였습니다.
구원의 참의미를 모르고
자존심과 사적인 감정 때문에
보이고 들린 것을 고하지 못하고
나의 가증스러움을 자백하지 못하는
이죄인이 바로 지금도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래도 주님의 사랑으로 은혜로
살얼음을 밟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수정처럼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고하고 자백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