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 통재라, 애재라. 아프고도 슬픕니다. 나의 이야기가 그대로 쓰여있어 아프고 나의 지난날이 슬픕니다. 나의 죄악이 밝히 드러나는 말씀이고 현재의 이유를 알게 하시는 말씀이니 내게는 권능의 말씀이 됩니다. 그발강가나 들(광야)이나 예루살렘에서나 하나님은 여전하시고 동일하신데 나는 이곳 저곳에서 악한 모습으로 장소에 맞게 죄악을 저지르고 다녔습니다. 나는 어디서나 죄짓는 수도꼭지가 맞습니다. 생각하는 것이 죄이고 움직이는 것이 죄입니다.
나의 혈기부렸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나는 온유와는 거리가 아주 먼 혈기충만한 사람입니다. 집에서는 섬김이 없었고 혈기부리는 것이 권위인 줄 알았습니다. 섬기려고도 해보았지만 예수가 없는 내의지로는 금방 한계가 왔고 위선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치졸한 생각으로 혈기를 부려서 내존재를 확인했고 식구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권위와 자존심에 대한 우상이 있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환자수가 줄어 수익이 감소하면 직원들을 모아 닥달을 했습니다. 특히 불친절한 직원이나 나를 무시하는듯한 말과 행동을 한 직원에게는 가차없이 소리지르며 혈기를 부렸습니다. 나의 재물에 대한 우상이 있었습니다. 나의 젊었을때도 그랬습니다. 어머니에게 누나에게 가족들에게 나는 혈기의 화신이었습니다.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더 그랬습니다. 나의 언어는 남을 죽이는 화살이었습니다. 지금도 혈기는 죽지 않았습니다. 숨어있다가 나도 모르게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후회스럽고 한탄스럽습니다.
나의 은밀한 죄는 헤아릴 수도 기억할 수도 없이 많습니다. 주일예배를 일년에 한두번 빠지고 가끔씩 새벽예배도 나가는 나의 모습은 신실해 보였고 나도 내가 믿음이 있는 사람인 줄알고 속아서 살았습니다. 오늘 말씀은 나의 속사람의 모습에 딱 맞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모르게 담에 구멍을 뚫어놓고 죄된 세상을 즐기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온갖 가증하고 악하고, 지금은 뒤도 돌아보기 싫은 어두운 모습이었습니다. 내안에서 하나님이 떠난지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계신줄로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였고, 이런것은 하나님이 모르실 것이다라는 어리석은 생각과 함께 나의 이익과 죄악을 마음껏 즐기고 범하였습니다. 내안에 하나님이 없으니 내가 하나님이었고 나의 되어지는 모든일에 속고 속이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무엇이 죄이고 무엇이 악인지 몰랐습니다. 각종 벌레와 가증스런 짐승의 모습이었습니다. 고백하면서도 완전히 돌아서지 못하는 나를 봅니다. 뭔가 개운하지 못합니다. 내 수준입니다.
지금의 환경은 나에게 과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로 나의 죄를 수천분의 일로 감하여 주셔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분노로 갚으시겠다고, 아껴보지도 긍휼도 베풀지 않으시겠다고, 부르짖어도 듣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는데, 이 죄인은 지금처럼 살게 하시고 이렇게 다루어 가시는 것이 편애라는 생각에...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