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아들이 멀쩡히 서 있는 병을 건드려서 깼다.
놀래서 무슨 일이냐고 묻자 대답을 못한다.
누워 있는데 강아지가 와서 오지 말라고 한다는게 병을 깨뜨리고 그 안에 있던 것들이 다 쏟아졌다.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야단을 칠 필요가 없었다.
어떤 때는 반성하지 않고 반항하고 우길 때가 있다.
이 때에는 엄하게 야단을 쳐야 한다.
그리고 인정하지 않을 때에는 소리를 지르고 크게 야단을 쳐야 조용해진다.
인간의 잘못은 행위의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알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크게 야단을 치셔야지만 그제서야 내가 누구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신차리고 알게된다.
인간의 의로움은 의로운 행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는데 있다.
더 많이 깨닫는 자가 더 의로운자....
살인에 강도에 부정을 저지를 사람들도 다 나름의 불가피한 이유가 있고 합리화가 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저지르고 행위로 나오는 것이다.
준법정신이 투철하고 직장과 가정에서 모범적인 시민도 사회규율에 욕망이 억제되어 있을 뿐
그 안에는 부패한 것이 가득하지만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환경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범법자와 고상한 지위의 사람의 의로운 정도의 정도의 차이는
비행기에서 본 단층건물과 63빌딩의 차이일 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의로울 수가 없기 때문에..
문득 죄와 아집으로 똘똘 뭉친 내가
아들을 어떻게 올바로 양육할 수 있을까 두려워진다.
아니 이 아들을 어떻게 키울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 아들을 키우시는데 내가 어떻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를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하며 내 생각, 내 감정, 내 의지, 내 습관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니며
얼마나 하나님앞에서 악한 것인가를 깨닫는다.
이렇게 조금씩 깨달아 가는 것이 또 오늘 하루의 은혜인 것 같다.
하루가 저룰어 가고 하루가 다 가기 전에 말씀을 묵상하고 주께서 또 가르쳐주시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