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고난이 축복입니까? 왜 고난과 심판 앞에서만 주를 여호와인줄 알게 되는 것입니까? 나는 왜 산당을 없애지 못하고 우상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까?
요즘은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가 가슴이 떨릴 정도로 심히 두렵습니다. 축복의 말씀이고 구원을 위한 말씀인데 내가 두려운 것은 내안에 죄악이 창궐하기 때문입니다. 유다 왕들이 마지막까지 없애지 못하던 산당을 하나님께서는 오늘 제일먼저 치십니다. 내가 세상적으로 가장 귀하게 여기고 내려놓지 못했던 것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제일 먼저 손보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없애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나 곧 내가’ 멸하신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비참하고 처참하게 훼파되고 황페화되며 없어져야 하나님을 여호와인줄 알게된다고 하십니다. 이렇게 해야 알아들으니 사람이 참으로 무지하고 어리석기가 짝이 없습니다.
나의 산당은? 내가 버리지 못하고 없애지도 못하고 조금만 조금만 하며 합리화하며 붙잡고있는 산당은 무엇일까? 자식, 돈, 자존심, 미움, 원망, 정욕. 명예... 나를 유혹하는 힘은 많이 약하여 졌지만 아직도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입니다. 그 어느것도 주님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것들인데... 버리고 없애는 연습을 계속할 수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왜 바울처럼 살수없을까?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싶은 것이 많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그래도 말씀이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가 되니, 산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생 산당만 붙잡다가 죽을 뻔하였는데, 가정이 훼파되는 사건을 통하여 남은자로 피한자로 사로잡히게 하여 주셨습니다. 내가 세상과 놀아보려는 음란한 마음으로 주님을 떠났고 세상의 돈과 권력 명예를 우상으로 섬겨 하나님을 심히 근심케 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 주셨습니다. 나의 모든 가증한 악을 기억하여 한탄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진정으로 하나님만이 여호와인줄 알게 하셨으니 나의 환란이 헛된 것이 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하나님이 부르시는 ‘너’가 되어야 할텐데... 두려움에 손뼉치며 안타까움에 발을 구르며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을 말하는 너가 되어야 할텐데... 칼과 기근과 온역이 와서 망하기 전에 알아야한다고 전하는 너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배부르고 등따시면 나와 세상만 보이고 하나님은 잘 안보입니다. 보증금 천만원의 월세에 살때는 나의 곤고한과 갈급함이 나를 항상 일깨웠던 것 같은데 전세로 옮겨와 살다보니 그때의 황페함과 황무함은 희미해져 갑니다. 조금씩 더 가지면서 욕심이 올라오고 세상의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빈한데도 부한데도 처할줄 알아야 하는데 부한데 처할 줄을 모릅니다. 그래서 날마다 말씀으로 경고하시는 것같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연약한 나이기 때문에...
주님. 산과 작은산과 시내와 골짜기에 숨어있는 나의 산당을 찾아 없애기를 원합니다. 산당과 우상이 있던 자리에 칼과 기근과 온역으로 시체가 쌓이기 전에 내려놓고 버리기를 원합니다. 두 손 들고 주께 가오니 이 심판을 기억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제 환란이나 고난이나 환경이 두렵습니다.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이 여호와인줄 알고 가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말씀으로 깨닫고 고쳐가기를 원하오니 불쌍히 여겨주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