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유혹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작성자명 [최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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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1.04
갈 2 : 11 ~ 21
갈 2 :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 되었느니라
엊그제 자주가는 사우나가 수리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 갈까 하다가 내친김에
주변을 둘러보니까 헬쓰장, 수영장, 사우나, 찜질방, 보링장이 함께 있는곳이 있어서
그곳을 갔는데 들어가면서부터 각종시설이 나를 놀라게 했습니다.
신발장도 자동, 옷장도 자동, 특히 입구에 구두닦으라고 사람이 앉아있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남자는 머리와 구두가 단정해야 되겠기에 나는 영업현장에 입문하면서부터
출근하면 날마다 구두를 구두닦이에게 닦았는데 영적으로 철이 들면서부터^^는
직접 구두를 닦았습니다.
평상시에는 그냥 구두센타를 지나가면 됐는데 사우나를 가면 그들과 마주치게 되었고
그것도 약 ~ 간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런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서......
괜히 구두닦는 값을 번것같은 작은 만족이 있었습니다.
실내시설은 초현대식 이었지만 가격은 오히려 더 저렴하였고
사우나 목욕물도 19도, 39도, 50도 ...로 다양하고, 습식, 건식 사우나실에.. 폭포에
자동조절장치가 부착된 샤워기에.... 천장에서 물한방울 안떨어지고.....good 이었습니다.
그래서 단골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시대가 그렇습니다. 어떤 사업이든지 앞서가고, 편리하고, 가격경쟁력이 필수 입니다.
여기서 뒤떨어지면 수십억, 수백억을 들여서도 낙오하고 맙니다.
사우나를 마치고 휴게실로 나와서 시원한 식혜를 마시면서 보니까 찜질방으로 통하는
문이 보였습니다. 사우나식찜질방을 보니까 12 년전이 생각 났습니다.
내가 신학공부를 하던시절인데 나에게 직업프로포즈가 들어왔습니다. 나를 스카웃
하겠다는 회사는 내가 교보 10년 근무를 끝내고 첫사업을 광주에서 실패한후
서울로 올라와서 음반영업을 조직적으로 했는데 그때 업계톱을 했었고, 당시에 나에게
음반을 공급했던 센타사장이 새로운 사업에 진출 했는데 어려워지자 나를 수소문 했고,
나에게 제시된 조건은 스톡옵션으로 주식 10 % 와 년봉급여와 기사가 딸린 고급승용차
그리고 경영권이 보장된 대표이사 사장 자리였습니다.
그회사는 미국의 유명한 화장품을 독점 수입해서 한국시장에 공급을 했는데, 계약시
케어(얼굴)제품과 바디(몸)제품을 1:1로 계약을 해서 수입해 오다보니까
케어제품은 불티나게 잘 팔리는데 바디제품은 안 팔렸고, 바디제품은 계속 재고가
쌓였고 미국측은 한번 계약을 해서 생산라인을 가동했으므로 바꿀수 없는 참으로
난처한 지경에 빠졌고, 회사가 문을 닫을 지경까지 이르렀었습니다.
한국여성들이 얼굴만 신경을 쓰고 화장품을 찍어 바르고 몸은 대충 넘어간다는것을
그회사의 경영진들은 몰랐던것 입니다. 지금도 거의 마찬가지 일것 입니다^^
나는 사장으로 취임한후 필요한 직원들을 뽑고 올림픽공원 부근에다 거의 국내최초로
사우나식찜질방을 개장을 했고, 찜질방내에 여성 바디관리시스템을 도입을 했는데
그 이후 체인화를 시켜서 1 년도 언되어서 재고를 모두 처분해버렸고, 오히려 그뒤부터는
케어제품이 남아 돌아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회사의 오너는 순복음교회를 다니던 집사님부부 였는데 그때 나를 은인으로 대우
했었습니다. 그뒤 사업을 확장 하면서 새로 시작한 영어학습지를 개발해서
미국신학대학교 졸업생들을 네이티브스피커로 고용해서 한국의 영어시장을 석권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진행했는데 유학출신 신입사원만 150 명을 뽑고 교육시키고
현장에 배치해서 강남부터 시장잠식이 시작 되었고 성과가 뛰어나서 윤선생영어를
능가하는 반응이 나오기 시작하자 .... 나를 경계하기 시작 하더니
어느날 내가 할수 없는 자금을 주문 했고 나를 #51922;아낼 궁리를 작당 했었습니다.
갈 2 : 11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나와는 믿음으로 사업을 동역 했었고, 계약조건도 없었는데,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안가는 그런 처사에 ... 예수믿는자가 그러면 되겠냐고 따끔하게 질책을하고
나를 이제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면 내가 회사를 떠나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신문광고를 내서 면접하고, 합숙교육을 시켰고, 그중에서도 나와 신앙의 뜻을 모아
함께 일하기로한 신입사원들에게 나는 할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임인사도 못하고 조용히 회사를 떠났는데... 그때는 그 사건이 해석이 안되었
습니다. 미국인 영어교사들을 주 5일 근무를 시키고 남은 토, 주일은 서울의 각교회에
배치해서 주일학교에서 무료 영어성경 공부를 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그 사건은 내가 아직 그릇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이 몽둥이로 사용
되어지느라고 수고를 했는데 당시에는 그것을 모르고 나만 의로운척 하고
그들을 표면적으로는 용서한듯 했으며, 나는 홀로 고고히 떠있는 학처럼
세속적인 그들과는 상대가 안된다고 자만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회사를 만들면서 스카웃 해왔던 임원과 간부들도 크리스쳔 이었음에도 나를
떠나서 오너를 따랐으며, 교보출신 후배도 유혹에 넘어가서 나를 팔아 버렸습니다.
참으로 돈의 유혹에는 장사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진리를 거슬려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믿는자답게 살라고 책망을하고
회사를 나왔지만 실로 그 속에는 내 탐심이 들어 있었습니다.
내가 처세를 잘 못했기 때문에 그분이 불안을 느꼈기에 그리 되었다는 생각이 큐티를
깊이 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의로울것이 하나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예수를 믿음으로 내가 의로워진것인데
나는 신학생 이라는것과 나는 아무 흠이없고 그가 잘못을 했다고 정죄 했었습니다.
나의 쓴뿌리와 가시가 이웃을 찔렀음을 회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