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위한 사도권
작성자명 [김영자]
댓글 0
날짜 2006.11.03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에게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십 사년 후에야 비로소 바울은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주님의 계시로 예루살렘에 올라갑니다.
이는 주님께서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도 있었을 것이며
또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을 같이 했던 사도들과의 만남을 통해 사도 바울의 이방인을
향한 복음 전파의 당위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고자 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그 당시 이방인에대한 복음 전파는 유대인들의 고정관념과 선입견과 편견을 부수어야
이해 할수 있는 그런 부분이었을 것을 생각해 볼 때 이방인에 대한 바울 사도의
베드로사도와 동등한 사도권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국교회가 많은 성장과 성숙을 통해 세계선교의 필요를 다 인정할 뿐아니라
또 열심으로 선교사를 파송하며 후원하고 있음은 너무나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삼십 년 전만해도 선교라는 단어는 교회에 매우 생소한 단어였던 것을 기억합니다.
제가 섬기던 작은 교회에서 부임하신 목사님께서 세계선교를 말씀하시며
후원을 이야기하셨을 때 많은 제직들이 반대를 하고 나섰었지요 우리 교회의 재정이 적자인데 .
또 한국에도 믿지않은 이가 얼마나 많은데 외국까지 신경쓸 수는 없다고 ....
또 선교사의 비젼을 가지고 있던 자매도 많은 청년들에게 외국여행과 화려한 선교사의 대접을
생각하는 것처럼 황당한 오해를 받는 일도 있었거든요
지금은 우습게 들리지만 선교는 특별한 사람이나 아니면 그렇게 급하거나 중요하지 않은일로
미루어졌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제 주변의 선교사님들을 돌아보면 정작 선교를 외치며 부르짖는 후원교회일지라
도 선교사님들에게 너무나 많은 희생을 요구하며 그것이 주를 섬기는 당연일로 치부되어 많은
어려움을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전시효과적인 선교, 보여주기 위한 선교 , 성과 목표인 선교가 앞서기 때문이죠
그 당시 이방인들을 지옥불의 불쏘시개 정도로 인식하고 또 개처럼 인식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선민 의식을 깨뜨리고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라는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한다는 일이
정말 성령님의 강력한 도우심이 없이는 쉽게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유대인의 사도로 세우신 것처럼 나 바울도 이방인의 사
도로 세우셨다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같은 사도들도 나의 잘못됨이 없음을 인정하고 교제
의 악수를 청하며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았는가 바울 사도는 외치고 있습니다.
요즈음 북핵 문제로 인하여 그리스도인들도 첨예하게 이에 대한 의견이 나뉘어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북한의 영혼들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시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나설 자를
찾고 있지는 않을까요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자들이라는 이유로 우리 안에도 북녁의 동포들
을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이방인처럼 그렇게 여기는 여김은 없는지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