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와, 따라와/갈1:11~24 알리바이(Alibi)는 법률용어인데 검사가 범죄사실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제출하는 증거가 본증이라면
사실의 존재를 부인(否認)하기 위하여 제출하는 증거를
반증(反證)이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제가 이해한 알리바이는 과거를 하나씩 역 추적하면서
사건의 단서를 찾는 수사방식의 하나라고 해둡시다.
제 생각에 갈다디아서의 키워드는 바울의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것입니다.
날탱이인 제가 읽은 몇 안 되는 두꺼운 책중에
바울복음의 기원 (엠마오,김세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10년 전에 저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펴낸 책인데
제가 알기로 국내판 보다 독일어 판이
더 신학계에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켰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 저는 재미없는 신학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공부를 얼마나 많이,
어떤 방법으로 하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고 놀랬었고
처음으로 신학자들의 수고에 대하여 경외감을 갖게 되었답니다.
아울러 F. F브루스의 대를 잇는 세계적인 신학자(김 세윤)를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것은 주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성질급한 바울은 어제 다짜고짜 자신의 사도직의 신적인 기원(1:1)을 말하더니
오늘은 복음의 신적인 기원(:11,12)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인즉 자신의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아 그에게서 직접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 과정 중에 바울의 논증은 3가지로 진행되는데
첫째 회심 전 자신의 유대교 생활(:13.14)
둘째 다메섹의 회심 사건(15,16a)
셋째 회심직후 사건(16b,17)을 말함으로써 자신에게 계시된 복음과
사도직의 실체를 밝히고 져 합니다.
위의 변론을 통해서 바울 자신이 예루살렘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렇지만 자신의 복음이 참된 것임을 예루살렘의 기둥들도 인정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목할만한 것은 바울은 16절에 나타나 있는 다메섹 사건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방인 선교)을 자신의 혈육(any man)이나
먼저 사도로 부름 받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의논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라비아 방문과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합니다.
혹자는 바울의 아라비아 방문을 바울 개인적인 기도와 명상의 시간으로 보고
회심 후 바울이 도를 닦기 위해 아라비아로 갔다고 공갈을 때리기도 하지만
바울이 아라비아로 간 것은 순전히 복음 전파를 위함이 아닙니까,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15-17
주님,내가 속한 교회만 바른 복음을 가졌다고 착각하지 않고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다른 사람과 교제를 나누고 학자들의 도움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겸손히 섬기므로 저를 부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고 첫 사랑의 감동을 회복하게 하소서.
2006.11.3/헤세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