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하는 아버지, 징계 안 하는 아버지, 몸으로 보여주신 아버지
작성자명 [황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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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28
예수없이 사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하고 보여주듯이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암담 그 자체였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다하셨습니다.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4남매를 낳으셨는데 ...
배다른 형제들이 다섯명이나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쳤습니다.
사업이 잘 될때에는 서울에서건 어디서건 아이낳고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사업이 안 되어서 힘들어지자 아이들을 버리고 모두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신기하게 그 아이들은 모두 나의 오빠와 나 밑으로 모두 띠가 달랐답니다.
그 이후에도 우리 어머니는 동생을 두 명이나 더 낳으셔서
우리들은 형제가 11명이고, 부모님까지 13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술을 무척 좋아하셔서 술을 달고 사셨고 술만 드시면 우리 어머니께 원망 불평을 하셨습니다. 욕이란 욕은 다하셨고 나중에는 의처증 증세까지 보이시며 집안에 문살 하나 성한 것이 없을 정도였답니다.
부잣집에서 맏딸로 고생을 모르고 자라셨고, 일제시대에 경성사범을 수석으로 졸업하시고 절세미인이셨던 우리 어머님은 이런 수모와 고통을 고스란히 참고 인내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말씀과 행동은 너무나 달랐고 언제 화를 내실지 몰라서 항상 불안감에 휩싸여 집안은 언제나 초상집을 방불케했습니다.
어머니는 당시 늘 불안하셔서 점쟁이를 달고 사셨고 무당굿을 수시로 하셨답니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진학한 오빠와 나는 이 때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목사님의 소개로 정말 신앙 생활을 잘 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도 이 무렵 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셨고, 지금까지 새벽기도를 놓지 않으시고 기쁨과 감사로 사신답니다. 또 제 바로 밑의 동생은 현재 신학 공부를하며 교회에서 전도사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돌아보면, 11남매 모두 대학을 나와 사회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제 몫을 하고 있는데는 무엇보다 아버지의 몸으로 보여주신 수고가 컸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그 아버지 덕분에 저는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고 예수 잘 믿는, 아버지와 정반대인 남자와 결혼했고요.
100% 죄인인 인간이 예수님 없이 살 때에 느끼는 그 허무와 절망 슬픔과 분노, 탄식, 눈물을
주님을 나의 주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살면서 느끼는 참 평안과기쁨과 어떻게 비할수 있을까요
오늘도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아직도 죄와 슬픔가운데 빠져있는 잃은 양들을 주님께 인도할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