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쓴다
작성자명 [최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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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11.10.13
사도행전 24:10-23
이제 바울이 자신의 사건에 대해 기꺼이 변명한다. 성전에서 직접, 변론하는 것이나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한 그들의 고소는 증거로 내세울 것이 없다. 한 가지 믿음의 고백은 그들이 이단이라고 하는 예수의 도를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성경을 다 믿으며 그들이 기도하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다. 의인과 악인의 부활은 있다. 나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항상 힘쓴다. 내게 성전을 더럽혔다고 했는데 결례를 행한 것밖에 없고 모임이나 소동도 없었다.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거기에 있었는데 마땅하다면 직접 와서 고발했을 것이다. 이에, 재판을 연기하고 천부장에게 일임하며,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고 친구들이 돌보는 것을 허락한다고 판결한다.
연구 묵상
1. 자신의 때에 기꺼이 변명하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바울, 내가 하고 싶은 변명과 신앙고백은 무엇인가?
2. 하나님과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항상 힘써야 할 것은 무엇인가?
3. 재판의 도를 잘 아는 총독은 재판을 연기하는데, 이야기가 소통되려면 나도 상대도 잘 알고 있는 도를 말해야 연결되는데 나도 상대도 잘 알고 있는 도가 무엇인가?
잘 들어야만이 거기에 대한 내 변명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조목조목 한 가지씩 짚어가면서 변론을 펴며 설득합니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도, 상대가 잘 알고 있는 도로 이야기를 하니까 자신의 입장을 잘 전달하여 상대도 바울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와 여러 장로들과 많은 유대인을 이끌고 왔던 아니니아에 비해 바울은 홀로 변론했지만, 바울의 반박이 훨씬 더 설득력 있습니다. 진실이 바울 편이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고 바울이 갖고 있는 달란트를 100% 활용해서 말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판 받는 그 곳, 모든 이목이 집중되는 그 곳에서 담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바울, 또, 하나의 전도 집회였습니다. 아~ 하나님이 사용하기 쉽게 준비된 바울, 충분히 역량을 발휘한 바울, 그 바울을 들어 사용하시는 하나님이 멋지십니다.
어제는 남편에게 서운함이 밀려와 투덜댑니다. 사랑의 문자를 보냈는데, 아무런 답신이 없습니다. 늘, 그래왔던 일상적인 일이고 반응이었지만.... 어제는 내 안에 소요가 있었습니다.
아빠 칠순에 대한 상의를 할 겸 만나자는 연락을 했는데 자기가 적절한 시간에 연락하겠다는 문자가 보냈습니다. 다들 바쁘고 분주하기에 적절한 시간을 잡자는 것이었는데... 일언지하에 자르는 것 같고, 본인이 할 일이라는 듯 내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추석 전에도 한 번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 때도 자기가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참, 나와 다르다는 것은 알겠지만, 아직도 올케의 행동은 내 마음에 소요를 일으킵니다. 올케가 어떻게 느끼고 나오는 반응인지 명확하게 그 도를 내가 알면 좋겠는데 나는 올케의 도를 잘 못 알아차리겠습니다. 바울은 상대도 자신도 잘 알고 있는 도를 가지고 말했기에 이해받습니다. 그 면에서 답답도 하고 아쉽습니다.
올케와의 불편함이 건드려져서 남편에게 불똥이 튀었습니다. 원래 무뚝뚝하고 무덤덤한 남편의 정서를 알고 그러려니... 나는 나대로 충족받고 살지만, 어제는 남편에게 서운했던 10년간의 1%들이 한꺼번에 밀려왔습니다. 99% 만족스러운 남편.... 그런데 쌓이고 보니 그 1%들이 모여 99%가 넘어갔나 봅니다. 그래서 문자에 대한 무응답에 대한 서운함이 올라왔고 그 서운함을 남편에게 말 했더니 얼른 문자를 보냈습니다. 무한 사랑한다는데..... 그 말이 전달이 안 되고 내가 장난치는 줄 아는 양 반응이 과한 걸 보니, 장난스러움이 더 크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게 또 서운합니다. ‘됐네’라는 한 마디로 답신을 보내는데... 시원하면서도 서글픔이 큽니다.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따라올라오니... 이전에 시아버님에 대한 서운함도 따라 올라옵니다. 그냥, 그 마음을 만나주었습니다. 눈물이 나옵니다.
눈물을 따라가보니 ‘애쓰는 나’가 만나집니다. 참, 애쓰며 살고 있습니다. 잘 하려고 애쓰고 사랑하려고 애쓰고 사랑받으려 애쓰고.... 자식으로 부모로, 아내로.... 내 맡겨진 역할, 내게 주신 사명이라 여겨지고 보여지는 것들에 대해 참 많이 애쓰고 행동하려 살고 있는 나, 그게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양심에 거리낌 없기를 항상 힘썼던 바울과 겹쳐집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겨지면, 나는 애썼습니다. 표현하는 게 최선이라 여겨지면 표현했고 침묵이 최선이라 여겨지면 침묵했고 변명이 최선이라 여겨지며 변명했고 피하는 게 최선이라 여겨지면 피했습니다. 머무르는 게 최선이라 여겨지면 머물렀고 지나가는 게 최선이라 여겨지면 거리낌 없이 아쉬움 없이 지나쳤습니다. 내 생각이 행동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후회와 아쉬움이 덜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 그 애쓰는 나를 보니... 또 안쓰럽기도 하고 아쉽습니다. 그냥, 후회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채 그렇게 살아도 되는데... 그런 모습 그대로 만나주고 머무르면 되는데..... 애쓰는 나.... 애쓸 때, 자유롭고 즐겁고 기쁨에 넘쳐 흥이 나서 신나서 했지만, 그래도 에너지는 쓰였나 봅니다.
오늘, 바울에게서 애씀을 만났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자주 하는 말 중에 ‘참, 애쓴다. 고맙다’ 입니다. 그러고 보면 상대에게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이 ‘참 애쓴다’라는 말인가 봅니다. 그리고 ‘고맙다’라는 말.... 오늘, 애쓴다. 고맙다. 라는 말... 내게도 많이 들려주고 싶습니다.
1. 자신의 때를 분별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힘입어 잘 활용하며 표현하게 하소서
2. 애쓴다. 고맙다. 내게 많이 표현하겠습니다.
3. 하나님과 사람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나로 머무르는 것에, 힘을 빼고 바라보겠습니다.
4. 나와 상대를 연결할 수 있는 연결점, 그 도를 찾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