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제도
작성자명 [심다니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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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6.10.22
히10:1-18 왜 성경만이 제사제도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일까요
(새번역10:9).
그리고 나서 “내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려고 왔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제도>를 세우시려고 첫 번째 제사 제도를 폐지하신 것입니다
세상 사회에는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 싶은 것에는 반드시 제도를 만듭니다.그래서 토지가 중요하니 토지제도, 수표제도, 은행제도.. 변호사제도 등등의 많은 제도들이 만들어집니다.
제도의 구조를 살펴보면 그 제도의 의의와 가치 및 특수성 그리고 그 제도가 만들어진 역사, 그리고 그 제도의 소유방법, 운영형태, 그 제도와 관련된 교육, 징계제도, 미래에 그 제도의 전망..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제도들은 이 세상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제도들입니다.
그러나 영원한 가치가 있는 제도가 무슨 제도일까요? 그 제도는 인간사회가 만든 제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제도로써 우리의 죄를 씻어주는 제사제도가 아닙니까. 제사제도가 그렇게 체계적으로 기술된 곳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다른 경전에는 없는데 성경에서만 왜 죄를 사하는 제사제도가 체계적으로 다루고 있었습니까? 그리고 제사제도의 변천사까지 상세히 다룹니까? 그것은 성경만이 인간의 고통과 죽음의 원인이 죄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해주려하기 때문입니다. 불교도, 유교도, 도교도, 어떤 종교도. 심지어 이데올리기도(공산주의..) 인간 고통의 기원을 죄에서부터 찾지 않습니다.
사단은 모든 사상과 종교들에 침투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죄를 은폐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의 심각성을 의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 우리가 평안이 없습니까? 죄의 문제가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짓는 죄을 어떻게 처리할지 그 방법을 모르기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제사<제도>에도 그 시작(설립)과 변화가 있음을 말해줍니다. 옛날 율법아래 때의 제사제도가 폐지되고 새로운 제사제도가 만들어졌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옛날의 제도-제사장이 동물의 짐승을 잡아서 피를 뿌리며 혹은 번제로 드린 인간제사 제도는 예수께서 단 한번 드린 제사제도로 대치되었습니다.
더 나은 제도가 만들어졌읍니다. 옛날 제도에 얽메일 필요가 없습니다. 옛날 제도로 제사를 드려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오리혀 죄만 더 가중시킬 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친히 우리 모든 사람들의 죄를 담당하시었습니다. 단번에 자신을 제사의 제물로 대치시켰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를 믿을 때 죄사함을 영원토록 받게 됩니다. 어떤 죄를 지었더라도 예수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빌면 긍휼이 많으신 우리 주 예수께서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죄인인줄 깨닫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제도와 함께 성령의 은혜로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길 수 있도록 하신답니다(10:16)! 말씀이 우리 마음에 새겨질 때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을 때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한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나의 구주이시며 나의 주이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우리가 혹 죄를 짓더라도 그 죄를 더이상 숨기지말고 하나님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죄인인줄 모르느냐 하면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가 죄인임이 내 마음에 새겨지는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하심을 경험합니다.
우리가 옛날 구약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는 대신 이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형태(설교/말씀읽기/말씀연구/묵상..)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말씀이 내 마음에 내 생각에 기록되는 역사가 일어나야(10:16) 우리 주 예수의 세상 죄를 짊어지신 희생의 영원한 가치를 높이 찬양하게 됩니다.
오늘날 말씀을 증거하는 목사들은 성도들이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보게 해야합니다. 기독교의 죄의 종교가 아닙니까. 그런데 죄는 감추고 자꾸 예수믿으면 복받는募?멧세지를 강조하면 성도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합니다(이방종교와 다를바가 없음). 그러나 성도들의 죄를 지적하면서도 성도들을 야단 치면 안 됩니다(치는 설교). 성도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하는 가운데서 말씀을 통해 성령의 능력으로 성도들이 자기죄를 보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복음을 깨닫고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는지 깨닫고 또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알아가는 가운데서 우리는 예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함께 영원한 예수사랑의 공동체(한님)에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